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시장에 대기업 합승하면… “판 커져 윈윈” vs “30만 생계 위협”[인사이드&인사이트]

김도형 산업1부 기자

입력 2020-09-21 03:00:00 수정 2020-09-21 1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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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車시장 대기업 진입 공방 치열

중고차 매매업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야 할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 한 중고차 전시·거래장의 모습. 동아일보DB
김도형 산업1부 기자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으로 품질 낮은 제품만 거래되는 시장을 뜻하는 ‘레몬마켓’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국내 중고차 시장. 이 시장에 대기업이 참여하면 과연 소비 만족도가 높아지고 중고차 거래가 더 활발해질 수 있을까.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6년 만에 해제된 중고차 매매업에 대기업이 진출하는 문제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중고차 매매업에 대기업이 5년 동안 진출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이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대기업 진출을 허용해 시장을 투명화·선진화하면 시장 전체의 크기가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존 중고차 업계에서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상생의 길을 찾겠다고 나서면서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 소비자 불만 크니 판 바꾸자는 완성차 업체

최근 수입 브랜드 신차 구매를 알아보고 있는 직장인 장모 씨(36)는 벌써부터 지금 타고 있는 국산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이다. 장 씨는 “보유 기간에 비해 주행거리가 짧은데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사실 중고차 가격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으니 얼마가 제값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중고차 시장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불만은 객관적인 정보가 없다는 점이다. 신차와 달리 모든 중고차의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적정한 가치와 가격을 산출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 있지 않은 시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과 불만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말 한국경제연구원이 성인 남녀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분의 3이 넘는 76.4%가 중고차 시장이 ‘약간 혹은 매우 불투명하고 혼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한 이유에 대해서는 절반가량이 차량의 상태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를 꼽았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진입해 중고차 시장을 투명화·선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기업이 진출하면 오히려 중고차 시장 전체의 파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지난해 국내 중고차 판매 대수(224만 대)가 신차 판매 대수(178만 대)의 1.3배 수준에 그치는 반면 미국은 지난해 중고차 판매 대수(4081만 대)가 신차(1706만 대)의 2.4배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도 중고차 시장 규모가 719만 대로 신차(360만 대)의 2배에 이른다.

미국과 독일에서는 대기업인 완성차 업체가 직접 중고차의 품질과 서비스를 엄격하게 관리해 경쟁이 활성화됐고, 그 결과 전체 중고차 업계의 경쟁력과 고객 신뢰도를 높여 한국보다 중고차 거래 규모가 커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완성차 업체가 출고 5, 6년 안팎의 중고차를 정밀하게 점검하고 수리한 뒤 무상 보증기간을 연장한 ‘인증 중고차’ 형태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가 인증하는 중고차 거래 비중이 미국은 5∼6%, 독일은 16∼17% 수준에 그치지만 두 나라 모두에서 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신사업 기회 열 수 있고 신차 판매에도 영향”

완성차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가세해 중고차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신사업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독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독일에서는 수십 년 혹은 100여 년 전에 설립된 ‘티유브이 슈드’와 ‘데크라’ 등의 차량 평가 및 검사·인증기관과 더불어 ‘슈바케’ 같은 중고차 잔존가치 평가 업체가 성업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차량 상태 점검과 중고차 재고를 관리하는 정보기술(IT) 솔루션 및 데이터 분석까지 등장하고 있다. 신차급 중고차를 이용한 차량 구독 서비스 등으로도 외연을 넓히고 있다.

미국에서도 ‘카팩스’와 ‘오토첵’ 같은 차량 이력정보 제공 업체와 더불어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켈리블루북’과 ‘트루카’ 등의 업체가 공신력 있는 중고차 시세와 잔존가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진입해 중고차 시장 전체를 발전시켜야 연관 산업까지 발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기아차에서는 차량 구독형 서비스 등 모빌리티 서비스 분야의 사업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중고차 매매업 진출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 업계는 중고차를 편하게 사고팔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면 신차 판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주홍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는 “중고차 거래가 힘든 문제가 국내 신차 판매 확대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대기업이 진출해 중고차 매매업 전체를 장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증 중고차 도입으로 시장을 선진화하고 신차·중고차 시장 전체를 키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 중소업체 우려 “허위 매물은 우리도 억울…대기업이 30만 생계 위협”

국내 중고차 시장은 연간 30조 원 규모로 전국 6000곳 정도의 중고차 매매 업체가 영업하면서 4만∼5만 명이 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고차 업계에서는 정비 세차 광택 탁송 등 중고차 매매와 관련한 주변 연관 산업과 그 가족까지 감안하면 대기업의 진출이 최대 30만 명의 생계를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고차 업계는 허위·미끼 매물 같은 심각한 중고차 관련 불만 사례에 대한 소비자들의 비난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허위·미끼 매물 같은 문제는 정식으로 규제 당국에 등록하고 영업하는 기존 중고차 업계와는 무관한 범죄에 가까운 일”이라며 “우리도 지속적으로 적발과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완성차 업체가 진출하면 오히려 중고차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고 대기업이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면 기존 중고차 업계는 궤멸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브랜드가 딜러사를 중심으로 인증 중고차 사업을 벌이고 있다. 브랜드별로 일정한 보유 기간과 주행거리 이내의 수입차를 매입해 기준에 따라 점검한 뒤 추가적인 애프터서비스(AS) 기간을 설정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수입 중고차에 인증제가 도입된 뒤 기존에 비해 가격은 올라가고 좋은 중고차 물량 대부분을 인증 중고차 시장이 빨아들이는 구조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인증 중고차 시장 진출 역시 인기가 높은 차량의 매입과 판매를 대기업이 독식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중고차 업계에서는 현재 거래되는 중고차도 30일 또는 2000km 보증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이 매매한다고 해서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시장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차를 점검해 재판매하는 시장이라 대기업의 기술력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은데 브랜드 인지도 등을 내세워 가격만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고차 관련 양대 단체로 꼽히는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와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생존권을 이유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위한 시위 등에 나서고 있다.

○ 동반성장위는 “지정 부적합”… 상생안 찾아낼까

정부는 지난해 2월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해제된 중고차 매매업을 다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할지를 놓고 고심 중이다.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는 완성차 업계는 현재의 규제가 국산차 업계와 수입차 업계를 차별하고 있다는 불만까지 제기하면서 지정을 막으려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말 동반성장위원회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것은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체 산업 규모가 크다는 점과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경우 산업경쟁력에 미칠 영향까지 감안한 결정이다.

이에 따라 중기부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관련 심의위원회에 넘기기보다는 양쪽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구상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심의를 받게 되면 중고차 매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양쪽 의견을 수렴해 상생협약을 맺는 방안을 모색 중이고 결론을 내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더라도 기존 사업자들의 권익은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해외 사례를 보면 국내 중고차 시장을 선진화했을 때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는 분명해 보인다”면서도 “대기업이 진출하더라도 지나친 점유율 확대를 막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도형 산업1부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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