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좌절 20대들, 주식대박 좇아 거침없는 ‘빚투’

김자현 기자 , 장윤정 기자

입력 2020-08-13 03:00 수정 2020-08-13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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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대출 증가율 20대가 최고, 내집 마련 힘들자 주식에 눈 돌려
우량주에 투자해 수익 맛본 후 고수익 꿈꾸며 ‘투기개미’ 변질도




“똘똘한 바이오 주식 한 종목만 발굴하면….”

서울 관악구에 사는 3년 차 직장인 이모 씨(29)는 올해 3월 대출과 여유자금으로 마련한 6000만 원가량을 주식에 투자했다. 초기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목을 받고 있는 네이버, 카카오 등 ‘언택트(비대면)’ 관련 우량주들에 투자해 2배 가까운 수익을 내기도 했다. 코스피가 2,200대를 넘겨 횡보하자 기존 주식을 팔고 등락이 큰 코스닥 바이오 종목들에 투자한 것이 화근이었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투자금을 까먹기 시작했지만 이 씨는 여전히 ‘한방’을 꿈꾸며 추가로 신용매수를 고민하고 있다.

최근 주식시장이 달아오르자 빚을 내 주식 투자에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취업난과 집값 급등으로 좌절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주식시장에서 ‘대박의 꿈’을 좇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 20대, ‘빚투’로 간다

12일 미래통합당 윤두현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입수한 증권사 6곳(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키움증권)의 신용공여잔액 자료에 따르면 20대의 증가율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신용공여잔액은 증권사에서 돈을 빌린 총액이다. 빚을 내 주식을 사고파는 ‘신용융자’와 ‘신용대주’,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주식 담보대출’ 등이 포함된다. 생활자금 용도의 주식담보대출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주식 투자 목적으로 쓰인다.

2017년 3119억 원이던 20대의 신용공여잔액은 올해 6월 말 7243억 원으로 132.2%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대(39.4%)와 40대(22.4%), 50대(15.1%)에 비해 증가율이 두드러졌다. 20대 신용공여 채무자 수도 이 기간 4100명에서 1만922명으로 약 2.6배로 늘었다.

빚내서 투자하는 20, 30대 ‘빚투족’이 많이 늘어난 것은 젊은 세대들이 직면한 경제 상황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자산이 부족한 20대들에게 목돈이 필요한 부동산 등 기존 투자처는 문턱이 높은 장벽이다.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 등은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다. ‘빚투 현상’이 온라인을 통한 정보 습득이 빠르고 투자에 공격적인 밀레니얼 세대(1982∼2000년 출생)에서 나타나는 세계적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상황에서 젊은층이 ‘가진 것이 없으니 잃을 것 없다’는 식의 유혹과 군중 심리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스마트 개미, 투기 개미로 변질 우려

‘빚투족’이 모든 연령대에서 늘어난 것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돈을 풀면서 유동자금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올해 들어 조사 대상 증권사의 신용공여잔액은 50대(4조9467억 원), 40대(4조7007억 원), 30대(2조4472억 원) 순으로 많다. 같은 기간 19세 이하 투자자들의 신용공여잔액도 86억 원에서 411억 원으로 늘었다. 이 연령대의 신용공여 채무자도 같은 기간 154명으로 894명으로 증가했다. 증권업계에선 자산시장의 큰손인 40, 50대 부모들이 미성년자 자녀들의 명의를 빌리거나 자녀의 자산을 불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투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경마, 카지노 시설 등이 폐쇄되면서 갈 곳 잃은 사행성 자금이 증시로 흘러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사실상 중단된 사행성 자금 일부가 주식시장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증시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고 개인들이 투자 자산을 불리는 수단이지만 최근 증시 상승세 속에서 투기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3월 이후 상승장에서 삼성전자 등 우량주 위주의 매수 흐름을 보이며 증시를 지탱했던 ‘스마트 개미’들이 최근 ‘투기 개미’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지수 하락을 2배로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나 원유 선물 상장지수증권(ETN), 우선주, 단기 변동성이 큰 바이오 종목 등을 옮겨 다니며 투기성 짙은 매매에 나서는 것이 대표적이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의 신용융자 잔액 증가는 주로 단기간에 주가가 급등했던 주식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자현 zion37@donga.com·장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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