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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 명차]인생 황금기에 만나는 ‘페라리 로마’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입력 2021-06-08 21:28:00업데이트 2023-05-09 13:20:59
‘라 누오바 돌체 비타(La Nuova Dolce Vita)’. 페라리 로마와 마주하면 새로운 달콤한 인생을 경험할 수 있다. 익숙한 일상이 아닌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아드레날린이 온몸에 퍼지면서 익숙함에 무뎌졌던 오감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마저 든다. 무엇보다 우아한 몸짓과 어우러지는 폭발적인 성능에 가슴이 설렌다.

지난달 20일 페라리를 가장 가까이 체험할 수 있는 ‘로드 앤 트랙 익스피리언스’에서 로마를 처음 만났다. 페라리가 투박하고 빠른 슈퍼카만 만드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한데, 로마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차 중 하나다. 고전미를 완벽하게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페라리의 새로운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모델이자, 우아한 디자인과 첨단 기술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는 그랜드투어러(GT)다.

페라리 로마는 경제적으로 황금기를 이룬 1950~60년대 이탈리아의 풍요롭고 자유분방한 라이프스타일을 비유하는 ‘라 돌체 비타(달콤한 인생)’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모델명도 이 황금기의 중심인 수도 로마로 채택됐다. 이런 로마는 운전자의 인생 황금기를 대신 말해주기도 한다.

이 시대는 페라리에서 우아하고 섬세한 디자인이 탄생한 때이기도 하다. 1962년 선보인 250 GT 베를리네타 루쏘와 250 GT 2+2 로 대표되는 페라리의 프론트-미드십 엔진 GT 라인업에서 영감을 받은 조화로운 차체 비율과 볼륨감이 특징이다. 페라리 GT의 고전적인 선들을 완벽하게 재해석한 간결한 형태와 정제된 스타일링으로 품격있는 미니멀리즘을 구현한 한편, 날렵한 라인들은 페라리 특유의 강력한 주행성능을 암시한다.

인테리어는 멋스럽다. 센터페시아에는 10.25인치터치스크린이 탑재돼 있고, 조수석 앞에는 패신저 디스플레이가 들어가 동승자도 실시간으로 주행 정보를 확인 가능하도록 배려했다. 각종 버튼이 들어간 스티어링휠은 F1 운전대가 연상됐다. 주행모드 선택 버튼은 물론이고 와이퍼와 좌우 방향지시등도 핸들에 붙은 버튼을 눌러 조작하는 방식이었다. 운전대에서 최대한 손을 떼지 않고 주행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스티어링휠 뒤쪽 패들 시프트를 안으로 당겨 서서히 출발했다. 시승은 강원도 인제스피디움 서킷을 돌고, 다시 서울 청담동까지 돌아오는 코스였다.

인제 서킷은 난코스가 많다. 우선 고저차도 상당하고, 구불구불 코너구간이 다양한 형태로 포함돼 쉴 새 없이 감속과 가속 페달을 수시로 밟아야한다. 이런 악조건을 로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페라리 로마는 4년 연속 ‘올해의 엔진상’을 수상한 페라리 8기통 터보 엔진을 탑재, 620마력을 발휘한다. 차량의 엔진에서 주목할 만한 혁신 기술로는 새로운 캠 프로파일, 터빈의 회전 운동을 측정해 최대 RPM을 5000rpm가량 끌어올릴 수 있는 스피드 센서, 엄격한 유로 6D 배기가스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도입된 가솔린 미립자 필터를 꼽을 수 있다. 페라리 엔지니어들은 엔진 연소 과정에서 생성되는 미세먼지를 위한 폐쇄형 매트릭스 필터인 GPF 최적화에 심혈을 기울여 필터 도입 후에도 주행의 즐거움을 그대로 유지시켰다.

페라리 슈퍼카의 고속 안정감은 일반 승용차와 질적으로 다르다. 로마는 직선 가속 구간에서 엑셀레이터를 힘껏 밟아 엔진회전수를 최대한 끌어올려도 일정 수준의 안정감을 유지했다. 페라리 로마는 차량의 미끄러짐을 정밀하게 예측해 이를 온보드 컨트롤 시스템에 제공하는 알고리즘의 사이드 슬립 컨트롤 6.0(SSC 6.0)을 적용했다. SSC 6.0에는 E-Diff, F1-Trac, SCM-E Frs 및 페라리 다이내믹 인핸서(FDE)가 적용돼 있다. 특히 FDE의 경우 페라리 로마의 레이스 모드 최초로 도입됐다. 차량의 기본적인 셋업 사양과 더불어 5가지의 마네티노 주행 모드(Wet, Comfort, Sport, Race, ESC-Off)를 통해 차량의 핸들링 및 접지력을 더욱 손쉽게 제어할 수 있어 주행의 즐거움을 더욱 배가한다.

특히 고속 코너링은 날카롭고 한 치 오차도 없이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민첩하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이 차에는 코너에 진입할 때 앞바퀴와 뒷바퀴가 반대로 틀어진다. 또 코너 탈출 시에는 앞뒤 바퀴 방향을 똑같이 해 더 빠르게 치고 나오도록 하는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다른 페라리 터보 엔진 모델처럼 페라리 로마도 제로 터보랙 콘셉트에 부합하는 즉각적인 스로틀 반응을 보인다. 이는 크기가 감소하며 회전질량이 작아져 유제역학 성능이 개선된 플랫 플레인 크랭크샤프트와 관성 모멘트가 줄어든 소형 터빈, 최고 출력을 위해 배기 맥동 압력을 높인 트윈 스크롤 기술, 터빈내 압력파 최적화 및 손실 최소화를 위해 동일한 길이의 파이프가 장착되고 일체식으로 주조된 배기 매니폴드 덕분이다.

로마는 폭발적인 성능을 보이는 레이스 모드에서도 안정감을 유지한다. FDE는 상황에 따라 휠에 대한 제동 압력을 조정하는 측면 다이내믹 컨트롤 시스템으로 페라리 로마에서는 마네티노의 레이스 모드에만 적용된다. 이는 안정성 컨트롤 시스템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ESC 측면에 배치되어 옆으로 미끄러지는 움직임을 보다 부드럽고 예측 가능하며 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로써 레이스 모드 사용시의 주행의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모든 페라리 엔진은 고유의 사운드트랙을 갖고 있다. 페라리 로마 역시 이를 위해 전체 배기 시스템 구조가 재설계됐다. 두 개의 후방 소음장치를 제거해 배기관 내 배압을 줄이고, 바이패스 밸브를 타원형으로 새롭게 가공해 배기파이프의 배압을 감소시켰다. 또한 주행 상황에 따라 연속식 비례 바이패스 밸브 컨트롤이 이뤄지며 사운드 퀄리티가 대폭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로마 엔진 배기음은 날카롭게 파고들면서도 부드러움을 유지해 거부감이 덜했다.

로마의 또다른 특징인 가변 부스트 매니지먼트는 페라리가 개발한 제어 소프트웨어다. 선택한 기어에 맞게 토크 전달을 조절해 회전 운동이 증가함에 따라 점차 강력한 픽업을 전달하는 한편 연비를 최적화한다. 차량의 기어를 올릴수록 엔진에서 전달되는 토크의 양은 점점 늘어나 7단과 8단에서는 최대 77.5kg·m에 이른다. 이를 통해 고단 기어에서는 상향된 기어비를 사용할 수 있어 연비와 배기가스를 줄이고 저단 기어에선 회전 범위에서 보다 급격한 토크 커브를 도입해 부드럽고 일관된 픽업의 느낌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이날 왕복 약 400km를 달리는 동안 기록한 최종 연비는 7.8km/ℓ로 준수했다. 급가속 급정거를 일삼았지만 공인 연비(7.4km/ℓ)보다 소폭 높게 나왔다.

주행 보조 장치도 만족스러웠다. 로마는 차선 중앙유지와 차간 간격 등 군더더기 없이 수행해냈다. 급격한 곡선구간에서는 주행 경로를 이탈할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정확도는 꽤 높았다. 페라리 ADAS(지능형 주행 보조 시스템-SAE 기준 1단계)는 스티어링 휠에서 바로 조작이 가능하고, 보다 빠르고 안전한 인터랙션이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자동 긴급 제동 기능, 교통 표지판 인식 및 차로 이탈 경고 기능, 후측방 접근 경보 및 사각 지대 감지 기능, 서라운드 뷰 카메라 등이 포함된다.

이밖에 로마의 옵션형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 시스템은 하이빔을 적용해 가시성을 높이면서도 앞 차 혹은 맞은편 차량의 눈부심을 방지한다. 조사 범위 내 다른 차량이 감지되는 경우, 맞은편 운전자의 눈부심을 초래하는 하이빔 영역을 선별적으로 자동 차단함으로써 눈부심을 방지한다. 주변에 많은 차량이 있다고 인식하면 조명의 밝기를 완전히 낮추고, 도로가 한산하면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하이빔을 작동한다.

인제=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