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3월 주총때 힘 더 세진다…“시행령까지 고쳐 혜택주나”

뉴스1

입력 2020-01-21 10:59 수정 2020-01-21 11: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사옥.2017.10.19/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27일 서울 강서구 발산1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한 박창진 사무장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조양호 회장의 연임저지에 성공한 뒤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2019.3.27/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이 기업을 상대로 배당 및 지배구조 개선, 회사 임원의 위법행위에 따른 해임청구권 행사 등을 요구하는 행위가 경영권 영향 목적이 없는 일반투자 활동으로 분류된다. 일반투자 목적으로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취득하거나 5% 이상 주주 지분이 1% 이상 변동될 경우 보유 현황 등만 월별로 약식 보고만 하면 된다. 그동안 이런 활동들은 경영권 영향 목적으로 분류돼 지분 변동 시 이 사실을 5일 이내에 상세히 공시해야 했었는데, 공시의무가 완화된 것이다.

정부는 21일 오전 국무회의를 열고 이른바 ‘5%룰’을 완화하는 이같은 내용의 자본시장법 등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돈을 댄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충직한 집사(steward)처럼 투자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행동 지침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는 기업 오너 일가의 전횡 견제와 배당 등 주주이익 제안으로 기업지배구조 및 주가수익률을 개선해 한국 증시를 한단계 레벨업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가 하면 정부의 과도한 기업 경영 개입으로 연금사회주의 부작용을 낳는다는 우려도 동시에 받는다. 700조원의 기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자본시장의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 716곳 중 273곳(38.1%)에 달한다. 이 중 보유지분이 10%를 넘는 기업은 80개사이다. 주식보유 비중이 5%를 넘으면 통상 경영 개입이 가능한 것으로 본다. 또한 716곳 중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 있는 상장사는 19곳, 2대 주주 150곳, 3대 주주 59곳, 4대 주주 24곳, 5대 주주 14곳 등 모두 266곳으로 국민연금이 5대 주주 이상의 지위인 곳은 전체 기업의 37.2%를 차지한다.

정부가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을 통해 기업 경영에 간섭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독립성 확보가 전제되지 않으면 연금사회주의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이 당장 오는 3월 주주총회 시즌에 주주권을 어떻게 행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재계에서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능력이 무력화된다고 토로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민연금이 기업의 이사 선·해임과 정관 변경 등을 보다 용이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백지위임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기업경영 내부장치까지도 직접적으로 정치·사회적인 관여와 통제의 소지를 확대하는 반시장적 조치”라고 했다.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탁자책임 전문위원은 “세계 어느 나라도 시행령까지 고쳐가면서 연기금에 혜택을 주는 나라는 없다”고 비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다른 목적이나 명분으로 이뤄지다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제도보다는 제도 활용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이라며 “이 제도를 활용해서 주가를 올리고 수익률을 제고해야 하는데, 벌을 주고 경영에 간섭하는 루트로 사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미국, 일본의 경우는 아웃소싱해서 펀드회사에 (주주권 행사를) 위임한다. 정부가 관여할 여지를 차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해 수익률이 제고될 수 있는 만큼 긍정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기업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가) 과도하지 않는 한,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한, 기업 가치를 올려 수익률이 올라갈 것”이라며 “너무 과민반응하면서 원상복구시키려는 재계의 생각과 시도가 우려된다”고 했다. 국민연금도 연금 사회주의나 과도한 경영 개입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공정한 절차를 거쳐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와함께 이날 개정된 국민연금법 시행령에 따라 가입자단체가 추천한 민간전문가가 상근전문위원으로 위촉돼 Δ투자정책전문위원회 Δ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Δ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 등 국민연금기금 내 3개 전문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게 된다. 지금까지는 위원 전체가 비상근위원으로 구성됐었는데, 상근직을 신설함으로써 기금운용 의사결정의 전문성·독립성을 높인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 시즌 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저지에 성공한 바 있는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연임 반대 결정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바 있다.

상근전문위원과 비상근전문위원으로 수탁자책임위원회의 내부 구조가 재편되면 상근전문위원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나온다. 이는 국민연금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권한 강화로 이어질 수 있어 독립성 확보가 여전히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윤창현 교수는 “상근전문위원을 만드는 것으로 거대한 연기금의 독립성이 제고된다고 보기 어렵다. 의심을 눈초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립성 확보를 위한 획기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은 “결국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감독할 사람을 상근전문위원으로 두겠다는 것인데, 정부 측 감시요원이 늘어난 것밖에 더 되겠느냐”고 말했다.

반대로 김우찬 교수는 “그동안 상근전문위원의 역할을 복지부 연금재정과장이 혼자 했는데, 권력이 분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방향”이라며 “상근전문위원이 위원장이라고 해서 더 많은 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추천은 순수하게 가입자 단체에서 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상근전문위원이 정부 입김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에 반기를 들 수도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훌륭한 사람을 모시는 것이다. 금융·경제·자산운용·법률·연금제도 분야에서 5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민간전문가로 자격요건이 돼있는데, 5년 이상을 10년 이상으로 강화해 베테랑을 모셔와야 한다”고 했다.

(서울=뉴스1)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