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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현의 신차명차 시승기]아우토반·알프스 거친 질주 BMW ‘액티브 투어러’

ev라운지
입력 2015-03-25 15:02:00업데이트 2023-05-10 09:10:33
독일 뮌헨공항을 빠져나와 택시에 오른 시간은 정확하게 오후 5시25분. BMW그룹이 세계 자동차담당 기자들을 위해 테스트 차량을 빌려주는 드라이브센터로 서둘러 이동했다. 공항에서 10여km 떨어진 이곳은 오후 5시면 문을 닫지만, 비행기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시간 연장을 부탁해 놓은 상태였다. 6시가 조금 못돼 겨우 도착해서 인수증에 사인하고 차키를 받아들었다.

이번 출장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스위스에서 열리는 ‘2015 제네바모터쇼’를 취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BMW가 최근 출시한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 220i’의 현지 시승이다. 굳이 액티브 투어러를 선택한 이유는 ‘투어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장거리 여행에 적합한 모델이라는 것이 가장 컸다. 독일 뮌헨에서 스위스 제네바까지 왕복 1800km 이상을 달려야하는 고된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전이 재미없고 편하기만 하다면 투어러를 고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투어러 앞에 붙은 ‘액티브’라는 단어는 장거리용이지만 결코 운전이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차는 지난달 국내에 출시한 ‘뉴 액티브 투어러’의 가솔린 모델로 아직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고 있다.

#굵은 눈발 날리는 아우토반에서 3차선까지 밀려나
시승코스는 뮌헨을 출발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리히텐슈타인, 스위스 루체른, 인터라켄, 프랑스 에비앙을 거쳐 스위스 제네바에 도착하는 약 800km 구간으로 정했다. 제네바로 가는 직선로를 택하지 않은 이유는 알프스의 험하고도 아름다운 산길을 액티브 투어러로 경험해보고 싶어서였다.

다음날 오전 8시 트렁크에 짐을 싣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이 차의 트렁크는 평소에 468리터의 화물을 실을 수 있지만, 뒷좌석을 접으면 최대 1510리터까지 확장할 수 있다. 서너 명의 가족여행에도 무리가 없는 크기다. 트렁크 바닥의 높이도 세단보다 높은 미니밴 수준이어서 허리를 굽히지 않고도 짐을 싣고 내리기가 편하다.

아우토반에 올라 인스부르크 방향으로 1시간여를 달리자 조금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늘었던 눈은 해발고도가 올라가면서 점점 함박눈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굵은 눈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의 차들은 굉음을 내며 씽씽 내달렸다. 기온은 0~3도 내외로 다행히 도로에 눈이 쌓이지 않고 곧바로 녹았다.

‘이런 눈 속을 저렇게 빨리 달리다니’ 순간 차의 계기반을 보니 속도계 바늘이 130km/h를 가리켰다. ‘아무리 아우토반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내 차도 겨울용 타이어를 꼈지만, 거친 눈 속을 130km/h로 내달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운전을 많이 하고 다녔지만, 눈길에서 속도를 내봐야 40~50km/h나 됐을까. 결국 1차선을 질주하는 차량들에 내주고 속도를 줄여 2차선으로 옮겼다가, 나중엔 3차선까지 밀려갔다. 점점 눈길에 익숙해지며 속도를 올려봤지만, 1차선에는 끼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뒤에 캠핑용 트레일러를 매단 차들도 120km/h를 넘나들며 잘도 달렸다.

#악조건 알프스 도로를 거뜬히 달리는 액티브 투어러
아우토반이라고 해서 모든 도로에 속도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로 합류지점이나 도심 부근, 도로공사 구간 등 순간순간 80km/h~무제한까지 제한속도가 바뀌었다. 최근엔 단속이 강화돼 표지판을 잘 보고 달리지 않으면 속도측정 카메라나 단속에 걸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액티브 투어러는 헤드업디스플레이를 통해 바뀌는 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시각각 알려줘 단속 염려는 없었다.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서 차는 점점 해발고도를 높여갔다. 400m에서 시작한 고도는 어느덧 1500m를 넘나들었다. 알프스를 끼고도는 도로는 절벽과 낭떠러지 사이에 만들어진데다, 이날은 눈과 진눈깨비, 비까지 번갈아 내려 운전자를 괴롭혔다.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지고 고도가 높아지자 주변 차들의 속도가 줄어드는 것과 함께 사륜구동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도 덩달아 많아졌다. 액티브 투어러는 뒤쳐지지 않고 SUV들과 섞여 험한 길을 해쳐갔다.

액티브 투어러가 SUV의 틈바구니에서 거친 도로를 잘 버티며 달린 이유 중 하나는 전류구동이기 때문이다. 사륜구동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BMW의 전륜구동 차량은 겨울용 타이어만으로도 눈·비가 내리는 악조건의 도로를 어느 정도 이겨냈다. 물론 도로에 눈이 수북이 쌓였다면 체인 없이 알프스를 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친 도로 782km 달리고도 안정적인 엔진소리

이 차는 1998cc 가솔린엔진에 7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려 최고출력 192마력, 최대토크 38.8kg.m를 발휘한다. 출력과 토크가 일반 세단형 승용차 보다는 높은 편이다. 연비는 유럽기준으로 도심 17.24km/ℓ, 고속도로 17.85km/ℓ인데, 이번 시승에서 고속도로와 도심을 약 5대5의 비율로 1850km가량 달린 뒤 측정한 실제 연비는 13km/ℓ 내외였다. 휘발유를 가득 넣으면 대략 700km를 달렸다.

이날 알프스를 끼고 돌아 에비앙(Evian)을 지나고 숙소인 작은 프랑스 도시 이브아르(Yvoire)의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를 조금 넘었다. 방에 들어가기 전 주차장에서 차를 꼼꼼히 살폈다. 겉은 여기저기 흙탕물로 사납게 얼룩졌지만,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장거리를 달린 차의 엔진소리는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주행거리는 782km이고 중간에 휴식과 식사시간을 빼면 약 11시간을 꼬박 운전했다. 몸은 쑤셨지만 장거리 운전에서 오는 피로감은 평상시보다 확실히 덜했다. 투어러의 장점 때문이다. 이 차는 전고가 1555mm로 일반 세단보다 높아 시야확보가 용이하고, 장거리에도 운전자의 피로가 덜하도록 설계됐다.

#단단한 차체와 뛰어난 밸런스에서 오는 안정감
사흘간의 모터쇼 취재를 마치고 다시 뮌헨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제네바를 출발해 로잔, 베른, 취리히를 거쳐 아우토반을 이용해 뮌헨까지 이동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중간에 레상(Leysin) 등 몇몇 도시를 거치는 것으로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니 총 거리는 700km를 넘겼다.

로잔을 거쳐 레만호수를 오른쪽에 두고 레상으로 향하는 도로에 올라섰다. 와인과 스키장으로 유명한 레상은 해발고도 2948m의 베르뉴즈(Berneuse) 봉우리 아래 위치해 험악한 오르막길을 올라야한다. 스키장으로 향하는 급경사길 곳곳은 눈이 녹은 물로 흥건하고 찬바람까지 불었다. 하지만 액티브 투어러에게 이런 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커브에 들어가서 쉽게 탈출하기를 반복하는 와중에 벌써 정상에 도착했다. 중간에 눈이 쌓인 구간도 있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나아갔다. 소형 전륜구동답게 작은 커브도 쉽게 돌아나갔다.

전체적인 코너링은 BMW 후륜구동 차에서 느끼는 것과 확연하게 다르지만, 차체를 제어하고 지지하는 BMW의 기본 실력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찔한 커브에서도 원심력을 잘 억제하고 바퀴에 힘을 고르게 분산해 불안하지 않았다. 단단한 차체와 뛰어난 밸런스에서 오는 안정감이다.

#아우토반 200km/h로 달려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
독일 국경을 넘으며 아우토반에 다시 한 번 들어섰다. 이번에는 속도를 조금 더 높여봤다. 평균 170~200km/h로 가끔은 200km/h를 넘기기도 했지만, 휘청거리거나 흐트러짐 없이 잘 달렸다. 실내로 밀려들어오는 소음과 진동도 가솔린차답게 수준급이다.

차량의 전체적인 생김새와 쓰임새는 기아자동차 카렌스와 닮았다. 차체는 전장 4342mm, 전폭 1800mm, 휠베이스 2670mm로 카렌스(4525mm, 1805mm, 2750mm)보다 약간 작다. 액티브 투어러 가솔린 모델의 독일 판매가격은 기본 3만3000유로(25일 환율기준 3978만 원)부터 시작한다.

이번 시승구간은 초행길이었지만 내비게이션에만 의지해도 운전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래도 주의할 점을 꼽는다면 유럽 도로에 많이 있는 회전교차로 통과 요령이다. 교차로에 진입하고 빠져나가는 것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자칫 머뭇거리다가 빠져나갈 도로를 놓치기 쉽고 먼저 진입한 차와 얽혀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또한 같은 도로라도 주변 환경에 따라 제한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도시의 주차료도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다.

제네바=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