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대처” VS “교통지옥”… 파리, 시속 30km 제한 둘러싼 갈등

김윤종 파리 특파원

입력 2021-08-05 03:00:00 수정 2021-08-05 14: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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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3일 프랑스 파리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센 강변도로가 퇴근 차량들로 가득 차 있다. 차도 오른쪽에 시속 30km 이하 주행 도로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시 당국은 30일부터 시내 전 구역에서 시속 30km 제한을 적용하기로 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윤종 파리 특파원
《3일 오후 5시.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시청까지 이어지는 센 강변도로가 꽉 막혔다. 편도 3차로 중 1개 차로가 버스 및 자전거 전용도로로 사용되면서 나머지 2개 차로에는 퇴근길 차량이 가득했다. 이 대열에 낀 운전자 가브리엘 씨(42)는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춘 사이 기자에게 “지금도 정체가 심한데 시 당국이 밝힌 대로 30일부터 파리 전체에 시속 30km 이하로 속도를 제한하는 정책이 실시되면 지옥문이 열릴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차(車) 없는 파리’ 시대

시 당국은 지난달 8일 시속 30km 이하로 차량 속도를 제한하는 정책 도입을 발표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막고 각종 사고와 소음 공해를 줄이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를 주도한 재선 시장 안 이달고(62)는 2014년 취임 후 줄곧 자전거 도로 확대, 차량 속도 제한, 주차요금 인상, 시내 주차공간 축소 등 친환경 정책을 펼쳤다. 이에 따라 현재도 시내 60%의 도로에서 시속 30km 제한이 적용되고 있다.

중도좌파 사회당 소속인 이달고 시장은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며 30일부터 도시 전 구간에서 이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차 없는 파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내년 4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도 드러내고 있다.

적지 않은 시민들은 교통체증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에펠탑 인근 도로에서 만난 시민 프랑시스 씨(51)는 “30km는 기어가는 수준”이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자가용 출근자에게는 출퇴근이 악몽이 될 것”이라고 했다. 파리 서쪽 포르트마요 도로를 지나던 디디에 씨(55)도 “이 지역은 급행철도(RER)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지금도 체증이 극심하다. 앞으로 더 끔찍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4일 도심 마레 지구에서 만난 쥘리아 씨(27)는 무인 주차요금 계산기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1일부터 도심 도로변 주차요금은 시간당 4유로(약 5400원)에서 6유로(약 8100원), 그 외 구간은 시간당 2.4유로에서 4유로로 인상됐다. 오토바이 등 무료였던 이륜차도 내년부터 주차비를 내야 한다. 이달고 시장은 이와 별도로 시내 14만 개 노상 주차공간 중 6만 개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기자는 3, 4일 이틀간 퇴근시간에 콩코르드 광장에서 바스티유 광장까지 약 5km 거리를 각각 자전거와 시속 30km의 자동차로 이동했다. 자전거로는 18분, 자동차로는 30분 이상 걸렸다.

여론조사회사 칸타가 지난해 파리의 1만 가구를 조사한 결과 자동차 보유 비율은 34%였다. 1996년(42%)보다 8%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자전거 이용 비율은 10배 늘었다.


커지는 세대 갈등

이번 사태가 세대 갈등으로 번질 조짐도 보인다. 장노년층은 “이달고 시장이 지나친 이상주의에 빠져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추가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청년세대는 “당장은 힘들고 불편해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감내해야 한다”고 맞선다. 시 당국이 지난해 12월 시민 5736명에게 전 구간 차량 속도 제한 도입에 대해 물었더니 찬성 53%, 반대 47%였다.

14구 주민 폴 씨(70)는 “자동차 없애기 정책으로 파리 시내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과거 14구에는 대형 상점이 많고 주차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지만 당국이 주차장을 없애고 도로를 좁히면서 상점들이 사라졌다”고 했다. 무거운 짐을 들기 힘든 노년층은 자전거를 타고 대형 상점에서 쇼핑한 물건을 싣고 오기 어렵다고도 했다.

반면 대학원생 카를로 씨(31)는 “올해 극한기후로 유럽 전체의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차량 이용을 억제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서유럽에서는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비슷한 시기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에서는 폭염과 강풍 등으로 산불이 확산했다.


유럽 곳곳 ‘차 없는 도시’ 늘어

3일 프랑스 파리 중심부 리볼리 거리. 4차로 중 3개 차로가 자전거 도로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한 만큼 ‘자동차 없는 도시’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주요 언론은 진단하고 있다. 르피가로는 “자동차는 이미 멸종위기 동물”이라며 속도 제한 정도가 아니라 도시 내 자동차 출입 금지 확대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BBC 또한 “지난 100년간 자동차가 도시 경관을 지배했지만 이제는 자동차가 배제될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 주요 도시는 실제로 속도 제한 정책을 속속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세계교통안전 각료회의에서 130여 개국 교통장관들은 “도심 내 시속 30km 속도 제한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스톡홀름 선언문’을 채택했다. 벨기에 브뤼셀은 올해 1월부터 도시 대부분 지역에 시속 30km 제한을 적용했다. 스페인 주요 도시 역시 5월부터 편도 1차로 도로는 최고 속도를 기존 시속 50km에서 30km로 줄였다. 독일 베를린은 라이프치히 도로 등 시내 주요 도로에 시속 30km 제한을 이미 실시하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역시 늦어도 2023년까지는 전 구역 시속 30km 제한을 도입할 방침이다.

그리스 아테네는 2025년부터 디젤 자동차, 노르웨이 오슬로는 2030년부터 모든 자동차의 도심 진입을 금지할 계획이다. 영국 역시 “2030년 휘발유·경유 신차, 2035년 하이브리드 차량 신차 판매를 금지한다”는 계획을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지난달 14일 유럽연합(EU)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의 역내 판매를 금지하는 ‘핏포55(Fit for 55)’ 정책을 내놨다. 아디나이오아나 벌레안 EU 교통국장은 “차량 속도 및 자동차 감축은 이제 세계적 흐름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자동차를 줄이더라도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고령층 등 교통 약자의 이동권 및 안전, 차도와 차량 축소로 인한 응급대응 능력 약화는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파리 15구의 ‘네케르 어린이병원’은 응급 치료에 종종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해 병원 앞 도로 3개 차로 중 하나가 자전거 도로로 바뀌면서 인근 교통체증이 심해진 탓이다.

이에 따라 친환경 에너지로 운영되는 공유자동차 제도를 대안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6월 21일 파리 르부르제 공항에서는 전기로 작동하는 ‘에어택시’ 시범운행이 있었다. 에어택시는 활주로 없이 수직으로 상승한 뒤 이동하는 차세대 교통수단이다. 제작사 볼로콥터 측은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전기 에어택시를 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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