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드실 시간이에요”… 자가격리 된 노약자 AI가 돌본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0-02-28 03:00:00 수정 2020-02-28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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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T ‘헬스케어 로봇’ 시연해보니

김문상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가 개발한 노약자 헬스케어 AI 로봇이 연구원에게 다가와 약 복용 시간을 알린 뒤 다 먹을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동아사이언스 제공
이달 24일 오후 광주 첨단지구 광주과학기술원(GIST) 캠퍼스 내 한 실험실. 세 살배기 아기만 한 로봇 한 대가 실험실 한쪽에 엎드려 있던 연구원 앞에 멈춰 섰다. 로봇 얼굴에 해당하는 검은 모니터에 표시된 눈이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봤다.

잠시 뒤 로봇과 원격으로 연결된 모니터에 빨간 글씨로 ‘낙상 충격 발생’이라는 경고 문구가 켜졌다. 사람이 갑작스럽게 쓰러진 뒤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스스로 인식한 것이다. 로봇은 곧바로 경고를 병원에 전송했다. 인공지능(AI)이 설치된 이 로봇은 혼자 사는 노약자들을 돌보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돌봄 로봇이다.

최근 혼자 사는 노인 인구와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집 안 등에서 발생하는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혼자 있는 노약자의 경우 거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일어난 낙상 사고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시간에 맞춰 식사를 하거나 약을 복용하는 일상적인 일도 힘겨울 수 있다.


김문상 GIST 헬스케어로봇센터장(융합기술학제학부 교수) 연구팀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헬스케어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환자의 어깨 등에 부착한 센서와 로봇의 카메라 등을 이용해 신체 관절 정보와 음성, 피부색 등을 읽은 뒤 데이터를 스스로 분류하고 학습하는 AI 기술인 딥러닝을 이용해 질병을 알아내거나 이상 행동을 인식할 수 있다. 약 먹을 시간에 환자를 찾아가 알리고, 환자가 실제로 약을 먹는지 옆에서 확인도 할 수 있다.


○ 정서까지 보듬는 AI 로봇


사실 사고 발생을 알리거나 약 먹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은 이미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에도 속속 등장한 상태다. 그런데도 굳이 로봇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김 센터장은 “노약자들과 감성적인 측면에서 정서적 교류를 하고 물리적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표정을 짓는 로봇은 정서적 교감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노약자에게 친구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단순히 약을 먹으라는 알림 메시지를 받을 때보다 로봇이 바로 앞에 와 눈을 맞추며 약을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환자 입장에서는 훨씬 친근하고 따르기 쉽다. 실제 이날 시연에선 사람이 고개를 젖혀 약을 먹고 물을 마실 때까지 마치 기대에 찬 듯 빤히 쳐다보는 로봇이 깊은 인상을 줬다. 거동을 돕거나 설거지, 안마 등 육체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로봇만의 장점이다.

헬스케어 로봇이 노약자만을 위해 개발되는 것은 아니다. 자폐스펙트럼증후군(ASD)을 지닌 어린이에게 로봇을 통해 사회성을 훈련시키는 AI 로봇도 있다. 이재령 일본 주부대 로봇이공학과 교수는 2018년 자폐 어린이의 표정과 생체신호를 읽고 적절히 반응해 사회성을 개선하는 정서감응형 로봇을 개발해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했다. ASD 어린이가 표정이 계속 변하는 복잡한 사람의 모습보다는 표현이 단순하고 반복 행동이 가능한 로봇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자폐 어린이의 생체신호 등 다양한 측정 데이터를 입력한 뒤 머신러닝을 이용해 감정을 예측하는 연구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 역시 사회성을 개선하는 ASD 로봇을 연구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ASD 어린이가 로봇, 정상 어린이 등과 어울려 사회성을 기르도록 고안한 게임 등 콘텐츠를 의사들과 함께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질병 진단 이어 신약 개발에 도전

AI 로봇이 쓰러지는 연기를 한 연구원을 발견하고 낙상 경고를 병원에 보내는 모습.
AI는 돌봄로봇 외에도 질병 진단, 신약 개발 등 바이오, 헬스 분야에서 두루 활용되고 있다. 이보름 GIST 의생명공학과 교수는 AI로 뇌파를 분석해 뇌전증을 진단하거나 뇌 영상을 분석해 알츠하이머 치매를 조기 진단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기업 중에서는 뷰노와 루닛 등이 폐 질환이나 유방암 등의 진단을 보조하는 AI 기술을 내놓고 있다. 미국 기업 하트플로는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으로 관상동맥성심장병을 분석하고 있다.

AI를 신약 개발에 적용하는 시도도 활발하다. 약을 통해 억제할 체내 단백질 표적을 발견하거나 이 표적과 잘 결합하는 화합물 후보를 선정하는 작업에 활용된다. 약효 검증을 위해 최적의 임상시험군을 선별하는 작업, 기존 약물을 새로운 병에 재배치하는 작업 등 신약 개발의 거의 모든 단계에 AI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해외에선 이미 AI 신약기업이 많이 등장했다. 존슨앤드존슨이나 화이자 등 대형 제약사는 IBM 등과 신약개발 발굴에 사용되는 AI 개발에 나선 상태다. 영국의 버네벌런트AI나 미국의 인실리코 메디신은 코로나19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거나 임상 효과를 확인하는 데 AI를 이용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국내에선 신테카바이오가 AI를 이용한 후보 화합물 발굴 기술과 임상시험군 선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남호정 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는 표적 단백질의 구조 정보 없이 서열 정보만으로 약물과 얼마나 잘 결합할지 학습하고 예측하는 AI 기술을 개발했다. 남 교수와 한국화학연구원은 이 기술을 ‘빅데이터 AI 기반 신약개발 플랫폼’으로 개발해 누구나 활용하도록 올해 초 공개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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