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희 젠틀맨 드라이버] 영화 속 특수장비 재현… 오리지널 본드 카의 부활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입력 2020-07-24 03:00:00 수정 2020-07-2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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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 마틴 ‘DB5 골드핑거 컨티뉴에이션’
두번째 007 시리즈에 나온 ‘DB5’… 영화 인기에 힘입어 몸값 치솟아
올해 25번째 시리즈 개봉 앞두고 차체 기관총, 레이더 스크린 등
‘본드 카’ 그대로 재현해 선보여


영화 ‘007 골드핑거’ 촬영 당시의 숀 코너리와 애스턴 마틴 DB5. Aston MartinLagonda/EONProductions/Danjaq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극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탓에 흥행을 기대하고 올해 상반기 개봉을 준비하던 영화들이 난감해졌다. 일부는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지만, 이미 사전 홍보에 나선 몇몇 블록버스터 영화는 개봉 일정을 하반기로 미뤘다.

첩보영화의 대명사로 꼽히며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007 시리즈 최신작 ‘007 노 타임 투 다이’도 올 4월 개봉 예정이었다. 그러나 극장 개봉이 여의치 않아, 배급사는 11월로 개봉 일정을 잠정 조정했다. 007 시리즈의 25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은 다섯 번째 배우인 대니얼 크레이그의 시리즈 마지막 출연작으로 알려져 더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다. 크레이그가 주연을 맡은 007 시리즈는 전작들에 비해 한층 더 진지하고 밀도 높은 표현이 두드러져, 새로운 팬층을 만든 것은 물론 여러 편이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애호가에게도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은 영화들은 좀 더 특별한 기억을 남겼다. 007 시리즈의 상징적 아이템인 ‘본드 카’, 그것도 1대 제임스 본드였던 숀 코너리와 함께 선보인 오리지널 모델인 애스턴 마틴 DB5가 비중있게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크레이그가 본드 역으로 데뷔한 ‘007 카지노 로얄’ 이후 DB5가 나오지 않은 시리즈는 2008년에 개봉한 ‘007 퀀텀 오브 솔러스’뿐이다. DB5는 개봉 예정인 ‘007 노 타임 투 다이’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이미 공개된 공식 예고편 영상에서 활약상을 살짝 엿볼 수 있다.


본드 카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 본드가 주로 타고, 영국 비밀정보부 MI6의 특수 부서인 Q 브랜치에서 개발한 특수장비를 단다는 설정으로 007 시리즈의 재미를 더하는 아이템이었다. 그동안 시리즈에 등장한 본드 카로는 로터스 에스프리, BMW Z3와 Z8 등 여러 가지가 있고, 애스턴 마틴에서 내놓은 차들 중에서도 DBS, V8 밴티지 볼란테, V12 뱅퀴시, DBS V12 등이 여러 편에 나뉘어 등장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깊이 각인된 것은 역시 DB5다.

DB5가 처음 007 시리즈 영화에 등장한 것은 1964년에 개봉한 ‘007 골드핑거’였다. 이 영화는 코너리가 주연한 두 번째 007 시리즈이면서, 시리즈가 본격 스파이 액션물로 자리를 잡은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의 원작인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 나오는 본드 차와는 다르지만, ‘007 골드핑거’ 제작 당시 애스턴 마틴의 최신 모델이던 DB5는 영화에 좀 더 현실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이후 DB5는 후속작인 ‘007 선더볼 작전’에 한 번 더 등장하는 데 그쳤지만, 코너리와 더불어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를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렬한 기억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007 시리즈에 DB5가 등장한 것은 영화계와 자동차 업계의 협업이 가장 큰 시너지 효과를 낸 사례로 꼽힌다.

단순히 영화 제작용 소품으로 여길 수 있지만, 영화로 얻은 유명세는 오랫동안 DB5는 물론이고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인 애스턴 마틴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DB5는 당시 기준으로 호화로운 꾸밈새와 세련된 디자인이 좋은 평을 얻기는 했지만, 성능이 대단히 탁월한 것도 아니었고 판매량도 많지 않았다. 2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생산된 DB5는 1000대가 조금 넘었을 뿐이고, 그중에서 본드 카의 바탕이 된 2도어 쿠페 모델은 898대에 불과했다.

오히려 본드 카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차의 가치가 높아진 것은 생산이 중단된 뒤의 일이다. 요즘 외국 유명 클래식카 경매에서는 잘 관리된 DB5 쿠페의 낙찰가가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가볍게 웃돌고, 지난해 8월에 미국 몬터레이에서 열린 경매에서는 ‘007 선더볼 작전’이 개봉된 1965년에 영화 제작사가 홍보용으로 썼던 차가 무려 638만5000달러(약 76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애스턴 마틴이 25대 한정 생산하는 DB5 골드핑거 컨티뉴에이션. Aston Martin Lagonda 제공
이처럼 희소성에 유명세가 더해져 DB5의 가치가 높아지자, 원래 DB5를 만들었던 애스턴 마틴은 색다른 상품을 내놓기에 이른다. 컨티뉴에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DB5를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다시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애스턴 마틴 클래식카 전담 관리 및 복원 부서에서 옛 설계와 부품, 조립 과정을 그대로 따라 과거 생산 모델을 다시 만드는 것은 다른 컨티뉴에이션 차들과 같다. 그 대신 이번에 만드는 DB5에는 ‘골드핑거 컨티뉴에이션’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영화 속 본드 카를 거의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동반석이 사출되는 스위치를 기어 레버 꼭대기에 숨겨 놓은 것도 영화 속 본드 카와 같다.
이 차는 기본적으로 오리지널 DB5와 같다. 고전적 스포티함을 느낄 수 있는 알루미늄 합금 차체 패널, 철제 파이프를 용접해 만든 뼈대 구조, 직렬 6기통 4.0L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를 결합한 뒷바퀴굴림 구동계, 스티어링과 서스펜션 등은 옛 설계를 충실하게 반영한 새 부품들로 만들었다. 차체 색은 당연히 영화에 등장했던 본드 카와 같은 실버 버치(Silver Birch) 한 가지다.

겉모습만 재현한 레이더 추적장치 스크린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 더해, 애스턴 마틴은 007 시리즈 영화 제작사인 EON 프로덕션과 협력해 영화 제작에 쓰인 특수효과용 개조차의 요소들을 골고루 반영했다. 이 한정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에는 아카데미 영화상 특수효과상을 받은 바 있는 크리스 코볼드가 참여했다. 코볼드는 1980년대 이후 오랫동안 007 시리즈의 특수효과 담당으로 일하며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인 Q가 만든 첨단 무기들을 실제 소품으로 구현해 왔다.

방향지시등이 열리며 나오는 기관총은 LED 전구로 대체했다
DB5 골드핑거 컨티뉴에이션 모델에는 헤드램프 아래에 있는 방향지시등이 열리면 나오는 기관총, 차체 앞뒤에 달린 회전식 번호판, 차체 뒤쪽에 숨겨져 있다가 튀어나오는 방탄판, 실내의 레이더 추적장치 스크린, 운전석 도어에 설치된 전화기, 기어 레버 위에 달린 동반석 사출 버튼, 앞좌석 사이에 놓인 각종 장치 조절 스위치 등이 재현돼 있다. 회전식 번호판에는 영화에 나온 차에 쓰인 것과 같은 ‘BMT 216A’ 번호판이 포함돼 있다.

연막 살포장치를 비롯해 영화 속 ‘본드 카’에 쓰인 특수 장비들을 함께 재현했다.
영화에 등장한 여러 기능은 물론이고, 동반석 아래의 무기 보관함처럼 촬영용 차에 설치되었지만 영화에는 나오지 않은 것들까지 꼼꼼하게 재현한 것이 눈길을 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상상력의 산물이고, 현실적으로도 의미가 없다. 기관총은 발사 장치를 조작하면 불빛이 나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대체됐고, 차체 뒤쪽으로 기름을 뿜어내는 장치나 기어 레버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지붕이 열리며 동반석이 사출되는 장치도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다.

애스턴 마틴은 최근 첫 DB5 골드핑거 컨티뉴에이션 모델을 완성해 구매자에게 인도했다. 이번에 완성된 것을 포함해 모두 25대가 만들어질 예정이고, 나머지 24대의 생산도 올해 안에 마무리되어 주인을 찾아가게 된다. 소장 가치와 더불어 특별한 재미에 초점을 맞춘 차인 만큼, 이 차들은 정식 번호판을 달고 일반 도로를 달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차를 손에 넣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차와 함께할 때마다 제임스 본드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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