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파서 안다” 환자와 함께 싸우는 ‘암 백신’ 권위자

김상훈 기자

입력 2020-06-06 03:00 수정 2020-07-1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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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베스트 닥터]<3> 박경화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

박경화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암의 재발과 전이를 막는 종양백신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암과 투병 중인 의사다. 이 때문에 암 환자들의 심리와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지난해 60대 초반의 여성 환자가 박경화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48·여)를 찾아왔다. 박 교수는 유방암을 전문으로 치료한다. 그 환자는 이미 유방암 수술을 받았지만 암이 재발했고, 뇌까지 전이돼 있었다. 박 교수도 항암제를 투여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박 교수는 고려대 안암병원이 정부 지원을 받고 진행하는 암 정밀의료사업단(K마스터)의 실무 책임자다. 암 정밀의료는 유전자를 활용해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 이 사업의 실무 책임자답게 박 교수는 환자의 유전자를 분석한 뒤 최적의 약을 찾아내 투여했다. 뇌로 전이됐던 암이 사라졌다. 아직 치료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꽤나 낙관적이다.》

○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사

환자들 사이에 박 교수는 ‘약 박사’로 알려져 있다. 항암제의 특징이며 세세한 부작용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지식을 책에서만 얻은 건 아니다. 직접 경험으로 체득했다. 박 교수 또한 항암제를 먹었으며, 재발까지 경험한 암 환자다.

의대 본과 2학년 시절인 1993년, 세부 전공을 결정할 때였다. 당시만 해도 암 치료법이 다양하지 않았고, 수술에 생사가 달려 있었다. 5년 생존율도 아주 높지는 않았다. 박 교수는 암 치료의 미래를 종양학에서 찾기로 했다. 지금의 진료과를 택한 배경이다.

1년 후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암 판정을 받았다. 암의 종류를 밝히지 않은 박 교수는 “다소 공격적이고 5년 생존율도 비교적 낮은 암”이라고만 언급했다.

박 교수는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늘의 뜻인가”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예측한 것도 아닌데, 1년 전 선택한 전공이 자신의 진료에 도움이 되는 분야였던 것이다. 박 교수는 이후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았다. 2000년경에는 사실상 완치 판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2013년 재발했다. 그래도 박 교수는 씩씩하게 투병 중이다. “암 진행 속도가 상당히 느려 생활에 큰 지장은 없어요.”

박 교수는 그 자신이 암과 싸우고 있기에 암 환자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안다. 박 교수는 진료실에서 그 흔한 차도 마시지 않는다. 맹물만 먹는다. 이 또한 환자의 심리를 의식해서다. “암 환자들은 의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아요. 내가 특정 차를 마시면 그 차가 몸에 좋을 거라 지레짐작해서 그 차를 마셔요. 그러니 아무 차나 마실 수 없죠.”


○ 종양백신 연구에 전념
환자의 처지에서 암을 들여다보면서 재발과 전이가 가장 큰 과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환자는 재발하지 않고 오래 사는데, 어떤 환자는 치료 결과가 좋았는데 재발한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종양백신’에 주목했다. 2004년 박 교수는 미국의 종양백신 전문가를 무작정 찾아갔다. 2년의 연구를 마치고 귀국한 뒤 현재까지 종양백신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사람들은 독감을 예방하기 위해 백신을 맞는다. 예방 접종을 하면 중증 독감으로 악화할 확률이 크게 떨어진다. 같은 이치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종식도 결국에는 백신에 달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암에 적용한 것이 종양백신이다. 종양백신은 어떻게 작용할까. 먼저 암 세포에서 많이 발견되는 단백질의 일부를 주사로 투여한다. 그러면 이 단백질과 싸우기 위해 T세포라는 면역 세포가 생긴다. 단백질이 ‘항원’, T세포가 ‘항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암과 싸우는 면역 세포를 늘림으로써 암을 죽이거나 재발을 막는 것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면역항암제는 이와 좀 달라서, ‘지친 면역 세포’를 활성화시켜 암과 싸우도록 하는 원리다.

종양백신은 항암제의 부작용인 독성도 적고, 약제비도 덜 든다. 여러모로 이점이 많은 셈인데, 현재는 널리 사용되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는 주로 암의 재발을 막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유방암을 비롯한 일부 암에서만 사용되는 점도 한계라고 볼 수 있다.

향후 전망은 좋아 보인다. 일단 미국에서는 여러 암에 쓸 수 있도록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박 교수 또한 국내 바이오 벤처와 함께 이 기술을 연구 중이며 올 하반기(7∼12월)에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 교수는 “유방암 분야에서 종양백신이 성공하면 다른 암 분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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