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백신’ 믿고 맞혔는데…‘비소 백신’ 부모는 멘붕, 정부는 늑장

조건희기자

입력 2018-11-08 18:01 수정 2018-11-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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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2개월 아들에게 최근 BCG(균으로 만든 결핵 백신)를 맞힌 이모 씨(35·여)는 8일 백신 세트에서 1군 발암물질인 비소가 검출됐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 씨는 아이에게 도장형(피부에 주사액을 바른 뒤 그 위를 바늘로 눌러 주입) BCG를 맞혔는데, 이번에 문제가 된 게 이 제품이다. 이 씨는 “비싸지만 흉터가 덜한 ‘프리미엄 백신’이라고 해서 믿고 맞혔는데 아이 건강에 문제가 없을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일본비시지제조(JBL)로부터 수입한 BCG에서 비소가 기준치의 최대 2.6배 검출됐다는 정부의 발표에 부모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 문제 백신, 1993년부터 독점 공급

피내접종, 경피접종
식품의약품안전처가 7일부터 회수에 나선 제품은 2016년 하반기 이후 수입된 것으로, 제조(롯트)번호는 KHK147~149다. 8일 전국 병·의원엔 자녀가 맞은 BCG가 회수 대상 제품인지를 확인하려는 전화가 쇄도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임모 씨(36)는 “동네 소아과에 갔는데 의료진이 전화를 받느라 진료를 보지 못하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접종 이력을 확인하려는 접속자가 몰리면서 정부의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nip.cdc.go.kr)는 하루 종일 먹통이었다.

부모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회수 대상 제품이 아이에게 얼마나 해로우냐다. 일본 후생성은 자국 내 유통 제품에서 나온 비소의 최대량이 한 제품당 0.26ppm으로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 가이드라인의 38분의 1에 불과하다며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내에 들여온 제품엔 비소가 더 많이 섞였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모의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2016년 상반기 이전에 수입된 제품에도 비소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도장형 BCG는 JBL사가 전 세계적으로 독점 공급한다. 한국은 1993년부터 이 제품을 수입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건 백신 분말을 녹이는 생리식염수의 유리용기다. 식약처는 JBL사가 해당 유리용기의 제조 공정을 마지막으로 바꾼 시점부터 계속 비소가 섞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조사 중이다.

● 석 달 늦게 대처한 보건당국

보건당국의 대처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2일 “JBL사가 8월부터 해당 백신의 선적을 멈췄다”고 보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런 사실을 JBL사나 국내 수입업체로부터 보고받지 못하다가 이달 5일 일본 후생성이 관련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린 이후 문제를 파악했다.

정확한 피해 규모를 확인하려면 2016년 상반기 이전에 생산된 제품의 샘플을 수거해야 하지만 식약처는 이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JBL사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할 계획이지만 강제로 받아낼 근거는 없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엔 “해당 백신에 대한 안전성을 똑바로 파악하라”는 청원이 올라와 3만여 명이 동의했다.

현재 도장형 백신의 대체품인 덴마크산 주사형(주사액을 피부에 주입) 무료 BCG는 지정 의료기관 372곳과 보건소 256곳 등 전국 628곳에서만 맞을 수 있다. 반면 도장형은 부모가 7만~8만 원을 부담해야 하는데도 흉터가 덜한 ‘프리미엄 백신’으로 알려지면서 전국 병의원 9000여 곳에서 이 백신을 사용했다. 국내 점유율이 70% 이상인 JBL사 백신에서 사고가 났음에도 보건당국이 석 달가량 방치하면서 부모들의 혼란을 가중시킨 셈이다.

▶주사형을 맞을 수 있는 의료기관 명단
출처: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 및 질병관리본부

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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