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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편익보다 총선 표심?…똘똘 뭉친 이익단체에 약한 국회 [위클리 리포트]

홍수영 기자
입력 2019-12-14 03:00:00업데이트 2023-05-09 18:56:34
10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는 의사당대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집회 무대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최근 타다 측이 1만 대까지 확대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우리 택시인들의 반발에 직면하자 슬그머니 연말까지 기다려보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거꾸로 보면 법이 연말까지 개정되지 않으면 1만 대든, 그 이상이든 타다를 확대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설을 듣던 택시 운전사들은 함성과 함께 박수로 화답했다. 이날 집회는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의 영업 금지를 국회에 촉구하기 위해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이 주최했다. 주최 측은 이날 택시 운전사 1만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정했다.

박 의원이 말한 ‘법’은 타다의 사업 근거가 되고 있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운송법) 시행령 18조를 의미한다. 이 법의 개정안이 이른바 ‘타다 금지법’으로 불린다. 박 의원은 이날 “오늘 여러분의 의지를 담아서 (여객운송법 개정안을) 내일 발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다음 날인 10월 24일 국회에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달 6일 박 의원이 주도한 여객운송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면서 타다의 운행 중단 여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야 모두 내년 총선을 앞두고 택시업계 눈치를 보고 있어 이르면 연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타다가 ‘유사 콜택시’인지, 아니면 ‘혁신 서비스’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국회의 타다 금지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민 편익이나 미래 산업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데는 시각이 일치한다. 정치권이 내세우는 명분도 ‘택시업계와의 상생’ 정도에 머문다. 흩어져 있는 절대 다수의 국민보다 똘똘 뭉친 이익집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의도의 작동 원리를 들여다봤다.

○ ‘플랫폼 택시법’이 ‘타다 금지법’ 된 배경

여객운송법 개정안이 처음부터 타다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국토교통부의 7·17 택시제도 개편 방안 후속 조치로 추진되던 여권의 법 개정은 당초 타다 같은 서비스를 제도권으로 편입하자는 취지였다. 플랫폼 사업자에게 운송면허를 내주되 택시업계의 반발을 감안해 면허 총량을 제한하고, 면허 대가로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게 골자였다.

여당이 개편 방안의 후순위였던 타다 금지 조항 문제로 행동의 무게중심을 옮긴 것은 10월 타다 측의 1만 대 증차 계획 발표와 맞물린다. 당시 택시업계가 들끓기 시작하자 당내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다. 민주당에서는 “자칫하면 2018년 택시 운전사 2명의 분신 사망과 택시 4개 단체의 총력 투쟁을 낳은 카카오 카풀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당은 서울개인택시조합의 실력행사가 있자 서둘러 박 의원 주도로 여객운송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7·17 방안의 내용과 함께 당초 시행령으로 손보려 했던 타다 관련 조항을 아예 개정안에 금지 형태로 못 박았다. 개정안의 별칭이 ‘플랫폼 택시법’이 아닌 ‘타다 금지법’이 된 이유다. 박 의원은 택시 운전사들에게 “타다가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전체 개편 방안 실행에 앞서) 타다 금지법이라도 반드시 최우선적으로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박 의원이 타다 금지법의 총대를 멘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지역구(서울 중랑갑)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중랑구는 택시회사 20여 곳과 개인택시 3000여 대가 밀집돼 서울에서 ‘택시업계의 거점’으로 여겨진다. 박 의원 측은 이에 대해 “당 을지로위원장으로서 택시 사납금 폐지 등 약자들의 민생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해 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타다 금지법은 무소속 김경진 의원이 7월에 먼저 발의했다. 김 의원은 택시 운전사들의 생존권 문제를 줄곧 제기해 ‘택시의 신’으로 불린다. 개정안은 여당이 가세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여타 법안과 비교할 때 이례적으로 빠르게 제출된 지 40여 일 만인 이달 5일 국토교통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다음 날 전체회의를 각각 통과했다.

○ “타다 탈 때 비행기표 소지” 끼어든 과정

택시 문제에는 여야가 없었다. 자유한국당은 국토교통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여객운송법 개정안을 처음 심사한 11월 25일에는 다소 신중한 분위기였다. 이해관계자와 함께 간담회를 열어 쟁점을 정리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5일 2차 심사 때부터 태도가 달라졌다. 한국당 의원들은 소위가 비공개로 전환된 뒤 타다 금지 조항(‘대여 시간이 6시간 이상이거나, 대여 또는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에만 승합차의 기사 알선 허용)을 놓고 한술 더 떴다.

인천에 지역구를 둔 민경욱 의원이 운을 떼었다. “택시업계의 우려 사항을 전달하면, ‘대여 또는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이라고 했는데 공항이 포함될 경우 인천의 택시업계는 타격이 크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이현재 의원이 거들었다. “인천항만에서 30분, 1시간이면 시내 다 다니잖아요. 인천공항에서 다 그렇잖아요. 또 대구공항, 대구 시내에 있다 이거지요. 그러면 이게 또 분란이 생길 것 아니냐….”

두 의원의 문제 제기에 소위에 참석한 김경욱 국토부 2차관은 “(법 집행할 때) 항공기 탑승권이나 선박 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만 인정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법안 의결을 앞두고 이 의원은 집요하게 ‘확실한 집행’을 요구한다.

▽이 의원=시행할 때 ‘항공권이나 탑승권을 소지한 자에 한한다’ 이렇게 한다 이거지요?

▽김 차관=그렇습니다.

▽이=다시 한 번 명확히 정리해 주세요. 속기록에 남게.

▽김=탑승권을 소지한 경우에 한한다, 그렇게 운영을 하겠습니다.

▽이=그러니까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에는 어쩌고’ 말씀을 해주시라니까.

▽김=대여 또는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에는 탑승권을 소지한 경우에 한하도록 운영을 하겠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국토위에 ‘특정한 형태의 운수사업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서를 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별다른 논의는 없었다.

국토위 소속의 한 한국당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아쉽다”고 말했다. 신사업에 대해선 국제 기준에 맞춰 보다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만약 한국당이 ‘신중히 검토하자’고 하면 택시업계에서 ‘한국당은 이 개정안을 반대한다’고 프레임을 씌워버리니까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며 현실론을 폈다.

○ 여론보다 ‘조직 표’에 민감한 여의도

국회의 타다 금지법 논의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인 택시업계 의견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정작 이용자의 의견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타다 이용자들은 택시업계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산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것에 그친다. 반면 택시 4개 단체는 10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만일 개정안 통과가 무산될 경우 100만 택시 가족의 총궐기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의원들은 현재 택시업계의 조직적 압력과 타다 금지 비판 여론 사이에서 일단 택시업계의 손을 들어 줬다. 국회 생활 10년 차인 한 보좌진은 “대중은 각자 관심사가 다양해 어떤 의원이 타다를 반대했다고 ‘총선에서 안 찍어야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인이든 개인이든 택시는 조직돼 있어서 낙선운동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 여론이 집약돼 표출될 때까지는 이익집단의 ‘조직 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게 여의도 정치권의 생리이다. 보건의료노조 등에 막혀 20년째 시범사업만 하는 원격의료가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병태 KAIST 교수 겸 컨슈머워치 공동대표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국민 편익을 증진시키는 게 정치의 역할인데 한국 정치는 ‘혁신 경쟁’은커녕 ‘로비 경쟁’만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가정상비약 슈퍼 판매, 여론 뭇매 맞고 부랴부랴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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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회 눈치 본 의원에 비난 쇄도
美선 시민 반발로 우버 규제 불발


타다 등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와 택시업계의 갈등처럼 새로운 산업이나 서비스가 등장할 때 기존 산업과 충돌이 빚어지는 일이 많다. 그 과정에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은 소수의 이익단체 편에 서기 십상이다. 이는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이런 상황은 발생한다. 하지만 대중의 표가 흩어져 있다고 국민의 편익을 저해하는 시도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판 여론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고 힘을 얻으면 정치권도 마냥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감기약과 해열진통제, 소화제 같은 가정상비약을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도록 한 조치가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2011년 9월 안전성이 검증된 의약품을 편의점 등 약국 이외에서도 팔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민들이 한밤중이나 공휴일에 약국을 찾아 헤매지 말게 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간을 손상시키거나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의약품이 무절제하게 판매될 수 있다” “슈퍼에서 의사 처방이 필요 없는 약을 사면 보험 적용이 안 돼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며 아예 개정안에 대한 심의 자체를 거부했다. 국민 건강에 대한 우려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 회원 6만 명을 거느린 대한약사회의 눈치를 보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한국소비자원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71.2%가 찬성하는 등 약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에게 여론의 비난이 집중되자 해당 의원들은 부랴부랴 2012년 2월 상임위에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고도 동네 약사들의 ‘입소문’이 두려웠던 의원들이 몸을 사린 탓에 개정안의 최종 본회의 통과는 19대 총선 이후인 2012년 5월에 가까스로 이뤄졌다.

미국 뉴욕에서는 차량 공유 서비스업체 ‘우버’에 대한 규제를 시도했다가 시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예도 있다. 2015년 당시 좌파 성향의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혼잡시간대에 더 비싼 요금을 받는 우버의 횡포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게 시의 임무”라며 우버 차량의 증가를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여론은 크게 반발했다. 악명 높은 뉴욕 맨해튼 택시의 불친절과 질 낮은 서비스를 참을 수 없다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며칠 만에 시장에게 1만7000통의 항의 메일이 왔고, 당시 200만 명이 넘는 뉴욕시 우버 애플리케이션(앱) 가입자들 중 상당수가 반대 서명에 나섰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소비자들에게 편리한 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결국 더블라지오 시장은 방침을 철회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환경과 일자리 보호라는 정치적인 수사로 포장했지만 이익집단을 보호하려는 시도가 패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