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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숫자의 위압, 아우디 A8L W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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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8-17 08:32:10업데이트 2023-05-10 21:42:23
최대 500마력, 가격은 2억1,500만원

아우디 플래그십 세단 A8의 상세 구분법은 간단하다. 휠베이스가 짧으면 그냥 A8이고, 길면 A8L이다. 여기에 네바퀴굴림인 콰트로 구동방식은 기본이며, 변속기는 자동 8단이다. 엔진은 V형 6기통에 슈퍼차저가 결합된 3,000㏄급과 4,200㏄ 직분사 엔진, 그리고 W형 12기통의 6,300㏄ 직분사 엔진이 있다. 이 가운데 시승 차종은 6,300㏄급 엔진이 적용된 A8L W12다. 'L'이 포함돼 있으니 휠베이스는 3,122㎜이고, 최대출력은 배기량만큼 높은 500마력이다. A8 W12의 배기량과 최대출력을 보면 성능은 숫자로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통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7초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A8의 시작은 1987년 아우디 200에서 비롯됐다. 벤츠와 BMW 대비 대형 고급차가 없었던 아우디는 200에 V형 8기통 엔진을 적용했다. 이때부터 비공식적으로 '아우디의 8기통 차종'이라는 의미에서 'A8'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후 1993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아우디가 100%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을 발표하면서 화제가 집중됐고, 1998년 A8이라는 차명의 1세대가 등장했다. 이후 2004년 2세대가 등장한 뒤 곧바로 이듬해 아우디 디자인의 상징인 대형 싱글프레임 그릴이 채용됐다.

▲ 디자인
싱글 프레임 그릴은 여전하다. A8이 대형차라는 점에서 오히려 크기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LED 주간주행등과 야간 LED 램프는 상당히 아름답다. 낮에는 주간주행등이 강렬한 인상을 자아내고, 밤에는 LED 헤드램프가 A8의 위용을 드러낸다.

측면은 메쉬타입 휠이 고급스러움을 상징적으로 내보이되 벨트라인이 높아 고급 세단임을 은밀히 강조한다. 뒷모습은 간결하며너도 램프와 트렁크리드의 일체감이 무척 인상적이다. 물론 아우디 디자인의 특징이다. 일체형 범퍼에는 대형 머플러가 좌우 바깥쪽으로 최대한 밀착 배치됐다. 램프가 가로형으로 길게 자리 잡은 것처럼 머플러도 램프 끝선 정렬을 보여준다. 덕분에 간결하다. 밤에 램프를 켜면 역시 LED가 램프를 사각형으로 감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인테리어는 4.2 FSI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좌우로 넓게 포진한 계기판과 4스포크 스티어링 휠이 묵직함을 자아낸다. 대시보드 중앙의 모니터는 꺼낼 수도, 안으로 넣을 수도 있다. 그 아래 공조와 오디오는 좌우 대칭형이라기보다 사용자 위주로 구성됐다. 오디오의 경우 터치패드가 있어 필요한 라디오 등의 채널을 저장해 놓으면 편리하다.

변속레버는 항공기 조종레버와 비슷하지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형태는 아니다. 아날로그 시계는 대시보드 상단에 자리해 품위를 주지만 계기판에 디지털로 시간이 표시되는 만큼 굳이 있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아날로그 시계를 그저 '멋'으로 생각하면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디자인이야 보는 사람마다 시각이 다르고, 느낌도 천차만별이어서다. 어찌됐든 자동차 느끼기에 정답은 없는 법이다.

▲ 성능 & 승차감
먼저 운전석에 앉았다. 가속페달과 스티어링 휠에는 중량감이 명확히 묻어난다. 가죽 스티어링 휠은 촉감이 좋지만 공조레버는 조금 작다. 차의 크기와 타는 사람들의 연령층을 고려하면 조금 더 키워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속도를 높였다. 배기량 6,300㏄ 직분사에 8단 자동변속기는 최고급 대형세단의 부드러움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실제 시속 200㎞까지 올릴 때도 부드럽게 힘이 넘치고, 속도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통상 대형세단일수록 고속에서 속도감이 별로 없다는 특징이 예외 없이 담겼고, 고속주행 때 흔들림도 최대한 억제돼 안정감이 있다. 고속에서는 승차감을 스포츠 모드로 놓고 달렸는데, 운동성능이 그만큼 높아져야 고속에서의 조향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다시 속도를 시속 100㎞로 줄인 뒤 승차감을 '컴포트'로 바꿨다. 단단했던 댐퍼가 느슨해지면서 부드러움을 선사한다. 적응형 크루즈 기능을 활성화시키면 스티어링 휠만 움직일 뿐 할 일이 없다. 뒤에 앉은 사람은 관계없지만 정속주행이 필요한 곳에서 작동시키면 운전하는 사람은 졸릴 수도 있다. 아우디 뿐 아니라 다른 차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VIP 좌석에 앉았다. 앞좌석 뒷부분에 모니터가 부착돼 있고, 암레스트를 통해 모든 오디오와 공조, 뒷좌석 등받이 각도와 마사지 기능까지 조절할 수 있다. 암레스트 뒤에는 냉장고도 있어 필요한 음료를 넣어두면 된다. 실제 물을 넣었는데, 한 시간 정도 지나 꺼냈을 때 시원함이 살아 있다. VIP 스스로 꺼내야 하는 셀프서비스지만 여름철 냉장고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백 배 낫다.

VIP 석에서 좌우 창문 커튼 및 뒷 유리 커튼도 조절할 수 있다. A8이면 당연히 대부분 짙은 틴팅을 하겠지만 그래도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면 커튼을 올리면 된다.

운전자가 속도를 높였다. 시속 150㎞에서 직접 '스포트'에서 '컴포트' 모드를 뒷좌석에서 설정했다. 부드러움이 편안함으로 다가오면서 온 몸이 나른해진다. 마사지 기능을 작동시키니 허리부터 등까지 천천히 압력이 전달돼 온다. 너무 편안해 슬슬 잠이 함께 쏟아진다. 사실 VIP 석은 편안함으로 졸음이 와야 정상이다. 그렇게 편히 쉬라는 의미에서 VIP 좌석의 각종 기능과 승차감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VIP석 헤드레스트도 무척 편안하다.


뒷좌석에 앉아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는 '구렁이 담 넘기'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잠시 위아래 이동만 있을 뿐 워낙 충격흡수력이 뛰어나 별 다른 진동이 없다. 개인적인 시각이지만 승차감이 좋다는 것을 '흔들림이 적다'로 표현한다면 흠 잡을 일은 없다. 물론 댐퍼의 감쇄력을 단단하게 바꾸면 조금 다르지만 정말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평소 컴포트를 유지하는 게 편안함을 위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뒤에 앉아 승차감 모드를 '스포트'로 다시 전환한 뒤 지상고를 높였다. 험로는 아니지만 국립공원 입구의 비교적 평평한 비포장도로에 들어선다. 비포장은 시속 40㎞ 정도여도 비교적 빠른 속도인데, 뒷좌석에서 몸이 심하게 요동치거나 하지 않는다. 타이어가 1차적으로 충격을 흡수하면, 2차로 서스펜션이 강한 충격을 잡아내고, 3차로 시트가 최대한 상하좌우 진동을 막아낸다. 덕분에 시트와 등받이에 기댄 몸은 흔들리기는 하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다시 운전석에 올랐다. DVD를 틀었다. 당연히 운전석 모니터는 주행 중 나오지 않지만 VIP 석에선 앞좌석 뒤에 부착된 모니터가 켜진다. 뱅앤울룹슨 오디오에서 방출되는 풍부한 음량과 음색이 실내 공간을 휘어잡는다. 개인적으로 카오디오 소리에 민감한 편인데, 음질의 선명함에 귀가 즐겁다. 게다가 운전석과 VIP의 대화가 조용한 목소리도 가능할 정도로 정숙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의 실내 울림은 웅장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VIP의 편의를 고려하다보니 헤드레스트가 앞으로 접히지 않는다. 앞 조수석 헤드레스트가 접혀 있으면 운전기사를 두는 '쇼퍼 드리븐(Chauffeur Driven)'이고, 세워져 있으면 직접 운전하는 '하이오너(High Owner)'라는 국내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에 대비할 때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우디는 뒷좌석 모니터를 좌우 독립적으로 적용해 편의성 확대를 선택했다. A8L W12의 연간 예상 판매량이 100대 정도인 한국의 영향은 크게 미치지 못했다.


▲ 총평
아우디 최고급 대형세단 중에서도 가장 비싼 차종이 A8L W12다. 가격만 2억1,500만원이다. 승차감, 브랜드, 콰트로, 중량감 등 대부분 항목에서 만족할 만하다. 그래서 시승 후 문의를 해온 고급 대형세단 구입 예정자에게 추천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그래도 벤츠 S500을 타야겠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큰 차는 벤츠가 정답'이라는 말을 해왔다.

이런 점을 보면 고정관념은 쉽게 바꾸기 어려운 법이다. 쇼퍼 드리븐을 선택하는 VIP들은 더욱 그렇다. 자신들이 경영하는 기업이나 조직에선 변화를 주문하지만 정작 그들의 머리는 잘 바뀌지 않는다. 물론 A8L W12가 벤츠 S500보다 낫다는 것도 아니고, 뒤진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요즘처럼 거리에 S500이 일률적으로 넘쳐나는 시대에 대형 고급 세단의 새로운 선택적 대안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의미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