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오래된 미술품 관리하듯 클래식 카의 가치 살리는 ‘복원’

류청희 자동차칼럼니스트

입력 2022-04-29 03:00:00 수정 2022-04-29 03:00: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엔진을 전기 모터로 교체하는 등 개조하듯 복원하는 ‘레스토모드’
英복원 업체 ‘클래식 모터 카스’… 내구성-신뢰성 높이는 작업 통해
‘애스턴마틴 불도그’ 완전 복원 시도


3000여 시간을 들인 작업을 통해 복원된 1961년형 재규어 E타입.

류청희 자동차칼럼니스트
세상에 영원불멸한 물건은 없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은 더욱 그렇다. 어떤 것이든 세월의 흐름 속에 낡고 무뎌지며 빛이 바래기 마련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는 공장에서 완성되어 처음 시동을 걸고 움직이는 순간부터 낡기 시작한다. 원래 상태를 한결같이 유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보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미술품처럼 최적의 조건을 갖춘 환경에서 관리하면 좀 더 오래 보존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의 본질은 움직이는 기계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차의 본질적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자동차를 운행하면서도 원래 모습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일에는 대단한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품을 구하기 어렵고, 불의의 사고로 부서지기도 한다. 일반적인 수리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고, 큰 비용이 필요하기도 하다.

일상용 평범한 차와 달리, 희귀하고 역사적 의미가 있는 차들은 복원이 특히 더 중요하다. 그런 차들을 폐차하는 것은 곧 역사의 일부를 지워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순히 경제 논리로만 따질 수 없는 차들의 가치를 지키고 되살리는 일은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흔히 복원 또는 레스토레이션(restoration)이라고 이야기하는 작업이 바로 그런 일이다.

차 상태에 따라 복원의 수준과 과정은 천차만별이어서 소유주는 복원을 시작할 때 선택과 타협을 해야 한다.
복원은 말 그대로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는 일이다. 그러나 차 상태에 따라 복원 과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차를 가진 사람이 복원을 하려 한다면, 시작 시점에서 복원할 차의 가치와 들일 수 있는 시간과 비용은 물론이고 복원할 영역과 수준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고, 작업에 적합한 전문가를 찾아 맡기는 것도 복원 과정의 일부다.

오래된 차들이 활발히 거래되는 외국에서는 전문가들이 차를 살펴보고 판단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소유주가 전문가인 경우도 많다. 어떤 경우에건 투입할 자본과 노력의 기준을 잡는 것이 우선이다. 처음 차가 완성되었을 당시 모습으로 완벽하게 복원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엄청난 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래서 복원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영역부터 손을 대기 시작해야 한다. 겉모습이나 낡은 내장재를 되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엔진과 변속기 등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데 집중하기도 한다. 즉, 복원은 선택과 타협의 세계다.

현실적으로 원래 상태로 돌려놓기 어렵거나 일상적으로 쓰면서 편리하게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개조에 가까운 복원을 하기도 한다. 이른바 레스토모드(restomod)가 그런 작업이다. 클래식 카의 엔진을 들어내고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얹어 전기차로 개조하는 작업도 레스토모드의 한 가지다. 이 같은 작업은 순수한 의미의 복원으로 볼 수는 없지만, 옛 차의 감성을 현실 세계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새로운 유행이 되고 있다.

복원 작업의 정점은 ‘풀 레스토레이션(full restoration)’이라고 하는 완전 복원이다. 차 전체를 완전히 살피고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희소성이 높고 차가 오래될수록 완전 복원에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완전 복원된 차들은 매매나 경매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가 많고 단체가 주관하거나 모금을 통해 비용을 마련하기도 한다.

최근 완전 복원 사례 가운데 흥미로운 것을 꼽자면 영국의 복원 전문 업체 클래식 모터 카스(Clas
복원 작업 중 임시로 엔진을 설치해 공간을 확인하고 있는 애스턴마틴 불도그. 클래식 모터 카스(Classic Motor Cars) 제공
sic Motor Cars)의 애스턴마틴 불도그(Aston Martin Bulldog)를 들 수 있다. 불도그는 1970년대 말에 애스턴마틴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일반 도로용 양산차’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만든 차다. 애스턴마틴은 미래적 디자인과 당시 기준으로 첨단 기술을 가득 담아 호화롭게 꾸몄고, 시속 200마일(약 320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 애스턴마튼은 15∼25대의 불도그를 만들 예정이었지만 재정난 때문에 1980년에 단 한 대만 완성된 채로 계획은 취소되었고, 시험 주행에서 시속 191마일(약 307km)로 달렸지만 목표한 속도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이후 애스턴마틴은 1984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왕자에게 불도그를 팔았지만 첫 주행에서 고장났고, 이후 수리되지 않은 채 여러 차례 다른 주인에게 넘겨지다가 조용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그러던 2020년, 현재의 소유주가 클래식 모터 카스에 완전 복원을 의뢰하면서 불도그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분야별 전문가들이 애스턴마틴 불도그의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클래식 모터 카스는 상세 자료를 토대로 차를 완전히 분해해 주인이 바뀌면서 달라지거나 잘못 수리된 부분을 원상 복귀시켰고, 원래 계획했던 속도 기록을 낼 수 있도록 내구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작업도 진행했다. 작업에는 8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투입되어 18개월 동안 진행되었고, 지난해 9월 복원이 끝난 모습으로 공개되었다.

복원된 불도그는 주행에 관련된 부분들은 물론이고 원래 차체색과 호화로운 내장재도 옛 모습을 되찾았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40여 년 만의 첫 시험주행에서는 시속 162마일(약 261km)을 기록해 목표했던 시속 200마일 돌파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복원이 오랫동안 극소수 애호가들만의 관심사였다. 자동차의 대중화가 늦었고 문화의 깊이와 너비가 얕고 좁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분위기가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자동차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늘고 자동차를 즐기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옛날 차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익숙한 물건의 낯선 모습이 주는 느낌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자동차 복원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크다.

다만 우리나라는 자동차 역사만큼이나 복원에 관한 문화·산업도 역사와 경험이 짧다. 이에 작업 환경은 척박하기 그지없고 수준도 천차만별이어서 제대로 된 복원 사례는 접하기 어렵다.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자동차 역사가 길고 문화적으로 발전한 지역에서는 그 스펙트럼이 훨씬 더 넓다. 오랜 경험과 깊은 문화적 배경 때문에 복원에 관한 개념이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고 관련 산업도 탄탄하다. 다른 분야들처럼 자동차 복원 역시 먼저 경험하고 환경을 갖춘 곳들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영역이다.


류청희 자동차칼럼니스트

자동차 핫포토

라이프



동아오토 +팔로우, 동아만의 쉽고 재미있는 자동차 콘텐츠!, 네이버 포스트에서 더 많이 받아보세요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