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짝퉁 판명 났는데 3개월 지났으니 환불 안된다?”…무슨 이런 법이

뉴스1

입력 2020-11-20 14:08 수정 2020-11-2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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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거리두기가 1.5단계로 격상된 19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출근길을 나서고 있다. 2020.11.19/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 직장인 A씨(46)는 지난 6월 네이버쇼핑에서 ‘퓨어블루 KF94 마스크’ 30장을 구매했다가 낭패를 봤다. 마스크를 착용했다가 피부가 가려운 질환이 생겼다. 알고 보니 A씨가 산 마스크는 포장만 정품이고 알맹이는 가짜인 ‘무허가 KF마스크’였다.

황당한 일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A씨가 10월 말 정부의 발표를 확인하고 네이버쇼핑에 환불을 요청했지만 ‘구매 후 3개월이 지나 환불이 어렵다’는 말만 돌아왔다. A씨는 “사기를 당했는데 일반 상품과 같은 환불 규정이 적용되는 법이 어딨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무사히 환불을 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행 전자상거래법상 A씨가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제조자 혹은 판매자가 가짜 상품을 팔았더라도 구매 후 3개월이 지나면 청약 철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법에 묶여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불 구경만 하는 실정이다.

◇정부가 ‘가짜 마스크’ 적발했는데…환불은 ‘3개월’까지만?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30일 ‘포장갈이’ 수법으로 무허가 보건용마스크(KF94) 1002만장을 제조·판매한 혐의(약사법 위반)로 마스크 제조사 대표 B씨를 구속하고, 관련자 4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B씨 등은 지난 6월26일부터 10월16일까지 무허가 KF94 마스크(가짜 마스크) 1002만장을 생산한 뒤, 허가받은 제조사 3곳으로부터 정품 마스크 포장지만 공급받아 가짜 마스크를 포장하는 수법으로 시가 40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가짜 마스크는 네이버쇼핑, 쿠팡, 위메프, 티몬 등 오픈마켓을 통해 4개월간 시중에 유통된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가 공개한 가짜 마스크는 Δ퓨어블루 황사방역용 마스크(KF94) Δ휘퓨어 황사 방역마스크(KF94) Δ클린숨 황사마스크(KF94) 3종이다. 식약처는 정품 마스크와 가품 마스크의 차이점까지 자세히 공개하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당국이 가짜 마스크의 제품명과 구분법까지 공개하자, 시장에서는 앞다퉈 환불 또는 교환을 요구하는 ‘환불 대란’이 발생했다. 오픈마켓도 식약처 발표에 따라 자체 접수창구를 개설하며 가품 마스크 환불·교환에 나섰다.

문제는 가짜 마스크를 샀더라도 ‘구매 시점’에 따라 환불 가능 여부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구입 후 3개월 안에 환불을 요청하면 돈으로 돌려받을 수 있지만, 3개월을 넘긴 시점에서는 판매자가 환불해줄 책임이 없다.

현행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 제17조 제3항은 ‘재화 등의 내용이 표시·광고의 내용과 다르거나 계약내용과 다르게 이행된 경우에는 그 재화 등을 공급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 그 사실을 안 날 또는 알 수 있었던 날부터 30일 이내에 청약철회 등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항대로라면 가짜 마스크라는 사실을 안 날(식약처 발표)로부터 30일 내라면 환불을 요청할 수 있지만, 당국과 업계는 청약 철회 시효를 ‘3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청약 철회 시효를 넓게 해석하면 판매자가 ‘무한정 환불’을 해야 하는 제약이 될 수 있다”며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고 1년, 2년 뒤에 환불을 요청하더라도 이에 응해야 하기 때문에 판매자에게 과도한 족쇄가 될 수 있다”고 규정을 좁게 해석한 배경을 설명했다.

◇‘환불 시효’ 묶인 정부·오픈마켓…“환불 거절해도 강제 못 해”

전자상거래법의 ‘환불 시효’는 도미노처럼 연쇄적인 파장을 낳았다. 먼저 제조사와 판매자는 가짜 마스크를 팔고도 시효를 넘기면 소비자에게 돌려줄 의무가 없다. 공정위나 한국소비자원 등 당국도 상위법에 묶여 적극적으로 규제나 제재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픈마켓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통신판매중개자인 오픈마켓 플랫폼은 입점 판매자가 환불을 적법하게 거절하면 적극적인 중재가 어려워서다. 소비자는 사실상 사기를 당하고도 구제를 받을 수 없고, 가짜 마스크를 제조·판매한 사기꾼만 돈을 버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다수의 피해가 우려된다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환불이나 교환 등 후속조치를 강제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상위법(전자상거래법) 안에서만 가능하다”며 “소비자원의 집단분쟁조정이나, 공정위의 사업자 조정제도 역시 전자상거래법의 하위법령에 근거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고 털어놨다.

가짜 마스크 환불 시효가 지난 시점이 6월이라는 것도 골칫거리다. 당시는 보건용마스크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던 터라 정부가 공적 마스크 구매 한도를 1인당 10장으로 제한했던 시기다.

마스크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시중에 풀렸던 가짜 마스크 1000만장 중 상당수가 6월 말에 유통됐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가짜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렸을 때 산 소비자는 정작 환불을 받을 수 없는 셈이다.

◇오픈마켓마다 환불정책 제각각…“환불받으려면 소송뿐”

‘가짜 마스크 환불 문제’는 당국의 손을 떠나 오픈마켓 플랫폼 사업자의 ‘양심’에 맡겨진 모양새다. 오픈마켓은 법적으로 환불 책임이 없기 때문에 환불 정책도 제각각이다.

가장 환불에 적극적으로 나선 플랫폼은 쿠팡이다. 쿠팡은 식약처가 발표한 무허가 마스크와 동일한 모델을 구매한 고객이 환불을 요청할 경우, 구매 시점에 상관없이 반품·환불을 진행하고 있다.

티몬도 가품 마스크로 판명될 경우 식약처가 발표한 무허가 마스크의 모델명과 제조·판매 시점(6월26일)을 기준으로 교환·환불 접수를 하고 있다. 구매한 지 3개월이 지났더라도 환불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규정의 폭을 넓혔다.

티몬 관계자는 “티몬을 믿고 구매한 고객의 신뢰 보호를 위해 판매자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며 “가품이 확인된 마스크라면 정부가 공표한 최초 제조일을 기준으로 환불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위메프와 네이버쇼핑은 소비자가 환불을 요청할 경우 제조사와의 중재만 담당하거나 3개월이 지난 구매 건은 환불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위메프 관계자는 “가품 이슈가 발생한 마스크에 대해 플랫폼 사업자가 직접 반품을 약속하기 어렵다”며 “소비자가 환불을 원할 경우 제조사와 상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제조사가 환불을 거절할 경우엔 중재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쇼핑 관계자도 “네이버쇼핑은 원칙적으로 통신판매중개자이기 때문에 판매자나 제조사에게 환불을 강제하기 어렵다”며 “구매 후 3개월이 지난 상품은 환불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소비자가 환불을 받기 위해서는 직접 판매자나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법정 다툼을 벌이는 길뿐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 당국은 기본적으로 3개월이 지난 청약철회는 소송으로 해결하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약관법이나 민사상 사기적 거래를 입증해 대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재판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돈이 들 수밖에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정부도 전자상거래법의 ‘보호 공백’ 문제를 인지하고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선 상태다. 공정위 관계자는 “전자상거래법이 소비자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점은 사실”이라며 “오픈마켓 플랫폼 사업자가 입점 판매자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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