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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 “기안기금 2000억 원은 오로지 신차개발비”

김도형 기자
입력 2020-06-04 20:52:00업데이트 2023-05-09 16:30:51
정일권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정일권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
“노조 활동하기가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없는 것 같네요. 금융권 관계자들을 만나면 죄인이 된 것 같습니다.”

지난 3일 경기 평택시 쌍용차 평택공장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정일권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투자계획 철회로 쌍용차가 경영난에 빠진 가운데 정 위원장은 “사측이 정부에 2000억 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초 2300억 원가량을 마련하기로 했던 마힌드라그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자금 투입을 400억 원으로 줄이자 이를 기안기금으로 채워 노사가 신차 개발에 함께 나서겠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회사 운영을 위해 필요한 경비는 근로자들이 올해 연봉에서 1800만~2000만 원씩을 반납해 확보한 1240억 원, 서울 구로구 서비스센터 매각 대금 1800억 원 등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정 위원장은 그동안 회사와 한 몸처럼 움직여온 노조가 큰 폭의 임금삭감과 복지혜택 축소 등으로 다양한 자구안 마련에 동참해 왔기 때문에 신차 개발을 위한 자금만큼은 정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했다.

쌍용차가 이처럼 최악의 경영상태에 놓였음에도 해고자를 복직시킨 데 대해 정 위원장은 “내부에서 우리도 힘든데 어떻게 받아 들이냐는 의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2009년 쌍용차 사태의 아픔을 치유하고 가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복직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간산업안정기금 2000억 원이 왜 필요한가?

“쌍용차 노사는 미래 경쟁력 회복을 위해 5000억 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가운데 2300억 원가량을 마련하기로 했던 마힌드라그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자금 투입을 400억 원으로 줄이면서 사실상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나머지를 기안기금으로 충당해 신차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쌍용차의 경영난이 심각한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라는 우려도 있다.

“운영자금, 인건비를 위해 요청하는 돈이 아니다. 그 돈이 투입되면 미래를 위한 신차를 개발하는데 문제없다. 차질 없이 신차를 개발하기 위해 2000억 원을 요청하려는 것이다.”

―지난해 출시한 신형 코란도도 흥행에 실패했다. 과연 신차는 경쟁력이 있을까?


“지금 같은 어려움에 놓이기까지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고 본다. 대주주의 직접 투자가 적절한 시기에 이뤄지지 않았고, 가격 책정과 디자인에도 문제가 있었다. 과거 무쏘와 코란도를 기억하는 고객들이 많은데 쌍용차만의 매력을 가진 신차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에 출시한 프로젝트명 ‘J100’은 정통 오프로드형 차량으로 개발 중이다. 보자마자 쌍용차 고유의 ‘지프차’라는 느낌이 들었다. 충분히 국민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심각한 경영 위기 상황에서 노조도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지 않나?

“노조는 이미 많은 것을 협조했다… 쌍용차는 11년 연속 무분규로 모범적인 노사 관계를 구축했다. 올해 기본급에서 1800만~2000만 원씩 삭감한 임금을 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잔업과 특근을 못하면서 사실상 실질 임금 삭감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만 조합원의 95% 이상이 즉시 동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뭘 더 하라고 하면 결국 사람을 내보내라는 얘기 아니냐. 힘들어도 5000명 쌍용차 직원과 1500명 공장 내 비정규직 직원이 같이 어려움을 넘어서야 한다. 고용을 일단 지키면서 회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다.”

―2009년 쌍용차 사태 이후 근로자들의 생각은 어떤가?

“2009년 이전만 해도 쌍용차가 강성 노조였던 건 맞다. 하지만 쌍용차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노사 관계가 최선의 방책이 아니구나’하는 것을 많이들 느꼈다. 경영 위기와 고용 위기가 궤를 달리할 수 없다. 그걸 알게 된 것이다. 노사가 서로의 어려움을 받아 안으면서 고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큰 자동차 회사의 노조도 임금 인상보다 고용 유지에 초점을 두고 바뀌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고자들은 모두 복직 시키면서 정부 지원을 요청하는 데 대한 비판도 있다.


“사회적인 약속이기에 지켜야 한다고 봤다. 일자리를 나눠서라도 사회적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힘든데 어떻게 받아 들이냐’는 반대 의견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2009년의 아픔을 치유하고 가야한다는데 조합원들도 결국 동의했다.”

―마힌드라그룹은 결국 떠나는 것인가? 새로운 투자처는 찾을 수 있나?

“마힌드라그룹은 자기들은 떠나지 않겠다, 2대 주주로 남겠다, 최대 주주를 찾아보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마힌드라가 직접 다른 투자처를 알아보기도 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투자에 관심을 보인 곳도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당장 나서겠다는 곳이 없어 현재로서는 확실히 얘기하기 어렵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