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잠정 타결, 트럼프가 막판 제동…정부 성급했나

  • 뉴시스
  • 입력 2020년 4월 3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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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협상 중…대통령은 韓 더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
정부 "고위급 협의에도 타결 못해…조기 타결 노력"
"에스퍼 등이 만났지만 트럼프가 거부해 무산된 듯"

6개월 넘게 진행됐던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막판에 또다시 암초를 만났다. 한때 한국 정부 안팎에서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기대가 나왔지만 미국은 “협상이 진행 중”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대했다는 해석이 우세한 가운데 미국이 막판까지 증액 압박을 이어가며 타결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3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미 국무부 관계자는 2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일부 한국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한국과 상호 이익이 되고 공정한 합의를 이뤄 먼 미래까지 나아갈 수 있는 동맹 강화와 연합 방위를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미국의 동맹국들이 더 기여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기대를 명확히 해왔다”고 강조했다.

미 국무부가 먼저 한국 언론에 논평을 보낸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한국 정부 안팎에서 제기됐던 ‘타결 임박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 국무부가 “동맹국이 더 기여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며 미국의 증액 요구가 후퇴하지 않았다는 점도 재차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이 ‘김칫국 마시다’라는 글귀가 적힌 사진을 리트윗한 것도 회자되고 있다. 방위비 협상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한국 정부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전날 트위터에서 “나는 오늘 부화하기 전 닭을 세지 말라는 것이 때가 될 때까지 김칫국을 마시지 말라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트윗이 논란이 되자 “순수한(악의가 없는) 것”이라며 “특히 그가 한국 문화를 존중하고 김치를 즐겨먹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명했다.

앞서 정은보 방위비분담협상대사는 지난 달 31일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을 앞두고, 한미간 방위비 협상이 ‘막바지 조율 단계’ ‘마지막 단계’라며 “조만간 최종 타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후 청와대와 외교가 안팎에서는 빠르면 1일 협상이 타결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한미는 지난해 분담금(1조389억원)보다 10~20% 인상된 1조2000억대이며, 협상 유효기간은 5년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하루 만에 정부는 타결 임박설을 진화했다. 외교부는 전날 오후 방위비 협상 상황에 대해 “고위급에서도 계속 협의해 왔으나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협상이 조기에 타결되도록 계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으로 전화 협의를 진행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가 최종 타결에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미 NBC 방송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지난 달 31일 백악관을 찾았다. 이후 결과 보도는 없지만 무급휴직은 예상대로 시행됐다.

협상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지난 달 31일까지만 해도 방위비 협상이 80~90% 마무리 됐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가가 남아있다는 분위기였다”며 “미국 시간으로 31일 폼페이오와 에스퍼 장관이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을 막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지만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며 협상 타결이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미 외교장관 통화에서는 폼페이오 장관의 백악관 방문 결과도 공유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양측 외교수장으로 방위비 협상에 관한 의견 조율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폼페이오 장관의) 백악관 방문 결과라기보다는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양국 외교수장이 통화하니까 포괄적으로 많이 얘기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방위비 협상의 막판 변수로 꼽았던 트럼프 대통령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섣불리 잠정 타결 가능성을 거론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주한미군 무급휴직 사태와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지나치게 서두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잠정 타결에 이르렀던 협상이 틀어지며 또다시 미국의 증액 압박이 거세질지 주목된다. 당초 미국은 협상 초기 50억 달러로 무리한 증액을 요구했다가 한 차례 40억 달러로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가까스로 좁혔던 총액 증가율을 10~20% 수준으로 좁혀놓은 상황에서 또다시 진통이 불가피하다. 그간 방위비 인상폭은 전년 대비 2.5~25.7%이었다.

정부는 방위비 협상 타결 전망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은보 대사와 제임스 드하트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는 유선은 물론 화상회의, 서울과 한국에 있는 대사관을 통해 긴밀하게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다시 조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협상이 막바지가 될지, 어떨지는 끝까지 가봐야 한다”며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협상이 다 된 것 같다가 안 되기도 하고, 하루 이틀 될 줄 알았는데 오래 걸리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있는 게 협상이라 끝까지 가봐야 된다”며 “통상 협상할 때 많이 하는 말이 ‘모든 게 합의될 때까지는 아무도 합의된 게 아니다’이다. 협상이 최종까지 가기가 우여곡절도 많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주한미군사령부가 지난 1일부터 한국인 근로자 절반에 대한 무급 휴직을 단행한 만큼 한미는 다시 협상 타결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이 길어질 경우 주한미군의 대비태세 약화와 신종 코로나이바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만큼 한미 모두에게 협상 장기화는 부담 요인”이라며 “협상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결국 한미 둘 중 하나가 물러서 마지막 단계에서 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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