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뿌리칠 수 없는 그 중후한 매력… 자동차, 黑에 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입력 2022-01-28 03:00:00 수정 2022-01-28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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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는 단순화 위해 검정 택했지만… 이후 업계선 고급스러운 느낌 부각
같은 색도 브랜드마다 다르게 활용
극단적인 성능 내는 스포츠카서는… 탄소섬유 뼈대로 검정 표현하기도
직물같은 패턴의 독특한 느낌 살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자동차용 페인트·코팅 소재 전문 업체 액솔타(Axalta)는 최근 글로벌 자동차 인기 색상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검정(19%)이 흰색(35%)에 이어 두 번째로 자동차에 많이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은 몇 년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흰색과 더불어 검정 자동차에 대한 선호도가 세계적으로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검정은 양면적 이미지를 가진다. 어둠, 우울, 저주 등 부정적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아함, 신비, 권력 등을 상징한다. 특히 검정은 세련됨과 우아함을 나타내는 색으로 널리 쓰이며, 중후함과 특유의 분위기로 상류층용 럭셔리 세단이나 리무진 등에 많이 쓰였다.

물론 색이 갖는 이미지만이 자동차의 차체색을 결정하지 않는다.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대중차였던 포드의 모델 T가 대표적 사례다. 포드는 모델 T의 대량 생산을 본격화하면서 차체색을 검정으로 통일했다.

당시 포드의 창업자 헨리 포드는 “모든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색으로 칠해진 차를 살 수 있다. 다만 그 색이 검정이라면 말이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자동차에 디자인 개념이 반영되며 다양성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오로지 검은 차체만 만든다는 포드의 결정은 시대를 역행하는 결정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포드 모델 T는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차체색을 검정으로 통일했다. 포드 제공
사실 포드가 모델 T의 차체를 검정으로 통일한 것은 대량 생산의 장점을 극대화하며 완성차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색을 통일하면 페인트 공급 단가를 낮출 수 있고,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할 때 생길 수 있는 미세한 색 차이를 줄여 품질도 높일 수 있었다. 또 검정 페인트는 다른 색에 비해 건조가 더 빨라 생산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나친 단순화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고 모델 T의 시대는 오래 갈 수 없었다. 이후 자동차의 차체색은 다양해졌고 검정은 여러 색 중 하나로 전락했다. 자동차 업계에서 생산자 중심의 효율을 상징하던 검정은 색이 가진 본연의 이미지를 통해 소비자를 설득해야 했다.

특히 검정의 권위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차의 크기와 장르와 무관하게 존재감을 부각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에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들은 같은 검정이어도 일반 자동차와 차별화할 수 있도록 더욱 특별하고 깊이 있는 느낌을 더하고, 현대적이며 젊은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롤스로이스는 블랙 배지 고스트 차체의 검정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45kg의 페인트를 칠하는 등 많은 공을 들인다. 롤스로이스 제공
롤스로이스는 2016년부터 블랙 배지(Black Badge)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블랙 배지 시리즈는 비스포크(맞춤 제작 제품)로, 일반 모델과는 차별화된 꾸밈새를 가졌다. 최신 모델인 블랙 배지 고스트에서 선택할 수 있는 4만4000가지의 차체 색 중에서도 단연 블랙 배지 시리즈의 상징인 검정이 돋보인다.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 고스트의 앞모습. 라디에이터 그릴 등 장식에 쓰인 검정이 진지한 분위기를 더한다. 롤스로이스 제공
롤스로이스는 블랙 배지 시리즈의 검정이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어두운 검정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들은 색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색을 칠하는 공정에 공들인다. 블랙 배지 고스트 한 대의 차체를 칠하는 데 쓰이는 페인트의 무게는 무려 45kg. 두텁게 칠한 페인트는 열처리 공정을 거치고, 두 겹의 투명 코팅을 입힌 뒤에 네 명이 수작업으로 광택 처리 작업을 한다. 광택 작업에만 3∼4시간이 걸릴 만큼 작업의 섬세함은 특별하다.

벤틀리 콘티넨탈 GT 뮬리너 블랙라인은 주요 외부 요소를 검정으로 장식했다. 벤틀리 제공
벤틀리도 모든 모델에 검정을 주제로 하는 맞춤 제작 프로그램인 뮬리너 블랙라인(Mulliner Blackline)을 마련하고 있다. 외부 크롬도금 장식을 검정으로 대체하는 것을 비롯해 실내외 여러 요소를 구매자 취향에 맞게 폭넓게 선택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판매되는 신형 콘티넨탈 GT에도 선택이 가능하다. 벤틀리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B 배지와 라디에이터 그릴 테두리는 물론 사이드 미러 커버도 모두 검정 장식으로 대체 가능하다.

최근에는 차체 외부에 주로 쓰이는 크롬도금 장식을 고광택 검정으로 대체하는 차도 늘고 있다. 크롬도금 장식은 오래전부터 차를 화려해 보이게 만드는 요소로 쓰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오히려 스포티한 디자인과 성능을 강조하는 고급차들에 고광택 검정 장식을 다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

크롬장식이 흔해져 검은 장식이 더 개성 있기도 한데다 스포티한 차의 강력하고 든든한 이미지를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요즘 중요시되는 환경에 대한 고려도 담겨 있다. 공정이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크롬도금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생기거나 환경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한편 가볍고 단단해 스포츠카에 폭넓게 쓰이는 탄소섬유(카본 파이버) 소재도 검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탄소섬유는 차의 뼈대를 이루는 부분 혹은 외부 장식에 부분적으로 쓰이지만, 극단적인 성능을 내는 스포츠카들은 외부로 드러나는 차체 전체를 탄소섬유로 만들기도 한다.

탄소섬유는 소재 자체가 검정일 뿐 아니라, 직물처럼 짜여 일정한 패턴을 이뤄 독특한 심미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에 일부러 차체를 다른 색으로 칠하기보다 소재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부가티가 2019년 말 공개한 시롱 누아르(Chiron Noire)가 대표적이다.

20대 한정으로 생산된 시롱 누아르는 일부 요소를 제외하면 차체 전체에 탄소섬유 소재가 그대로 노출됐다. 시롱 누아르는 스포티함에 초점을 맞춰 꾸민 스포르티브와 우아함을 표현한 엘레강스로 나뉜다. 스포르티브는 차체를 무광택 처리한 반면 엘레강스는 광택이 나는 투명 코팅을 입혔다. 빛을 받았을 때 스포르티브의 무광택 차체는 탄소섬유의 패턴이 이루는 굴곡이 거칠게 반사돼 건조하고 강렬한 분위기를 내고, 엘레강스는 매끈한 표면 아래로 탄소섬유의 질감이 드러나 깊이가 느껴진다.

자동차 자체는 기술과 환경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 변하겠지만, 색이 갖는 이미지와 사람들이 갖는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출시될 럭셔리카에서도 검정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검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더 섬세해지고 깊어져 럭셔리카다운 특별함을 더해갈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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