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들도 ‘코로나19’ 방역에 팔 걷어붙였다

동아일보

입력 2020-02-21 03:00 수정 2020-02-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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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대응책 숫자로 제시

수학자들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수식으로 감염병 전파를 설명하는 모델을 만들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대구경북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급속히 늘면서 지역사회 감염 단계가 의심된다. 방역 당국은 여전히 29번과 30번, 40번 환자가 언제, 어디에서 감염됐는지 경로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18일 대구에서 발생한 31번 환자는 교회와 병원을 돌아다니며 동시에 여러 사람을 감염시키는 슈퍼 감염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감염병 수리모델 분야 전문가인 김소영 건국대 수학과 연구원은 “지역사회에서 코로나19 환자 한 사람이 무방비로 돌아다닐 경우 20명을 감염시킬 확률은 29.55%인 반면 그런 상황을 60%만 차단해도 집단 감염 확률은 0.45%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바이러스 전파를 얼마나 낮추냐에 따라 전파 양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김 연구원은 이달 13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수리모델 개발 워크숍’에서 이번 코로나19의 확산을 예측하는 수학 모델을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의료진은 물론 국내 수학자들도 방역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감염병이 퍼져 나가는 상태를 나타내는 수학식을 만들고 전파 상황을 분석하고 향후 전개될 양상을 예측하는 게 목표다.

감염병이 유행하면 방역 당국은 모든 자원을 투입해 차단에 총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의료진 수나 비축한 방역 물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사태가 장기화하면 인력과 자원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각국은 이런 이유로 선택과 집중을 할 부분을 결정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 몇 명의 환자가 발생할지 예측하는 감염병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실제로 김 연구원이 만든 수학 모델에 따르면 손 씻기, 마스크 쓰기, 자가 격리 등을 통해 전파율을 60%만 낮춰도 실제 지원이 필요한 지역으로 의료진과 자원을 투입할 수 있다. 정은옥 건국대 수학과 교수는 “모델링은 유행 규모뿐 아니라 항바이러스제를 얼마나 비축해야 할지, 어떤 연령대에 약을 먼저 줘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정보도 제공한다”고 말했다.


○감염자 수 억제 못하면 더 빠른 속도로 늘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는 ‘SEIR’라는 감염병 모델이 쓰이고 있다. SEIR는 감염 의심(Sus-pectible), 노출(Exposed), 감염(Infectious), 회복(Removed)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앞 글자를 따온 말이다. SEIR는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네 단계로 대상을 나누고 시간 흐름에 따라 환자 발생 상황을 예측한다. 모델 속 네 가지 단계에 속하는 사람의 수에 따라 감염병 전파 양상을 시간 흐름대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에 감염자(I)가 등장하면서 감염병이 전파되는데 이 감염자가 얼마나 병을 옮길지는 재생산지수(R0)에 달려 있다. R0는 감염병에 걸린 한 감염자가 총 몇 명에게 병을 옮기는지를 나타내는 수다. R0가 3이면 총 3명에게 병을 옮긴다. 여기에 감염자를 만날 확률을 곱하면 당일 몇 명이 감염될지 계산할 수 있다. 감염자를 만날 확률은 해당 지역사회에 감염자가 늘어나면 다시 커진다.

이 모델은 1900년대 초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을 설명하기 위해 1927년 고안된 SIR 모델에 잠복기 개념을 추가한 것이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 잠복기는 감염자에 따라 기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 감염자 수가 바뀌는 것까지 고려했다.

단순하면서도 가정을 넣기 쉽고, 계산이 쉬워 감염병 수리모델의 기본으로 꼽힌다. 처음엔 감염자가 서서히 생겨나다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늘고, 감염자가 치유돼 사라지면서 다시 유행이 잦아드는 모양을 보인다. 환자가 늘어나는 양상을 거꾸로 비교해 R0를 찾아낼 수 있어 감염병의 특성을 찾아내는 데도 도움을 준다.


○신종 바이러스 출현 때마다 감염병 모델도 진화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할 때마다 감염병 모델도 진화하고 있다. 바이러스에 변이가 나타날 때마다 확산 방식이 바뀌어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달 19일 대구와 경북지역에서만 하루 새 20명의 환자가 발생한 집단 감염 사례처럼 전파 양상이 바뀐 사건이 발생하면 수치를 조정한 새 모델을 적용한다. 정 교수는 “2015년 한국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유행했을 때는 첫 슈퍼 전파자 사례였던 14번 환자가 나타난 시점에 새 모델이 적용됐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감염병 모델링이 걸음마 단계지만 해외에선 새로운 변수들까지 고려하며 국제 보건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제프리 샤먼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달 15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례회의에서 “날씨까지 고려한 결과 코로나19의 R0값이 2.23으로 추정된다”며 “방역 대책이 없다면 2년 안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을 감염시키고 엄청난 피해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승한 shinjsh@donga.com·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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