[데스크 진단]단통법 손익계산서

송진흡기자

입력 2014-10-06 03:00 수정 2014-10-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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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김모 씨(45)는 2년 약정기간이 끝날 때마다 휴대전화를 바꿨다. 그동안 이동통신사만 바꾸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큰돈 들이지 않고 새 단말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달 1일부터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되면서 번호이동을 통해 단말기를 바꾸려던 김 씨는 고민에 빠졌다. 보조금이 줄어 새 단말기 구입비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비싼 요금제에 가입하더라도 내야 하는 돈이 만만찮았다. 그렇다고 속도가 느려진 기존 단말기를 계속 쓰기도 힘든 상황이다. 김 씨는 “현재로서는 돈을 더 주고 사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제도 도입 초기라서 이동통신사들이 상한선까지 보조금을 주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동통신사 사이에 경쟁이 붙어 보조금이 많아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다른 얘기가 들려온다. 보조금 상한선이 1대에 27만 원에서 최대 34만5000원으로 높아졌지만 보조금 불법 지급에 따른 벌칙이 대폭 강화돼 과거 수준의 보조금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단통법 시행으로 단말기를 누구는 비싸게 사고 누구는 싸게 사는 불공평한 일은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평등’을 위해 결과적으로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시장 개입을 통해 가격을 낮추는 것도 시장 왜곡 가능성 때문에 부작용을 얘기하는 전문가가 많다”며 “하물며 가격을 올리는 시장 개입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보조금이 줄어들면 이동통신 요금이 싸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동통신사 간 보조금 경쟁을 막으면 고객 확보를 위해 요금 인하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견 맞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기 때문에 ‘가격 거품’이 없다고 주장해온 이동통신사들이 보조금으로 써온 돈을 모두 요금 인하용으로 곧바로 돌릴지는 미지수다. 판매 현장에서는 “뭉칫돈인 보조금과 월 몇만 원 수준인 요금 인하로 유치할 수 있는 고객 수는 확연히 다른 만큼 요금 인하 경쟁이 보조금 경쟁보다는 치열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확실한 ‘보조금’ 대신 불확실한 ‘요금 인하’를 유도하는 단통법이 이동통신사 배만 불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통법이 중국 스마트폰 업체만 이롭게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조금이 줄어들면서 프리미엄 제품 위주인 국산 스마트폰 판매량이 감소하면 중저가 제품을 내놓는 중국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다 국내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 수요를 감소시켜 한국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가뜩이나 침체된 내수(內需)경기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내모는 ‘확인 사살’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결국 단통법과 관련한 손익계산서를 살펴보면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이동통신사, 새로운 시장을 얻은 중국 스마트폰 업체, 예전보다 강력한 규제 수단을 거머쥔 일부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이해 관계자가 손해를 보는 구도다. 소비자나 스마트폰 제조 및 판매업체, 미래부와 방통위를 제외한 경제부처 사이에서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송진흡 산업부 차장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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