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도 세 명이 모셨는데…”[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 ‘못 다한 이야기’]

이진구 기자

입력 2021-09-20 11:00 수정 2021-09-21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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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 이황 17대 종손 이치억 교수 편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해마다 명절을 앞두고 빼놓지 않고 인터뷰 기사가 나는 분이 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17대 종손인 이치억 공주대 윤리교육과 교수지요. 네, 1000원 짜리 지폐에 나오시는 그 이황 선생님 맞습니다. 이황 선생님 제사상은 과일 몇 개에 전, 포 정도가 전부입니다. 명절 스트레스란 말이 나올 정도로 변질된 우리의 제사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요. 오죽하면 몇 년 전에는 한 여대생이 30여 년간 수십 명 친인척의 명절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온 어머니를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명절 폐지를 간청합니다’란 글까지 올렸겠습니까. 재작년 추석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주자가례에도 ‘홍동백서 조율이시(紅東白西 棗栗梨枾)’란 말을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제사상에 통닭을 올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명절을 앞두고 언론이 이 교수를 찾는 것은 마음보다 형식에 더 치우친 우리 제사문화를 바꾸자는 취지지요.

문득 코로나19 시대에 퇴계 선생 집안은 어떻게 제사를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코로나19로 ‘올해는 내려오지 않는 게 효도다’라는 플래카드까지 붙는 세상이니까요. 원래도 간소했지만 코로나는 역시 종가집의 제사도 바꿔놓았습니다. 올 설 제사도 평소에는 최소 20여명은 모였는데 3명 정도만 참석하고, 대신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zoom)’을 이용해 비대면 제사로 지냈다고 하더군요. 모였다가 병에 걸리면 그게 불효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 종류는 원래부터 간단했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참석자가 적다보니 양도 확 줄었다고 합니다. 덩달아 그에게 쇄도했던 언론 인터뷰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다네요. 코로나19 때문에 안 내려가도 되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줄어서 굳이 그런 기사를 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겠지요. 아, 참고로 퇴계 선생 가문에서는 추석 때는 차례를 지내지 않고, 설 명절에만 차례를 지냅니다. 원래 아주 옛날에는 계절의 변화에 맞춰 지내는 사시제(四時祭)가 더 중요해서 돌아가신 날에 각각 맞춰 제사를 지내지 않고 사시제에 맞춰 함께 차례를 지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추석 차례 대신 중양절(음력 9월9일)에 시제를 지내는데, 중양절은 연휴가 아니다보니 매년 10월 셋째 주 일요일에 한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바뀌고 있습니다만 관혼상제도 그런 부분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모임이 줄면 당연히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함께 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명절 스트레스 때문에 이혼까지 생각하는 며느리들이 만든 음식을 드시는 조상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증조할아버지 성함은 모르면서 제사상 홍동백서를 따지는 건 코미디지요. 우스개 소리입니다만, 저 자신도 간혹 차례를 지낼 때마다 ‘우리 증조할아버지 체하시는 거 아니야?’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음식 준비하고, 예법에 신경을 쓰는 것에 비하면 너무 빨리 수저를 거두니까요. 마음보다 형식에 더 신경을 쓴다는 반증이겠지요. 그럴 바에는 할아버지 생전의 사진이라도 한 장 꺼내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 교수가 늘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제사는 미풍양속인데 그걸 지키기 위해서라도 제사가 변해야한다고요. 지키기 힘든 형식을 계속 유지하려다보면 가족간에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고 결국 ‘이럴 바엔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는 쪽으로 갈 것이라는 것이죠. 코로나 때문이라는 게 유쾌하지는 않습니다만, 제사가 간소화되고 그로인해 가족간의 갈등이 준다면 그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장례 문화도 코로나로 인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감염 우려 때문에 과거와 달리 가족끼리만 치르는 경우가 많아졌으니까요. 슬픔을 나눈다는 취지는 아름답지만 솔직히 그동안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회생활, 회사 생활을 위해 참석한 적이 더 많지 않았는지요. 한 때는 신문의 부고란에 망자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누구의 부(父), 누구의 모(母)로 명기된 적도 있었으니까요. 장례식장에 즐비하게 늘어선 사람들과 화환이 망자가 아닌 그의 성공한 자식들 때문에 온 것이라면 그런 장례문화는 바뀌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교수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중학생인 장남은 퇴계 이황 선생님의 18대 종손이 되겠지요. 당시 인터뷰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엉겁결에 “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지요. 2년 전이니까 코로나가 발생하기 한 참 전인데 이 교수는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지 않겠습니까?”라고 반문하더군요. 퇴계 이황 선생님의 18대 종손이 결혼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세상이 온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제사 문화가 바람직하게 바뀌었다는 바로미터가 아닐 런지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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