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금융이라던 P2P, 어디까지 쪼그라드나

김형민 기자

입력 2021-04-23 03:00 수정 2021-04-23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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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첫선 뒤 각광받았지만
규제 공백-등록 지연에 급속 쇠퇴
당국과 법정최고금리 위반 갈등
징계 받으면 대형 업체도 폐업위기


개인 간 대출·금융투자(P2P)업체 ‘테라펀딩’에 500만 원을 투자한 장모 씨(37)는 요즘 회사가 문을 닫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투자상품의 만기는 2018년 11월이었지만 아직까지 투자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테라펀딩은 법정 최고금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올 초 금융감독원으로부터 3∼6개월간 영업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시행된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온투법)에 따라 P2P업체들은 올 8월까지 금융위원회에 등록하지 않으면 영업을 할 수 없다.

테라펀딩은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징계가 확정되면 향후 3년간 등록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미 양태영 테라펀딩 대표도 “징계가 확정되면 회사를 계속 운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장 씨는 “부동산 담보 대출로 P2P업계 선두를 달리던 회사마저 이런 상황이라니 당황스럽다”고 했다.

금융당국이 ‘혁신금융’의 대표 사례로 꼽았던 P2P 시장이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대형 업체들이 줄줄이 중징계를 받은 데다 정식 등록을 위한 당국의 심사가 지연되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러는 사이 P2P업체들의 대출 연체율은 뛰고 있어 투자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P2P업체 공시 사이트인 ‘미드레이트’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국내에서 영업 중인 P2P업체는 110개로 1년 전(142개)에 비해 32개가 줄었다. 140개 안팎을 유지했던 P2P업체 수는 온투법이 시행된 지난해 8월 이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110개 업체 가운데 금융위에 등록 심사를 신청한 곳은 현재까지 5개에 불과하다. 5개 외에 등록을 고민하는 업체도 40개가 안 된다. 나머지는 폐업하거나 대부업체로 전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들이 돈을 모아 특정 개인이나 법인에 대출해주고 수익을 올리는 P2P는 2014년 첫선을 보인 뒤 수익률 연 10∼15%를 내세우며 젊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각광받았다. 중금리 대출 확대에 힘을 쏟던 금융당국도 금융혁신 사례로 치켜세웠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019년 동산담보 대출을 취급하던 P2P 회사 팝펀딩을 방문해 “동산금융이 혁신을 만나 기존 금융권에서는 출시하기 힘들었던 새로운 동산금융상품이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P2P 시장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관리하는 온투법은 지난해에야 시행됐다. 규제 공백을 틈타 급성장한 P2P업계에서는 사기, 횡령, 부실 대출 등의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투자자 신뢰를 잃으면서 P2P업체의 대출 잔액은 지난해 8월까지 2조5000억 원을 웃돌다가 현재 2조3000억 원 아래로 떨어졌다.

여기에다 금감원은 1월 중순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해 이자를 받은 6개 P2P업체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결정하고 금융위로 안건을 넘겼다. 하지만 3개월이 되도록 금융위는 징계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업체들의 등록 심사도 지연되고 있다.

P2P 시장이 쪼그라들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등록 P2P업체들이 폐업하거나 대부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투자자들은 다수 P2P업체를 대상으로 투자금 회수를 위한 집단소송을 벌이고 있다. 한 투자자는 “투자금을 2년째 받지 못하고 있다”며 “소송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자자 피해가 커지는 점을 고려해 8월까지 징계 및 등록 심사 절차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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