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난청과 치매[이상곤의 실록한의학]〈84〉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입력 2019-11-18 03:00:00 수정 2019-11-18 11: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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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조선 최고의 장수왕 영조는 83세로 숨을 거두기 전 15년 동안을 건망증과 치매로 고생했다. 영조 나이 67세였던 재위 37년부터 기억력이 예전만 못 하다는 기록이 곳곳에서 나온다. 늙어서 정신이 흐릿하다는 뜻의 ‘혼모(昏耗)’ ‘망각(忘却)’이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증세는 더 심해졌다. 하지만 영조는 자신의 증상을 치매나 노망이라 하지 않고 소화기 장애의 후유증으로 생기는 담증인 담후(痰候)라 불렀다. 기억력 장애 현상이 자신의 지병이었던 소화기 질환에서 비롯했다고 우긴 것이다.

재위 51년 81세 때에는 영조의 치매 증상이 매우 심해졌다.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쓴 존현각일기에는 영조의 치매 증상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대로 나타난다. “영조의 담후(치매)가 덜했다 더했다 오락가락하니, 하교는 좋은 쪽으로 해석해서 동요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헛소리로 한 하교의 반포는 절대 금한다.” “헛소리를 하시는 중에 내리신 하교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영조는 신하들에게 어제 본인의 정신 상태가 어땠는지 확인하기까지 했다.


영조의 치매 증상은 이명과 난청과 동반해 시작됐다. 우리 조상들은 귀가 어두워지면 총기가 줄고 뇌의 인지능력도 떨어진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았다. 총명(聰明)의 총(聰)자도 ‘귀가 밝다’는 뜻이다. 서양의학도 최근 이와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존스홉킨스대 의대가 2012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청력이 정상인 경우보다 경도 난청의 치매 발생률이 1.89배, 고도 난청은 4.94배에 달했다.

실제 영조는 재위 16년부터 이명을 앓다가 재위 41년에는 심각한 난청에 시달렸다. 한의학에서 난청 증상은 희미하게 들리는 청영(聽瑩), 소리가 울리면서 또렷하지 않은 중청(重聽), 소리가 명확하지 않은 난청(難聽)으로 구분한다. 영조의 난청은 주로 청영증과 중청증이었다. 어의들은 이런 영조의 난청 증상의 이유를 과도한 국정 운영 스트레스에서 찾았다.

청력의 근원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 중 하나는 ‘귀는 환하게 밝혀야 소리를 분별할 수 있다’는 것. ‘밝힌다’는 의미는 전등이 환하게 빛나듯 양적 힘을 한껏 끌어올리는 것이다. 동의보감도 ‘사람의 귀는 양기를 받아야 밝아질 수 있다’고 했다. 한의학은 소리를 내고 듣는 주체를 결국 자기 자신이라 규정한다. 아무리 외부의 자극이 있어도 귀가 그에 맞게 메아리치지 않는다면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해석이다.

소리를 내는 자기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 영조에게 적용된 처방은 팔미지황원(八味地黃元)이었다. 원래 허리 아래에 힘이 없거나 소변 누기가 곤란한 증상에 쓰는 처방이지만 그 안에 든 계피와 부자는 심장을 강하게 하고 신진대사를 촉진하며 양기를 강하게 하는 대표적 약물이다. 귀의 양생을 위한 별칭은 공한(空閒)이다. 마음이 텅 비고 고요하게 지내는 것이 귀 건강을 담보한다는 의미다. 수면 부족, 스트레스, 과로, 이어폰은 이명과 난청의 가장 큰 적이다. 이길 수 없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귀 건강을 담보하는 건 좋은 약이 아니라 좋은 생활습관이다. 귀가 건강하면 치매에서도 한 발짝 더 멀어질 수 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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