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는 신이 준 마지막 선물” 77세에 드라이브 날리는 비결은?[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 기자

입력 2020-10-24 14:00 수정 2021-01-2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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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세 이승자 씨는 탁구를 잘 치기 위해 피트니스센터에서 근육 운동도 하고 있다. 아마추어사진가 정동운
“제대로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면 장수는 저주가 아닌 선물이다. 그것은 기회로 가득하고, 시간이라는 선물이 있는 인생이다.”

‘100세 인생(The 100-Year Life)’ 이란 책을 쓴 린다 그래튼(Lynda Gratton)과 앤드루 스콧(Andrew Scott)이 주장한 것이다. 길어진 삶에 적극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고통스런 삶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로 만 77세인 이승자 씨는 10년 전 탁구에 입문해 ‘슬기로운 노년생활’을 즐기고 있다. 탁구를 친구 삼아 즐겁고 활기차게 삶을 가꿔 나가고 있다.

“2010년 12월이었다. 경기도 고양 일산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았다가 탁구를 시작했다. 당초 풍물을 배우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서 같은 층 탁구장에서 탁구 치는 사람들을 창문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탁구 총무님이 들어오라고 했고 ‘한번 쳐보실래요?’라고 하며 탁구채를 건넨 게 내 인생을 바꿨다. 총무님이 잘 친다며 탁구부 가입을 권유했고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해야 해서 탁구를 시작했다.”

77세 이승자 씨는 탁구를 시작한 뒤 6개월만인 2011년 5월 고양시장기탁구대회에 출전해 실버 여자3부에서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아마추어사진가 정동운
이 씨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회원 칠순잔치가 있어 탁구장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회원들이 많았다면 내가 탁구 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참 운 좋게 탁구라는 좋은 스포츠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탁구가 주는 재미가 좋았다. 상대가 있고 공을 넘기며 다양한 기술을 쓸 수도 있었다. 몸에 크게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운동량도 상당했다. 무엇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칠 수 있어 좋았다. “처음엔 4,5 시간씩 쳐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이 씨는 지금도 매일 3시간 이상 탁구를 치고 있다. 과거 테니스와 배드민턴, 등산, 헬스도 했지만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하진 않았다.

탁구를 시작할 즈음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대우증권탁구단(현 미래에셋대우) 감독 출신인 김병승 전 대한탁구협회 부회장(76)을 만난 것도 또 다른 행운이었다. 김 전 부회장은 이 씨의 가능성을 보고 체계적으로 훈련시켰고 젊은 사람들도 하기 힘든 드라이브까지 걸 수 있게 만들었다. 김 전 부회장은 “내가 복지관 자원봉사를 그만 둘 경우 탁구를 지도할 사람이 필요했다. 열심히 하시는 분들 중에서 남자 1명, 여자 4명을 선발해 훈련시켰는데 그 중에 이승자 씨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탁구를 시작한 뒤 6개월만인 2011년 5월 고양시장기탁구대회에 출전해 실버 여자3부에서 3위를 차지했다.

77세 이승자 씨는 엘리트 남자선수들이 날리는 드라이브를 유심히 지켜보며 자신의 실력 향상의 동기로 삼고 있다. 아마추어사진가 정동운
이 씨는 실버대회에 출전한 뒤 “건강 증진과 탁구를 통한 무한도전을 하기 위해 나이 제한이 없는 생활체육대회에 출전했다”고 말했다. 생활체육탁구대회는 실버부분과 일반으로 치러지며 일반은 수준별로만 구분하고 나이 제한은 없다. 이 씨는 지금까지 전국대회 30회 이상 출전했다.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4명 씩 치르는 조별리그는 80% 이상 통과했고 8강까지 오른 적도 있다. 2013년 제6회 춘천소양강배 전국오픈 탁구대회에선 여자복식 6부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67세에 탁구에 입문해 전국대회를 다니며 드라이브까지 선보이다 보니 ‘유명 인사’가 됐다. 김택수 미래에셋대우탁구단 감독 등 지도자는 물론 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남자 국가대표 장우진(25·미래에셋대우)도 ‘꿈나무 할머니’ 이 씨에 반해 대표팀 운동복에 직접 사인해 선물로 주기도 했다. 장우진도 이 씨가 날린 드라이브가 상대 테이블 구석에 힘차게 꽂히는 것을 보고 “정말 대단한 기술”이라며 ‘엄지 척’으로 답했다.

이 씨는 파워 넘치는 남자 엘리트 선수들 경기 영상을 보며 훈련한다. 그는 “남자 선수들 드라이브를 보면 정말 멋있다. 그래서 따라 하려고 하다보니 실력이 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부회장은 “이 씨는 남자 못지않게 탁구를 친다. 솔직히 같은 연령대 남자들도 드라이브를 못 건다. 젊은 여자들도 잘 못한다. 정말 대단한 파워다”고 말했다.

77세 이승자 씨는 매일 3시간 이상 탁구를 치며 삶의 재미를 찾고 건강도 챙기고 있다. 아마추어사진가 정동운
이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2.5단계 땐 탁구를 못 쳐 우울했는데 2.0단계, 그리고 1단계로 내려가 다시 탁구를 치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탁구를 못 칠 땐 집에서 고정식자전거도 타고 공원을 걷기도 했지만 힘이 붙지 않았다. 그는 “다시 스매싱을 날리고 드라이브를 거니 힘도 넘치고 사는 맛이 난다”며 웃었다. 손자가 7명인 ‘할머니’이지만 탁구에선 할머니 소릴 듣기 싫다. 그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매일 헬스로 근육을 키우며 탁구를 치고 있는 이유다.

이 씨는 “노안으로 돋보기를 썼었는데 탁구 친 뒤부터는 돋보기 없이 신문을 보고 있다”며 시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실제로 탁구는 시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김 전 부회장의 설명이다.

“274cm, 152.5cm 테이블 위에서 15.25cm 높이의 네트를 사이에 두고 지름 3.72~3.83cm작은 공을 치다보니 시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또 빠른 공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탁구채를 휘두르기 때문에 좌우 뇌에 큰 자극이 돼 치매 예방에도 좋다. 바닥에 떨어진 볼을 줍는 것도 상당한 운동이 된다. 겉으로 보기엔 별로 안 움직이는 것 같은데 포핸드 백핸드 할 때 전신운동이 된다. 탁구는 최고의 실버스포츠다.”

100세 시대를 살아갈 때 스포츠는 좋은 ‘평생 친구’가 될 수 있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특정 스포츠를 즐기면 늘어난 시간을 잘 활용하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다”고 말했다. 특히 삶의 태도도 달라진다. 김 교수는 “이승자 선생님은 드라이브까지 날리는 것을 보면 스포츠 심리학적으로 운동을 하는 내적동기의 최고 수준인 감각체험까지 이른 것 같다. 몸을 움직이면서 수준 높은 기술을 발휘하며 큰 자부심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스포츠를 즐기면서 기능이 향상되고 그런 발전 된 모습에 주변 사람들의 칭찬까지 받으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노력한다. 이 선생님이 탁구에 애착을 가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올해로 만 77세인 이승자 씨는 10년 전 탁구에 입문해 ‘슬기로운 노년생활’을 즐기고 있다. 탁구를 친구 삼아 즐겁고 활기차게 삶을 가꿔 나가고 있다. 아마추어사진가 정동운
이 씨는 한 때 서울시 생활체육송파탁구협연합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탁구로 잘 알려져 있었고 자원봉사도 자주하다보니 송파연합회 쪽에서 요청한 것이다. 이런 공로로 2014년 6월 송파구청장으로부터 표창장도 받았다.

이 씨는 “이제 탁구는 내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 됐다. 건강을 위해 뭐든 해야 했는데 탁구를 선택한 게 행운이었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고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다. 힘이 닿는 데까지 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선수’다. 엘리트 선수가 아니라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 씨는 “목표가 없으면 재미도 의미도 없다. 신이 준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탁구를 칠 생각”이라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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