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로봇, 너만 믿는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0-03-30 03:00 수정 2020-03-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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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부터 진단까지… 병원 감염 막아줄 로봇 맹활약

1 소독 작업을 하고 있는 로봇. 2 기본적인 호흡기 문진과 체온 측정을 돕는 안내로봇. 3 로봇이 코로나19 환자의 검체를 채취하는 모습. 서울대병원·유비텍로보틱스·광저우대 의대 부속 제1병원 제공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보고된 지 91일을 맞았다. 불과 석 달 만에 전 세계 환자 수는 50만 명, 숨진 환자만 2만 명을 훌쩍 넘겼다. 코로나19 치료와 방역의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던 의료진의 감염 소식도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19에 맞서는 의료진과 의료 관계자를 돕는 기술이 최근 전 세계 병원 풍경을 바꾸고 있다. 수많은 의료진 사이를 로봇이 누비며 사람을 대신해 병원 방역에 나서고, 의료진 감염을 막는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덴마크의 로봇회사인 UVD로봇은 이번 감염병 사태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번 사태가 시작하기 전인 2018년 자외선(UV)을 이용해 병실과 수술실을 소독하는 로봇을 개발했다. 단파장 자외선은 파장이 짧아 세균 DNA나 바이러스의 RNA 같은 유전물질을 없앨 만큼 강력한 에너지를 낸다. 이 로봇은 병원 곳곳을 혼자서 돌아다니며 단파장 자외선을 쏘아 세균과 바이러스를 없앤다. UDV로봇은 올 2월부터 이번 사태가 시작한 중국에 로봇 수백 대를 보내 병원 소독에 나서고 있다. 최소 2000곳이 넘는 중국 내 병원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코로나19 사태의 발원지이자 가장 많은 환자가 보고된 중국은 의료 로봇의 주요 시험무대로 떠올랐다. 중국의 대표적 감염병 전문가인 중난산 중국공정원 원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코로나19 검체 채취 로봇을 개발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이 로봇에는 팔과 내시경이 달려 있다. 팔에 붙은 면봉으로 환자 목 안에서 검체를 채취하고 내시경을 환자 목에 집어넣어 기관지 상태를 살펴보게 했다. 의료진이 환자를 직접 만날 필요가 없어 의료진 감염을 막을 수 있다. 광저우대 의대 부속 제1병원에 입원 중인 코로나19 환자 20명을 대상으로 80회 정도 실험해본 결과, 환자의 목구멍에 염증이나 상처를 내지 않고 검체 채취에 성공하는 비율이 9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선양시 제4인민병원에서는 카메라로 환자의 얼굴을 인식해 의사가 처방한 약품을 전달하는 간호로봇이 운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를 계기로 로봇 도입이 이뤄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은 이달 20일부터 안내로봇을 도입했다. 이 로봇은 병원 방문객의 기본적인 호흡기 문진과 체온 측정을 돕는다. 열화상카메라가 달려 있어 방문객이 화면을 바라보면 자동으로 열을 측정한다.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은 이달 12일부터 운송로봇을 투입했다. 로봇은 의료진과 환자가 입은 옷과 의료폐기물을 나르는 업무를 맡았다. 의료진이 앞서가면 뒤를 졸졸 따라온다.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인 한국과 중국에서 이처럼 의료용 로봇을 적극 도입하는 것은 그 효과가 어느 정도 검증됐기 때문이다.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팀은 2017년 자외선살균장치가 손으로 직접 세척하는 것보다 소독률이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BMC 감염병’에 내놨다. 마틴 야머시 미국 럿거스대 생명공학부 교수 연구팀도 올해 1월 혈액 샘플을 채취할 때 사람보다 로봇이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테크놀로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의료로봇 분야 석학인 양광중 영국 임피리얼칼리지런던 교수는 이달 26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의료로봇은 합리적인 가격에 빠르고 효과적인 방역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로봇 학계와 산업계는 코로나19처럼 감염력이 높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다양한 로봇이 더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문상 광주과학기술원(GIST) 헬스케어로봇센터장은 “코로나19에 쓰이는 로봇을 깨끗하게 소독한다는 전제하에 로봇은 효율성과 가격 합리성을 가질 수 있다”며 “인공지능(AI)과 결합해 대화로 환자의 감정까지 달래주는 로봇도 곧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I 기술도 의사들을 도와 병원 풍경을 바꾸고 있다. 알리바바는 이달 2일 환자의 폐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을 분석해 코로나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AI 진료 시스템을 공개했다. 이 AI 진단 시스템은 후베이성 등 중국 16개 성의 26개 병원에서 코로나19 의심 환자를 진단하는 데 활용됐다. 중국 정부가 지정한 전국의 100여 개 코로나19 병원에 투입될 이 기술은 96%의 정확도로 20초 만에 영상을 분석한다. 감염을 줄이기 위해 병동 출입 관리에 AI 안면인식 기술도 도입되고 있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은 이달 25일부터 AI 안면인식 출입 시스템을 적용했다.

로봇과 AI 등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기업에선 눈에 보이는 로봇부터 소프트웨어 로봇까지 다양한 로봇들을 선보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달 25일 코로나19와 관련한 증상 및 위험 요인, 행동 요령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헬스케어 봇’을 내놨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현재 이 봇을 사용 중이다. 국내 기업인 유버와 휴림로봇, 트위니 등은 병원에 필요한 살균로봇과 발열감지로봇, 운송로봇을 개발해 제품으로 내놨다. 시장조사기관 ‘마켓 앤드 마켓’은 세계 경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년 세계 의료로봇 시장이 167억4000만 달러(약 20조6069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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