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밀리고 조합원 이탈… 위기의 노란택시 “우린 아마추어였다”
이소연 기자 , 구자준 기자
입력 2020-01-17 03:00 수정 2020-01-17 18:20
국내 첫 택시협동조합 ‘빨간불’
일명 ‘노란택시’로 불리는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쿱(coop) 택시’를 5년째 몰고 있는 택시 기사 이원권 씨(61)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현재 쿱 택시는 지난해 9월부터 조합원 100여 명의 임금 5억여 원을 체불한 상태다. 이 씨 등 조합원 21명은 지난해 12월 16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부지청에 임금체불 진정서를 제출했다.
국내 최초의 택시협동조합인 ‘쿱 택시’가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2015년 2월 박계동 전 한나라당 의원이 이사장을 맡아 출범한 쿱 택시는 당시 ‘사납금 없는 착한 택시’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현재 쿱 택시는 차고지 임차료도 내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됐다.
○ 횡령에 배임 의혹, 4개월째 임금 체불까지
야심 차게 출발했던 노란택시가 위기에 빠지기 시작한 건 2018년. 박 이사장의 출자금 유용 의혹 등이 불거졌다. 이후 검찰 조사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2015년 기준 187명이었던 조합원 수는 현재 90명까지 줄어들었다. 이 씨는 “모든 기사가 사주라 해서 기대했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며 “출범 당시 은행 대출까지 받아 마련한 출자금 2500만 원도 회수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운영진의 불투명한 경영으로 조합원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박 이사장이 물러나고 2018년 10월 이일열 이사장(68)이 새로 취임했지만 분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쿱 택시 소속 기사 서성교 씨(58) 등 3명은 “17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이 이사장을 횡령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본보가 입수한 고발장에 따르면 이 이사장은 지난해 7∼8월 총회나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조합 계좌에서 회삿돈 6100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봄부터 일부 조합원 임금이 체불되는 등 재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이 이사장은 ‘급여 가불증’을 임의로 만드는 방식으로 7차례에 걸쳐 회삿돈을 이체했다고 고발했다. 서 씨는 “직원 월급도 줄 돈이 없는데, 회삿돈을 가불해 자기 통장으로 이체한 게 말이 되느냐”고 분노했다.
앞서 6일 본보와 만난 이 이사장도 “회삿돈 6100만 원을 쓴 건 맞다”고 인정했다. 다만 망해가는 조합을 살려보려다 사기를 당했다는 해명이다. 이 이사장은 “한 자산가가 돈을 빌려주면 급한 불을 끄고, 자금 6억여 원을 투자하겠다고 유혹했다”며 “어이없는 상황이란 건 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우린 모두 아마추어였다”
조합 내부에선 ‘전문 경영인의 부재’가 주된 실패 원인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쿱 택시는 이사장과 이사, 감사까지 모두 조합 소속 택시 기사가 맡고 있다. 협동조합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이가 부재했다는 얘기다. 이 이사장도 “나를 포함해 협동조합이 뭐하는 건지 정확히 아는 이가 몇이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감사 기능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이사장의 자금 유용 의혹이 불거진 뒤 지난해 10월 조합 내부에서도 감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감사 자료를 작성한 택시 기사 A 씨는 “6100만 원을 인출한 뒤 다시 다 갚았다”는 이 이사장의 말만 듣고, 확인도 없이 감사 결과를 ‘전액 변제’로 처리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발장에 따르면 변제 사실을 입증할 증거는 전혀 없다. 쿱 택시의 강판성 이사(61)는 “우리 모두가 아무 물정 모르는 아마추어였다”고 털어놨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관계자는 “최근 법인택시회사들이 경영난을 겪다 보니 협동조합 모델로 전환하고 싶단 문의가 많다”며 “하지만 선의만으로 사업은 어렵다. 감사, 회계 등 관련 분야에서 전문 경영인을 갖춰야 제대로 된 경영 체계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구자준 기자
《 ‘사납금 없는 착한 택시’를 표방하며 2015년 2월 출범한 국내 최초의 택시협동조합 ‘쿱 택시’가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쿱 택시는 현재 조합원 100여 명의 임금(약 5억 원)을 4개월째 주지 못하고 있다. ‘모든 운전사가 사주’라며 야심 차게 닻을 올렸던 쿱 택시. 하지만 이젠 조합 내부에서도 “우리 모두 아마추어였다”며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4개월째 월급을 못 받아서… 어머니 기초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명 ‘노란택시’로 불리는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쿱(coop) 택시’를 5년째 몰고 있는 택시 기사 이원권 씨(61)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현재 쿱 택시는 지난해 9월부터 조합원 100여 명의 임금 5억여 원을 체불한 상태다. 이 씨 등 조합원 21명은 지난해 12월 16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부지청에 임금체불 진정서를 제출했다.
국내 최초의 택시협동조합인 ‘쿱 택시’가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2015년 2월 박계동 전 한나라당 의원이 이사장을 맡아 출범한 쿱 택시는 당시 ‘사납금 없는 착한 택시’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현재 쿱 택시는 차고지 임차료도 내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됐다.
○ 횡령에 배임 의혹, 4개월째 임금 체불까지
야심 차게 출발했던 노란택시가 위기에 빠지기 시작한 건 2018년. 박 이사장의 출자금 유용 의혹 등이 불거졌다. 이후 검찰 조사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2015년 기준 187명이었던 조합원 수는 현재 90명까지 줄어들었다. 이 씨는 “모든 기사가 사주라 해서 기대했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며 “출범 당시 은행 대출까지 받아 마련한 출자금 2500만 원도 회수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운영진의 불투명한 경영으로 조합원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박 이사장이 물러나고 2018년 10월 이일열 이사장(68)이 새로 취임했지만 분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쿱 택시 소속 기사 서성교 씨(58) 등 3명은 “17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이 이사장을 횡령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본보가 입수한 고발장에 따르면 이 이사장은 지난해 7∼8월 총회나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조합 계좌에서 회삿돈 6100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봄부터 일부 조합원 임금이 체불되는 등 재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이 이사장은 ‘급여 가불증’을 임의로 만드는 방식으로 7차례에 걸쳐 회삿돈을 이체했다고 고발했다. 서 씨는 “직원 월급도 줄 돈이 없는데, 회삿돈을 가불해 자기 통장으로 이체한 게 말이 되느냐”고 분노했다.
앞서 6일 본보와 만난 이 이사장도 “회삿돈 6100만 원을 쓴 건 맞다”고 인정했다. 다만 망해가는 조합을 살려보려다 사기를 당했다는 해명이다. 이 이사장은 “한 자산가가 돈을 빌려주면 급한 불을 끄고, 자금 6억여 원을 투자하겠다고 유혹했다”며 “어이없는 상황이란 건 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우린 모두 아마추어였다”
조합 내부에선 ‘전문 경영인의 부재’가 주된 실패 원인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쿱 택시는 이사장과 이사, 감사까지 모두 조합 소속 택시 기사가 맡고 있다. 협동조합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이가 부재했다는 얘기다. 이 이사장도 “나를 포함해 협동조합이 뭐하는 건지 정확히 아는 이가 몇이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감사 기능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이사장의 자금 유용 의혹이 불거진 뒤 지난해 10월 조합 내부에서도 감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감사 자료를 작성한 택시 기사 A 씨는 “6100만 원을 인출한 뒤 다시 다 갚았다”는 이 이사장의 말만 듣고, 확인도 없이 감사 결과를 ‘전액 변제’로 처리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발장에 따르면 변제 사실을 입증할 증거는 전혀 없다. 쿱 택시의 강판성 이사(61)는 “우리 모두가 아무 물정 모르는 아마추어였다”고 털어놨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관계자는 “최근 법인택시회사들이 경영난을 겪다 보니 협동조합 모델로 전환하고 싶단 문의가 많다”며 “하지만 선의만으로 사업은 어렵다. 감사, 회계 등 관련 분야에서 전문 경영인을 갖춰야 제대로 된 경영 체계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구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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