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으며 버티는 청춘…청년 37% “돈 없어 끼니 거른 적 있어”

세종,부산=주애진 기자 , 세종=송충현 기자 , 세종=남건우 기자 , 세종=구특교 기자

입력 2021-04-19 03:00:00 수정 2021-04-19 13: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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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3苦세대 <중>





20대 대학생 이모 씨(여)의 하루 식비는 약 5000원 정도다. 교통비, 휴대전화비 등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을 빼고 남은 돈이다. 아침식사를 집에서 해결하고 나오면 점심, 저녁식사가 늘 걱정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하는 이 씨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한다. 이 씨는 “점심과 저녁을 모두 밖에서 사먹어야 하는 날은 한 끼는 굶고 나머지 한 끼만 ‘밥버거’(밥으로 만든 버거)나 토스트 같은 걸로 간단히 때운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우리 사회에 묻혀 있던 결식 청년 등 청년 빈곤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취업난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아르바이트마저 힘들어지자 생활고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생겨나고 있다. 교육비, 주거비 등 절약할 수 있는 건 다 줄이고 ‘이제 줄일 건 식비뿐’이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청년들이다.


동아일보와 잡코리아가 지난달 20∼29세 청년 60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현재 소득이 없다’는 답변이 30.5%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28.0%는 월 소득이 100만 원 미만에 그쳤다. 청년 10명 중 4명(37.1%)은 ‘생활비가 부족해 끼니를 챙기지 못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 중 ‘1주일에 한두 번 이상 끼니를 못 챙겼다’는 대답도 27.1%나 됐다. 청년들의 수입이 불안정한 편이긴 하지만 지속적 빈곤이나 일시적 생활비 부족으로 식사를 거른 경험을 상당수 갖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청년의 생활고는 취업을 통해 해소됐는데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이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의 생활고에 대해 “단순히 먹는 게 부실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청년들의 시간적, 경제적 빈곤이 신체적, 심리적 건강까지 해치는 다차원적 사회 문제가 됐다”며 “청년 빈곤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취업난 청년들 “아낄건 식비뿐”… 3000원 식당 찾고, 하루 두끼만





《‘지금 이걸 먹어도 되는 걸까….’ 부산의 한 대학에 다니는 장모 씨(25·여)는 언제부턴가 하루 두 끼만 먹는 ‘두끼족’이 됐다. 새벽 6시부터 오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는 물류회사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느라 지치고 허기가 져도 맘 놓고 외식할 형편이 아니다. 가끔 비싼 음식을 사먹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메뉴판 앞에서 망설일 때가 많다. 장 씨는 “일이 너무 힘들어 가끔 맛있는 음식이라도 사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가도 이런 걸 먹어도 되는지 싶어 더 우울해진다”고 털어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취업난이 길어지자 극심한 생활고를 호소하는 청년들이 생겨나고 있다. 아르바이트마저 구하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아낄 건 식비뿐”이라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끼니조차 거른다. 코로나19 사태로 청년 빈곤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 청년 37% “돈 없어 끼니 거른 적 있다”


“오전에 삼각김밥이랑 초코우유 먹었어요. 점심은 안 먹었고요.”

지난달 15일 부산에서 만난 장 씨는 이날 점심을 걸렀다. 살을 빼기 위해 ‘간헐적 단식’을 하는 이도 있지만 장 씨의 하루 두 끼는 의미가 다르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120만 원 정도 번다. 장 씨는 “자취방 월세 40만 원을 내고 교통비, 전공 관련 실습비 등 고정 지출을 빼면 늘 빠듯하다”며 “저렴한 학교식당을 주로 이용하고 외식을 해도 7000∼8000원짜리 백반을 자주 먹는다”고 했다. 그는 “친구들도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없다. 알바 하느라 시간적 여유도 없어 다들 각박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장 씨처럼 끼니를 챙기기 힘든 청년들은 얼마나 될까. 동아일보와 잡코리아가 지난달 20∼29세 청년 607명에게 ‘생활비가 부족해 끼니를 챙기지 못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37.1%가 ‘있다’고 답했다. 지속적으로 굶진 않아도 일시적으로 생활비가 떨어져 끼니를 걸러본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답한 225명 가운데 절반(52.0%)은 식사를 못 할 때 ‘과자 등으로 버틴다’고 했고, 36%는 그냥 ‘굶는다’고 했다.

특히 부모와 떨어져 홀로 학교를 다니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일수록 생활고를 호소한다. 혼자 서울에 살면서 취직을 준비하는 양모 씨(24·여)는 편의점이나 온라인쇼핑몰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할인하는 식품을 주로 사먹는다. 그는 “자취를 하니까 부모님과 같이 사는 친구들보다 경제적 부담이 더 크다. 책값, 시험 응시료 등 취업 준비에 돈이 많이 필요해 결국 식비를 절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18년 가처분소득 기준 청년 1인 가구의 빈곤율은 19.8%로,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8.6%)의 2배 이상으로 높았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더 악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청년 무료 도시락, 경쟁률 10 대 1


음식값이 저렴한 ‘반값식당’엔 생활고에 지친 청년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문수 신부는 혼자 살던 청년이 굶주리다가 사망한 사연을 듣고 2017년 말 서울 성북구에 ‘청년밥상 문간’을 차렸다. 이곳에선 3000원만 내면 김치찌개에 공깃밥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 주머니가 가벼운 청년들에겐 반가운 곳이다.

지난달 24일 이 식당에서 ‘혼밥’(혼자 식사)하는 청년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김모 씨(26)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이라 집에서 용돈을 받는데 한 달에 20만 원 정도를 식비로 쓴다”며 “음식을 사먹어야 할 땐 이곳을 주로 찾는다”고 했다. 이 신부는 “요즘 취업이 어렵고 코로나19로 알바도 쉽지 않다”며 “청년들이 부모님께 지원받는 게 미안해서 끼니를 거르거나 부실하게 먹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구호단체 기아대책은 빈곤 청년을 위한 ‘청년도시락사업’을 하고 있다. 중위소득 100% 이하의 취약계층 대학생에게 한 학기에 식비 35만 원을 지원한다. 올 1학기에는 150명을 최종 선발했는데 신청자가 1600명이나 몰렸다. 지원을 받으려면 1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셈이다. 하영주 기아대책 팀장은 “경쟁률이 1.5 대 1 정도였는데 신청자가 갑자기 너무 늘어서 깜짝 놀랐다. 그만큼 어려운 청년이 많아졌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 심각성 가려진 청년 빈곤, 갈수록 악화


장기화된 취업난으로 청년들이 겪는 생활고는 갈수록 악화하는데 이를 취업 이행기에 겪는 일시적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청년들은 빚을 지고 교문 밖을 나선다. 제때 취업을 못 하면 이 대출조차 갚기 어려워진다. 통계청의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9세 이하인 가구주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2020년 3월 말 기준 32.5%로 전년보다 3.4%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40대(0.5%포인트), 50대(0.6%포인트)의 상승률보다 높다.

1인 가구가 느는데 청년 빈곤의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점도 해법 마련을 어렵게 한다. 부모와 경제적으로 분리된 ‘독립가구’로 살아가는 청년들의 경제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은 부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취업만 하면 경제난도 해소될 수 있다는 인식이 청년 빈곤의 심각성을 가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자리에만 초점이 맞춰진 청년정책을 다변화하고 청년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경숙 평택대 아동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운영하는 청년 취업지원센터를 거점으로 빈곤 청년을 위한 급식이나 도시락 등을 지원해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처럼 대학을 거점으로 비상생활자금이나 비상식품 지원 등 빈곤 학생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대안이다. 미 대학푸드뱅크연합(CUFBA)은 많은 대학과 비영리단체들이 참여해 결식 대학생들에게 식사를 지원하고 있다.


“유통기한 임박한 음식 반값 할인” 앱 인기


한 유튜버가 올린 ‘1만5000원으로 한 달 내내 고기 먹는 법’ ‘일주일 1만5000원으로 사는 법’ 등 ‘자취 꿀팁’ 브이로그 영상. 유튜브 화면 캡처


‘1만5000원으로 한 달 내내 고기 먹는 방법’, ‘대학생 식비절약’….

요즘 유튜브엔 식비절약 아이디어 영상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경제난으로 끼니를 거르는 젊은이들에게 이 식비 절약 ‘꿀팁’ 콘텐츠는 인기가 있다.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쏠쏠하게 활용된다.

음식 마감할인 중개 플랫폼인 ‘라스트 오더’는 현재 있는 곳에서 가까운 편의점과 마트, 식당 등에서 마감이 임박한 식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게 안내해준다. ‘세상에 버려지는 음식이 없는 날까지’를 모토로 한 이 앱은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들에겐 인기다. 식비 절약뿐 아니라 환경 보호의 가치를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청년들도 자주 이용한다. 다운로드 횟수는 약 50만 회에 이른다. 이 앱을 이용하는 신모 씨는 “자취를 시작한 뒤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근처 편의점에서 거의 반값에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유튜브에서도 ‘짠내’ 나는 식비 절약 팁이 공유되고 있다. 30대 직장인 유튜버 ‘강과장’이 지난해 올려놓은 ‘식비절약방법’ 영상 중 돼지 뒷다리살 2kg을 1만5900원에 사 나눈 뒤에 필요할 때 불고기로 만들어 먹는 영상은 107만 건의 조회수가 나왔다.

세종,부산=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세종=남건우 기자 woo@donga.com
세종=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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