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잡으려면 ‘예측 모델의 한계’ 뛰어넘어라

동아일보

입력 2020-05-22 03:00 수정 2020-05-2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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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국립과학연구센터 분석… 코로나 수리모델 문제 지적

감염병 수리모델은 감염병이 퍼져 나가는 상태를 나타내는 수학식을 만들어 전파 상황을 분석하고 향후 전개될 양상을 예측해 감염병 방역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감염병 수리모델이 몇 가지 가정에만 의존하고 예측 모델에 들어가는 데이터의 질도 떨어진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에볼라는 지구상에 유행하는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감염병 중 하나다. 발열과 전신성 출혈 증상이 발생하며 일단 걸리면 4명 중 3명이 목숨을 잃는다. 1976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에서 처음 발견된 후 아프리카에서 자주 발생하는 풍토병이 됐다.

2014년 3월 기니에서 시작된 에볼라는 서아프리카를 넘어 미국,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건너가 1만1315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맹위를 떨쳤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2년 뒤인 2016년 시에라리온, 기니, 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 3개국에서의 에볼라 확산이 잠정 종식됐다고 선언했다.

좀처럼 수그러들 기세가 보이지 않던 에볼라 유행을 막은 건 방역전문가와 수학자들이 만든 ‘감염병 수리모델’ 덕분이었다. 감염병 수리모델이란 감염병이 퍼져 나가는 상태를 나타내는 수학식을 만들어 전파 상황을 분석하는 모델이다. 감염병이 향후 전개될 양상을 예측하는 데 활용된다. WHO는 환자와 접촉한 사람에게 3주간 출국금지를 권고했다. 수리모델 분석 결과 에볼라의 잠복기간인 3주간 접촉자의 이동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환자가 준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WHO와 각국의 방역당국은 대부분 각국의 현실에 맞는 수리모델을 개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방역조치를 내놓고 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도 국내 방역당국 회의에서 감염병 수리모델은 활용되고 있다. 감염병 수리모델 전문가인 이효정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감염병 수리모델을 통한 코로나19 예측결과는 중앙방역대책본부 및 대통령 주재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회의에서 과학적 판단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기모란 국립암센터 암관리학과 교수와 김찬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계산과학연구센터 연구원팀을 포함해 여러 연구팀이 감염병 수리모델을 개발 중이다.


○감염 가능성과 시간 흐름 통해 확산 예측

감염병 예측에 사용되는 수리모델에는 주로 ‘SEIR’가 사용된다. SEIR는 감염 의심(Suspectible), 노출(Exposed), 감염(Infectious), 회복(Removed)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앞 글자를 따온 말이다.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네 단계로 대상을 나누고 시간 흐름에 따라 환자 발생 상황을 예측한다. 모델 속 네 가지 단계에 속하는 사람의 수에 따라 감염병 전파 양상을 시간 흐름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감염병 수리모델이라고 해서 족집게는 아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초기 수많은 감염병 수리모델 예측결과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확한 예측을 내놓은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다비드 파랑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팀은 영국, 일본 연구팀과 그 이유를 분석해 국제학술지 ‘카오스’에 이달 19일 공개했다.
수리모델, 높은 질 데이터 확보 어려워
연구팀은 기존에 사용하는 감염병 수리모델이 몇 가지 가정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한계로 들었다. 예를 들어 수리모델에서는 코로나19에 노출된 환자는 사람을 통해서만 전염이 된다고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사람이 아닌 손잡이나 책상에 묻어 있는 바이러스를 통해 감염되기도 한다. 또 코로나19에 걸렸다가 회복한 환자나 사망자들은 영원히 면역력을 가진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코로나19에 걸린 환자의 면역력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언제 면역이 생성되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진 것이 없다.

예측 모델에 들어가는 데이터의 질도 떨어지고, 나라마다 수집하는 데이터의 기준과 보고 시점이 다른 것도 정확한 예측 모델을 만드는 데 한계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환자와 접촉했더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진단 검사를 하지 않았고 보고가 늦어지는 사례가 빈번했다. 초기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도 전체 환자 통계에 무증상 환자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고 있다. 연구팀은 “환자 수 집계가 20%만 달라도 이는 전체 감염 환자 추정치를 수천 명에서 수백만 명으로 바꿔버린다”고 말했다.

감염병의 역학적 특성이 예측불허로 바뀌는 것도 수리모델의 정확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김찬수 연구원은 “감염병이 많이 퍼진다고 예측해 조심하라는 신호를 준 결과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이라며 “역설적으로 예측 결과가 맞지 않게 유도하는 게 모델 연구자들의 숙명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고재원 jawon1212@donga.com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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