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중 폰 사용” 69%… 사고 부른다

특별취재팀, 강승현 기자 , 김재형 기자 , 정순구 기자 , 신지환 기자 , 김수현 기자 , 유채연 기자

입력 2022-07-05 03:00 수정 2022-07-0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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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에 진심인 사회로]〈8〉보행 무법자 ‘스몸비족’
신촌 등 4곳서 이용실태 살펴보니… 10명중 7명 스마트폰 보며 길 걸어
78% “스몸비족에 불편겪은적 있어”… ‘주의 분산’ 사상자 62%가 스몸비족
스마트폰 볼때 경적 인지거리 줄어… “위험지역에 바닥 표지판 설치해야”



“학생! 빨간불!”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앞 오거리.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걷던 20대 남성이 보행신호를 보지 않고 곧장 횡단보도로 진입했다. 우회전 차량이 남성을 발견하고 경적을 울렸지만 이어폰을 착용한 상태라 안 들리는 듯했다.

옆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김모 씨(61)가 황급히 소리를 질러 남성이 걸음을 멈췄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만 남성은 별일 아니라는 듯 목례만 한 뒤 다시 스마트폰을 봤다. 김 씨는 “요즘 길거리에서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면서 걸어다니는 젊은이가 많다”며 “큰 사고가 날까 항상 걱정된다”고 말했다.
○ 보행자 10명 중 7명이 ‘스몸비족’

국민 10명 중 9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스마트폰에 빠져 주변을 살피지 않고 걷는 일명 ‘스몸비족’(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늘고 있다. 보행자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운전자 못지않게 보행자의 안전 의식도 중요한데, 여전히 많은 이들이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이다.

2020년 서울연구원이 15세 이상 남녀 시민 100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9%가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30대 이하의 경우 △15∼19세 84.0% △20∼29세 85.7% △30∼39세 86.8% 등 10명 중 8명 이상이 걸을 때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답변했다. 보행 중 타인이 스마트폰을 사용해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는 응답도 78.3%에 달했다.

실제 동아일보 취재팀이 6월 30일∼이달 1일 이틀간 신촌을 비롯해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사거리, 마포구 공덕 오거리, 중구 광희동 사거리 등 4곳에서 보행자들의 스마트폰 이용 실태를 점검한 결과 홀로 걷는 보행자 10명 중 7명은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것으로 나타났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릴 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이들 중 절반가량은 신호가 녹색으로 바뀐 뒤에도 좌우를 주시하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건넜다.

이날 공덕 오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 물웅덩이를 밟은 고등학생 이모 군(17)은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에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게 수험생활의 유일한 낙”이라며 “영상에 몰입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앞을 보지 않고 걷게 된다”고 말했다.


‘스몸비족’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보행자의 안전도 위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맛비가 쏟아졌던 지난달 30일 광희동 사거리에선 우산을 든 채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사람이 상당수였다. 한영준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행 중 스마트폰 이용은 본인은 물론 타인의 보행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 보행 주의 분산 심각…“안전시설 확충하고 의식 개선해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14년부터 3년간 삼성화재에 접수된 보행 중 ‘주의 분산’에 의한 교통사고 사상자 1791명을 분석한 결과 61.7%(1105명)가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보행 중 스마트폰을 이용할 경우 주의가 분산돼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실험에 따르면 보행자가 뒤에서 오는 자전거의 경적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는 최대 12.5∼15m 정도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해 메시지를 보내거나 게임을 하며 보행할 땐 이 거리가 연령에 따라 33.3∼80%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보행자들의 의식 개선과 함께 △보행 교육 강화 △안전시설 확충 △도로 환경 정비 등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 보행 교육을 강화하고 위험한 지역엔 바닥 표지판 등을 설치해 보행자가 스마트폰 이용에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도 보행 시스템 정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는 현재 횡단보도 138곳에 ‘바닥 신호등’이 설치돼 있다. 성동구와 구로구 등이 운영 중인 ‘스마트폰 차단 시스템’은 초등학생이 학교 앞 횡단보도에 진입하면 스마트폰 화면이 경고 문구로 전환된다.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를 받아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면 앱과 횡단보도가 연동돼 스마트폰 이용이 자동 차단되는 것이다.

오성훈 건축공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횡단보도처럼 보행자와 차량이 만나는 곳에선 바닥 신호등이나 음성 신호기 같은 안전시설이 꼭 필요하다”며 “보도 포장을 매끄럽게 하고 장애물을 줄여 보행 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공동 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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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팀장 강승현 사회부 기자 byhuman@donga.com
▽ 김재형(산업1부) 정순구(산업2부) 신지환(경제부) 김수현(국제부) 유채연(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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