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백신 미접종 페널티’ 움직임… “자가격리때 무급 처리”

조건희 기자 , 신동진 기자 , 곽도영 기자

입력 2021-10-13 03:00 수정 2021-10-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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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 여부 방역 적용 기준 삼아 PCR검사도 미접종자만 실시
면담 통해 “왜 안 맞느냐” 묻기도… 미접종자들 “사실상 백신 의무화”
30대 14% 등 젊은층 거부비율 높아, 전문가 “반감 우려… 갈등 대비해야”


부스터샷 접종 시작 12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추가 접종(부스터샷)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부스터샷 접종이 이뤄진 건 처음이다. 사진공동취재단
“백신 미접종자에게는 자가 격리 기간에 유급휴가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이달 초 경남의 한 중견 제조업체 A사가 직원들에게 공지한 내용이다. 이전까지 A사는 직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하거나 의심 증상이 나타나 격리될 경우 유급휴가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제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은 직원이 같은 상황에 놓이면 무급으로 처리된다. A사는 또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유전자증폭(PCR) 검사도 앞으로는 미접종자에게만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 B 씨는 “미접종자에게 페널티(불이익)를 주는 것이 사실상 백신을 맞으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달 초 국내 한 기업이 직원들에게 보낸 코로나19 관련 방침 문자메시지. 독자 제공


○ 위드 코로나 앞두고 ‘미접종자 페널티’ 가시화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일부 기업은 자체적으로 사내 방역 조치를 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백신 접종 여부를 적용 기준으로 삼거나 미접종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직장 내 감염 예방을 위해서지만 일부는 “사실상 백신 의무화”라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서울의 한 호텔은 직원들의 접종 일정을 모두 기록하고 접종 예약을 하지 않은 직원을 따로 면담해 의견을 묻고 있다. 한 재단법인도 간부가 직원들의 접종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해당 재단의 직원 C 씨는 “알리고 싶지 않은 기저질환 때문에 접종을 피하고 있는데, 상사가 이유를 집요하게 물어 괴롭다”고 말했다.

정부의 위드 코로나 준비가 본격화하고, 기업의 자체적인 방역 완화가 이어지면 비슷한 갈등이 속출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4일부터 접종을 완료한 임직원에 한해 대면 교육과 회의를 허용하고 임원 식당 운영을 재개했다. 외부인 출입도 접종을 완료한 경우에 허용한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방역 지침을 바꿔 해외 출입국 임직원도 정부 격리 면제를 받은 경우 별도의 추가 격리 없이 코로나19 검사를 거쳐 출근하게 한다. SK와 LG 등도 향후 정부의 지침에 따라 재택근무 비율과 회의 인원 제한 등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 추가 예약 안 한 미접종자 약 400만 명

현행 감염병예방법상 기업이 근로자에게 백신 접종을 강제하거나 미접종을 이유로 해고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최근 학원 등의 채용 공고에서는 “백신 접종 완료 여부를 증명할 서류를 함께 내라”는 문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실상 백신 미접종자를 뽑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이 미접종자에게 별도의 방역 조치를 내리는 건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12일 브리핑에서 “위험도가 높은 사업장에서 안전한 환경을 위해 미접종자를 자체 검사하는 등의 조치는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경제 활동이 활발한 젊은층에서 백신 접종을 사실상 거부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12일 0시 기준 백신을 한 차례도 맞지 않은 30대는 93만3996명. 전체 30대 인구 중 14.0%에 해당한다. 지난달 30일에 마감된 미접종자 추가 예약 때도 30대의 예약률은 7.7%에 그쳤다. 이상반응 걱정이나 기저질환 등의 이유로 접종을 거부한 성인은 약 400만 명으로 추산된다.

○ ‘백신 갈등’ 줄일 대책 필요
자칫 직장 내 백신 갈등이 미국처럼 줄소송으로 비화하지 않으려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내에서는 지난달 근로자 100인 이상 민간 기업에서도 사실상 백신 접종을 의무화해 갈등이 커지고 있다. 유나이티드항공이 미접종 근로자의 해고 절차에 착수하자 일부 직원이 차별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미접종자에게 코로나19 검사를 요구하는 차원을 넘어서 접종을 강요할 경우 오히려 반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미접종자 대다수는 건강 염려에서 비롯된 ‘백신 주저’ 집단인데, 강요당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백신 저항’ 집단으로 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위드 코로나로 갈수록 직장 내 백신 접종을 둘러싼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예상되는 갈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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