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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폴크스바겐 투아렉 “747은 끌어도 소비자 마음은…”

ev라운지
입력 2015-03-20 08:00:00업데이트 2023-05-10 09:13:52
2006년 11월 늦가을 영국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약 64km 떨어진 던스폴드(Dunsfold) 비행장 활주로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무게 155톤에 달하는 보잉 747을 폴크스바겐 투아렉(Volkswagen Touareg)으로 견인하는 행사가 마련됐다. 행사 당일 강풍과 폭우로 인해 노면은 최상의 상태가 아니었지만 투아렉 V10 TDI는 헛바퀴가 돌거나 엔진 과열 없이 임시 활주로를 따라 보잉 747기를 약 8km/h의 속력을 유지하며 150m 가량 움직였다.

행사 후 투아렉을 직접 운전한 엔지니어는 “누군가 우리에게 더 크고 무거운 항공기를 빌려줄 수 있다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라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후 이 사건은 폴크스바겐 디젤 엔진의 우수성과 투아렉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자동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2002년 페이톤과 함께 첫 선을 보인 1세대 모델 이후 2010년 2세대 모델이 출시되며 투아렉은 보다 세련된 모습으로 다듬어졌다. 여전히 폴크스바겐그룹의 포르쉐 카이엔과 아우디 Q7과 플랫폼 및 파워트레인을 공유를 하고 있었지만 기존 보잉 747기를 끌던 V10 TDI 엔진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2세대 투아렉은 다운사이징을 거친 4.2리터 V8 TDI를 통해 마력은 더 높이고 배기량은 낮췄다. 외관도 1세대 비해 더욱 날렵한 모습을 띄며 온오프로드에 모두 잘 어울리는 도심형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 콘셉트로 순화됐다.

그리고 지난 1월 폴크스바겐코리아는 2세대 투아렉의 부분변경 모델 ‘뉴 투아렉’을 국내 시장에 출시했다. 신차는 3세대 완전변경 모델을 앞두고 마지막 단계로 선보이는 2.5세대 모델인 만큼 기존에 없던 각종 안전 및 편의장비를 넣어 상품성을 끌어올렸다.

기존 상징성을 갖고 라인업에 위치했던 4.2리터 V10 모델은 삭제되고 3.0리터 V6 단일 모델로 옵션에 따라 3가지 트림으로 출시됐다. 하지만 신차에 탑재된 엔진이 오는 9월 유로6 국내 시행을 앞두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실이 밝혀지며 씁쓸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차량은 오는 8월말까지만 국내 판매가 가능하다.
지난 17일 신차가 출시되고 한 달이 넘어 폴크스바겐코리아의 언론 시승회를 통해 2.5세대 투아렉의 상품성을 평가해 볼 수 있었다. 시승은 여의도 콘래드 호텔을 출발해 마포대교와 강변북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등을 거쳐 인천 영종도 네스트 호텔에 이르는 60km의 거리다. 약 1시간 동안 2.5세대 투아렉의 온로드 주행 실력을 중점으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시승차는 TDI 블루모션, TDI 블루모션 프리미엄, TDI 블루모션 R라인 등 3가지 라인업으로 출시된 모델 중 가장 상위 트림인 블루모션 R라인 모델이다.
먼저 외관은 2세대 모델에서 개선된 모습으로 전체적인 라인이 더욱 날렵해졌다.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은 4개의 수평 라인으로 변경돼 보다 웅장한 느낌이 강조됐다. 범퍼와 공기 흡입구 역시 사다리꼴 모양으로 그릴과 대칭돼 강인해 졌다.

좌우 전조등은 주간주행등 기능이 겸비된 바이 제논 헤드램프를 사용하고 더욱 커지고 날카로워졌다. 후면은 범퍼와 LED 안개등, 디퓨저, 트렁크 라인 등이 개선되며 무게감을 더했다. 특히 시승차인 R라인의 경우 전후면 범퍼에 공기역학을 고려한 바디킷과 실내외 곳곳에 R라인 로고를 넣어 역동성이 한층 강조됐다.
실내는 각종 스위치를 정밀한 밀링 가공을 통해 터치감과 그립감을 개선하고 은은한 화이트 색상의 컨트롤 조명과 무드등으로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스티어링 휠은 적당한 두께감과 그립감을 전달하며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핸즈프리 및 오디오 리모콘을 포함한 멀티펑션 기능, 히팅 기능 및 패들 시프트가 장착됐다. 운전 중에도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지 않고도 기본적인 차량 조작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전체적으로 2.5세대 투아렉의 실내는 폴크스바겐 차량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기조로 만족감 높은 조립 품질이 잘 유지됐다. 다만 센터페시아 상단에 위치한 내비게이션 기능이 포함된 8인치 대형 터치스크린은 반 박자 느린 반응과 직관적이지 못한 설정이 답답하다. 특히 내비게이션의 경우 구글맵을 보는 느낌의 화면구성으로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실내 전체적으로 경쟁모델과 비교해 차급에서 느껴져야 할 고급스러움과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감성품질에서 부족함을 드러낸다.
2.5세대 투아렉의 파워트레인은 전트림에 최고출력 245마력, 최대토크 56.1kg.m의 2967cc V6 TDI 엔진이 탑재됐다. 정지상태에서 100km까지 도달하는데 7.6초의 시간이 걸리고 최고 속도는 220km/h로 제한됐다.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린 공인연비는 복합 10.9km/ℓ 수준이다.

주행모드는 기본적으로 변속기 레버 뒤쪽에 위치한 작은 다이얼을 이용해 노멀, 컴포트, 스포츠로 선택 가능하다. 다이얼은 손가락을 이용해 위아래로 돌리는 방식으로 조작감이 조금은 불편하다. 하지만 프리미엄과 R라인 트림은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돼 댐핑 컨트롤 기능과 자동 레벨 컨트롤 기능이 포함되는 등 온오프로드를 고려한 설정이 눈에 띈다. 이 기능은 차량 속도가 140km/h가 넘으면 자동으로 차고가 낮아져 최적의 안정성을 확보했다.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된 모델의 경우는 이를 이용해 차고를 노멀(201mm)에서 최대 300mm까지 조절 가능하다. 4륜구동 시스템 ‘4모션(4Motion)’과 함께 불규칙한 노면에서 최적의 오프로드 체험이 가능하다. 차고와 주행모드, 노면 상태에 따른 설정이 개별 조작 가능한 방식은 랜드로버의 지형반응 시스템이 이런 것들을 하나의 다이얼 조작으로 통합하며 단순화하는 것과 비교 된다. 각기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시내를 빠져나와 확 트인 도로에서 가속페달을 바닥까지 밟다보면 엔진은 1750~2250rpm의 영역에서 2380kg의 차체를 끈기 있게 밀어 붙인다. 다만 제원상 느껴지는 동작보다 초반 민첩성은 떨어지며 저단에서 변속의 직결감 또한 덜하다. 하지만 약 80~100km/h을 넘어서면 고속영역까지 거침없이 속력이 오르며 6기통 디젤 직분사 엔진의 힘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 이때 프리미엄급 대형 SUV 걸맞는 NVH 성능 또한 만족스러워 기본에 충실한 폴크스바겐의 유전자가 여전함을 맛볼 수 있다.

이번 시승회를 통해 투아렉의 장점으로 지목될 오프로드 성능은 경험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동급 모델에서 온로드 성능은 부족함 없음이 증명됐다. 동력 성능은 그동안의 명성과 이번 시승회를 통해 충분히 검증됐다. 다만 국내 시장에서 실력에 비해 저평가되며 지지부진 한 판매실적을 보였던 과거 이미지 쇄신이 투아렉의 가장 큰 과제다.
지난해 투아렉의 국내 판매는 3.0 TDI, 4.2 TDI를 합산해 총 435대로 한 달에 약 35대 남짓 팔려왔다. 브랜드 내에서 하위 모델인 티구안이 지난해 8106대가 팔리며 수입 베스트셀링을 기록하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보잉 747을 견인하던 명성은 한국 시장에선 소비자 마음까지 끌어당기는데 부족했던 모양이다.

가격은 3.0 TDI 블루모션 7720만 원, 3.0 TDI 블루모션 프리미엄 8670만 원, 3.0 TDI 블루모션 R-Line 9750만 원이다.

김훈기 동아닷컴 기자 hoon14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