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시대 성장 기회 왔는데… ‘52시간제’에 발목 잡힌 게임

유근형 기자

입력 2020-10-26 03:00 수정 2020-10-26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개발 막판엔 장시간 근무 불가피… 시간제한에 신작 출시 지연” 주장
선진국보다 위반 처벌 수위도 높아
업계 “근로시간 유연하게 적용을” 문체부에 요구…6개월째 진전 없어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경직된 근무시간 때문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게임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게임 산업이 호기를 맞고 있지만 주 52시간 근무제가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작 출시를 앞두고 일을 몰아서 해야 하는 업계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아 신작 출시가 지연되는 등 제대로 글로벌 이용자들의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K-게임’의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게임사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한때 ‘판교의 등대’로 불리며 야근이 많기로 유명했던 게임업계는 연장, 야간, 휴일근로 수당을 미리 책정해 수당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리프레시 휴가 등 보상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일이 몰리는 특정 시기에는 대응방법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집중적으로 일을 할 수 없으니 신작 출시 일정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엔씨소프트가 내놓은 신작 ‘리니지2M’은 2년 6개월이 걸려서야 간신히 출시되기도 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신작 출시, 긴급 점검, 업데이트 등 서비스 관련 이슈가 빈번하게 나오는 게임 업계의 특성상 특정 기간엔 장시간 근무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법 적용이 경직돼 있다보니 게임 업계 경영진은 항상 위법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게임 업계는 업계 현실을 반영해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건의해왔다. 현재 3개월 단위로 운영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를 최소 6개월로, 1개월로 제한된 선택적 근로시간제 단위도 최소 3개월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임 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생산 예측이 어렵고 작업 배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게임업계는 5월 문화체육관광부와의 간담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업계의 요구를 전달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은 “일정한 시간에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제조업과는 달리 게임업계는 수년간 개발한 것을 막판에 갈아엎는 등 개발의 불규칙성이 크다”며 “주 52시간 근로제를 준수하려다 개발 피크 단계에 개발을 미루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위반에 대한 처벌 수위도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 52시간제 위반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노사 합의를 했더라도 회사 법인과 대표가 형사처벌을 피하기 힘들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별도의 처벌규정이 없는 미국 유럽 국가들과 달리 국내 제도는 범법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