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원격진료 놔둔채… 쉬운 것 골라 ‘성과내기’

세종=남건우 기자

입력 2020-02-20 03:00 수정 2020-02-20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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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정부 ‘첨예 갈등 해소’ 취지 의문
‘신산업 타협’ 첫 모델로 산악관광-공유숙박 추진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신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면서 그 첫 사례로 산악관광과 공유숙박 허용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두고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나 원격진료처럼 소비자에게 시급하고 이익단체의 반발이 거센 사안들은 놔둔 채, 상대적으로 타협을 이끌어내기 쉬운 대상만 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칫 정부의 규제 완화 성과만 부풀려지고 정작 사회적으로 중요한 갈등 과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이다.


○ 산악관광, 공유숙박에 ‘사회적 타협 모델’ 적용



19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말 ‘한걸음 모델’이라는 사회적 타협 모델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한걸음 모델은 ‘각자가 한 걸음씩 물러날 때 우리 사회가 크게 한 걸음 전진한다’는 뜻으로, 이해관계자 간 타협을 통해 신사업 도입을 이뤄내겠다는 개념이다. 정부가 이익단체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상생기금, 이익공유협약, 협동조합 결성 등의 방법을 동원해 당사자 간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거친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현행법을 근거로 신산업을 규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한걸음 모델은 기존 사업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을 통해 신산업의 도입을 원칙적으로 추진한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진일보한 개념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정부가 이 모델의 시범 검토 사례로 산악관광과 공유숙박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신사업 추진 의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고 있다. 산악관광은 산에 산악열차나 휴양·취사시설 등을 짓는 것으로, 지리산과 대관령 등 관광객이 많은 곳에서 사업 수요가 있다. 공유숙박은 자기 집의 남는 공간을 대여해주는 ‘위홈’이나 농어촌 지역의 빈집을 개·보수해 숙박업소로 활용하는 ‘다자요’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첨예한 사안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기존 법령이나 환경단체의 반대 때문에 추진이 어려웠던 만큼 오히려 규제 완화 이슈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산림휴양법이나 농어촌정비법 개정 등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과제라는 것이다. 오히려 타다나 원격진료처럼 사회 구성원 간 갈등 조정과 타협이 절실한 분야는 우선 과제에서 빠져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타다’는 ‘타다금지법’ 등이 계류돼 있어 국회 상황을 봐야 한다” “원격진료는 아직 복잡한 사안이라서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 “하기 쉬운 것만 해선 안 돼”



산업계에서는 정부의 신사업 도입 모델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초 타다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공유경제와 원격진료는 경제대국 한국에서 못 할 게 없다. 정부가 상생 방안을 만들고 사회적 대타협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후 1년이 지난 지금도 이처럼 갈등이 첨예한 과제들은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채 신구(新舊) 사업자 간 거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정치적 후폭풍을 우려한 나머지 국회 등으로 해결을 미루거나 뒤로 숨어버린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민 체감도나 산업계 파급력이 좀 더 높은 과제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칫 ‘규제 샌드박스 ○○건 달성’을 홍보하는 것처럼 양적 성과에 치중하면 실질적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현재까지의 한걸음 모델은 정부가 성과를 만들기 위해 안전한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허청장을 지낸 김호원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분야별로 언제까지 타협을 이끌어 내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세종=남건우 기자 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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