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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퍼 10cm 흠집 200만원, 수입차 수리비 정말로 ‘난공불락’

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입력 2016-01-28 08:00:00업데이트 2023-05-10 02:44:38
수입차와 경미한 접촉사고를 낸 박지영 씨(43·가명)는 수리비 청구금액을 확인하고 당혹스러웠다. 사고당시 상대방 차량은 앞 범퍼 부분에 10cm 정도 흠집이 났지만, 해당 부품을 통째로 갈고 수리기간 차량 대차(렌트)까지 더해지면서 200만 원이 넘는, 말로만 듣던 수리비 ‘폭탄’을 맞은 것이다.

이런 사고 때 과도한 수리비 지출을 막겠다는 취지하에 정부가 이르면 오는 4월부터 차량 관련 자동차보험 기준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비업체들의 수리비 관행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우선 되지 않아 이번 자동차보험 합리화 방안(▲경미사고에 대한 수리기준 마련 및 규범화 추진 ▲대차 시 동급차량의 최저요금 수준 지급 ▲실제 수리원칙 도입 및 이중청구방지시스템 구축 ▲고가 수리비 할증요율 신설)이 미봉책에 그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정비소

수입차는 2012년(13만858대)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 10%를 넘어섰고, 3년 만인 지난해(24만3900대) 15%를 돌파했다. 이처럼 수입차 신규 등록대수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지만 공식 서비스센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27일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2015년 9월 기준 19개사 수입차업체 전국 공식 서비스센터는 모두 383곳이다. 2003년 1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총 127만대의 수입차가 등록됐는데, 정비공장 1곳당 취급 대수로 환산하면 평균 3315대가 나온다. 그마저도 차량의 엔진 문제나 도장, 용접 등을 손볼 수 있는 종합정비업체는 174곳에 불과하다. 이중 대표적인 수입차업체 BMW는 44곳, 메르세데스벤츠 39곳,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은 각각 27곳, 29곳에 그치고 있다.

정비소 부족은 곧 수리기간 연장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자동차 평균 수리일자를 보면 수입차는 국산차 4.9일보다 3.9일 긴 8.8일이나 됐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수입차 딜러사들의 공식 서비스센터 수는 수입차 증가 추세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며 “사고 시 수리기간이 길어지면 대차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감당 안 되는 수입차 렌트

수입차 렌터카 이용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점도 과도한 수리비를 부추긴다. 따라서 보험사들은 손해배상을 하면 원상복구를 해줘야 한다는 내용의 민법을 모든 사안에 적용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수입차 이용자가 동급 수입차를 렌트해 사용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이상돈 보험개발원 사고분석팀장은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사고 시 동종 수입차로 대차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북미·유럽 등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모델이 아닌 배기량이 같은 차량으로 렌터카를 지급하고 있고, 심지어 스웨덴은 렌터카 이용액 한도 내에서 스스로 차를 구하게 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국토교통부·금융감독원·보험개발원 등 4개 정부기관은 이 같은 수입차 렌터카 이용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현행 표준약관상 제공하도록 규정한 ‘동종 차량’을 ‘동급 차량’의 최저요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올해 2분기부터 개선하기로 했다. 즉 기존에 수입차는 동일 수입차로 대차해줬는데, 앞으로 같은 배기량의 국산차 지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수입차 렌터카 업체들이 반발하고 나서 갈등을 빚고 있다. 렌터카 업계 관계자는 “현재 수입차를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며 “만약 법안이 바뀌면 수입 렌터카 업체들은 막대한 타격을 입는다”고 호소했다.

#표준 정비 매뉴얼 도입 시급

무엇보다 불필요한 보험료가 새는 데에는 표준화된 정비 매뉴얼 부재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현재 수입 업체들은 각기 다른 기준의 정비 매뉴얼을 갖고 있다. 이렇다보니 수리비 산정법도 제각각이다. 특히 작업표준시간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수리시간을 고의로 지연해도 일반 소비자들은 이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 한 업체의 경우 아우디 A6 앞범퍼 교체 작업시간을 무려 15시간으로 표기해 막대한 공임비를 챙긴 사례가 최근 언론에 보도된 적도 있다.

그나마 보험사들은 수입차 사고 수리 시 ‘아우다텍스(Audatex)’라는 견적 시스템으로 수리비를 산정하고 있지만, 그 외에는 수입업체 자체 규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실제 정비시간과 부품가격, 수임료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 아우다텍스는 교통사고가 발생할 경우 즉시 사고 차량의 모델별 부품 가격과 수리시간·방법 등 정비 사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쉽고 빠르게 견적을 산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한국닛산, 인피니티코리아 등이 도입해 활용 중이다.

이상돈 팀장은 “아우다텍스는 견적을 고객과 보험사에 바로 전달해 서비스센터와 보험사 간의 업무 효율을 높여준다”며 “수리할 때 필요 없는 부품을 끼워 넣거나 수리비를 과도하게 청구하는 사례, 불량수리로 인한 2차 사고 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싼 부품+공임비=수리비 폭탄

비싼 수리비의 또 다른 원인은 부품 가격에서 찾을 수 있다. 수입차 부품은 수입차 업체가 부품을 본사에서 사온 뒤 딜러사에 마진을 붙여 되파는 구조다. 딜러사는 다시 또 마진을 더해 소비자에게 넘긴다. 실제로 보험개발원이 파악한 주요 독일 수입차 업체들의 일부 부품 평균 가격은 해외보다 1.2~2.3배 높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수입 업체들이 시장 확대를 위해 신차 가격을 할인해 주는 척하면서 서비스 부문에서 이익을 남기고 있다”며 “막상 차량을 구입할 때 소비자들은 부품 가격보다 신차 가격에 민감한 점을 업체들이 파고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부품 시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난해 도입한 ‘대체부품 인증제도’도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체부품 인증제도는 순정품으로 불리는 고가의 OEM 부품과 대체부품간의 시장 경쟁을 통한 부품 가격 인하 실현이 목적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보험개발원의 심사에 통과한 부품은 단 2건(BMW 5시리즈 양쪽 펜더)에 불과하다. 이 팀장은 “국내 부품시장은 OEM 종속적 구조로 대체 부품 생산에 즉각 뛰어들 수 없는 입장”이라며 “사고 피해자들도 가해자의 보험에서 수리비가 지급되니까 동일 조건이면 OEM 부품 교체를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허청, 디자인권 ‘대체부품 활성화’ 막아

특히 각 부처의 입장차도 대체부품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 특허청은 디자인권이 설정돼 있는 자동차 개별 부품의 복제 및 생산을 허용하지 않는다. 글로벌 시장에서 디자인권이 걸려 있는 주요 자동차 생산 국가는 프랑스와 한국이 전부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수리에 많이 쓰이는 외장 등 40개 품목에 디자인권이 설정된 경우가 많다”며 “하루빨리 통상실시권을 허락해 다수 업체가 허용된 범위에서 부품 생산을 가능하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20년이 지난 수입차 관련 산업은 아직까지도 제도적으로 허점투성이”라며 “총체적 난국 속에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비자들도 의식을 갖고 합당한 서비스를 업체에 계속해서 요구해 정당한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