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에 남는 게 있냐고요? 모두가 행복해지죠”

강동웅 기자

입력 2019-12-26 03:00 수정 2019-12-2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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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하는 사회적 기업가 3人
이강백-최희진-황희성 씨


23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난 어스맨 최희진 대표,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이강백 대표, 아름다운커피 황희성 팀장(왼쪽부터)이 전시 중인 작품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들은 공정무역 확산을 위해 저소득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수입해 국내에 유통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공정무역. 가난한 나라의 생산자에게 종전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교역하는 걸 말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불공정 무역구조가 초래한 부의 편중과 환경 파괴, 노동력 착취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싸게 구입해 비싸게 판다’는 기업의 이윤 추구 방침과는 거리가 멀다. 공정무역 확산이 쉽지 않은 이유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국내에서 공정무역의 가치에 공감해 청춘을 바쳐온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기업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AFN·Asia Fairtrade Network)의 이강백 대표(56), 사회적기업 어스맨(Earthman)의 최희진 대표(여·36), 재단법인 아름다운커피의 황희성 팀장(36)이다. 23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사무실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 공정무역은 선택이 아닌 필수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는 설립 당시 전쟁으로 피폐해진 베트남 농촌의 저소득 농가와 파트너십을 맺고 견과류인 캐슈너트를 유통하며 성장했다. 현재 베트남 필리핀 코스타리카 등지에서 건과일 견과류 아라비카커피 등을 수입해 판매 중이다.

공정무역을 시작하기 전 이 대표는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2002년 사회적기업인 ‘아름다운가게’ 사무처장을 맡고 있던 그는 “공정무역을 해보자”는 주변 제안에 손사래를 쳤다. 생산자에게 합리적이면서 비싼 값을 지불하는 대신 자신의 마진을 적게 남기는 방식은 현실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이 대표는 2003년 2월 공정무역이 활성화한 영국 독일 스웨덴 등을 찾아 2주간 기업 실사에 착수했다. 현장에서 본 공정무역은 실현·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였다. 그때부터 이 대표는 공정무역의 가치에 공감하는 기업가를 찾아다녔다. 초기 5억 원가량의 자본금을 마련한 이 대표는 현재 기업 자본금을 두 배 가깝게 성장시켰다.

이 대표는 “공정무역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다. 단순히 저소득 상인들을 돕는 ‘착한 무역’이 아니라 인류의 생사가 달린 ‘생존 무역’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정무역이 없다면 불공정한 값을 받는 저소득 국가들은 자신이 가진 숲, 바다 등 자원을 파괴해 개발할 수밖에 없다. 오염된 지구가 회복 불가능 상태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나도, 남도 행복할 수 있는 무역

최 대표는 2011년 사회적기업인 ‘어스맨’을 설립했다. 흙(Earth)과 사람(Man)의 합성어인 어스맨은 ‘지구사람’을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으로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바른 무역이란 뜻이다. 현재 파키스탄 소작농이 재배한 건과일과 라오스 수공예품을 150여 곳에 유통하고 있다.

과거 최 대표는 ‘무엇이 내 삶을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나’를 줄곧 고민했다고 한다. 2003년 서강대 경영학부에 입학한 그는 미국 교환학생 당시 이타적 형태의 경영모델을 처음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2007년 학부 졸업 후 곧바로 대기업에 취직해 3년간 일하다 돌연 사표를 던졌다. 학부 시절 이론으로 배웠던 공정무역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서다.

최 대표는 2010년부터 인도 라다크와 라오스 보케오 지역에서 공정무역 기업 인턴으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나도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을 검증했다고 한다. 덕분에 최 대표는 공정무역이 소비자에게도 이득이 되는 사업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공정무역도 무역이기 때문에 한쪽만 좋아서는 절대 성립될 수 없다”며 “제품 뒷면에 제조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공정무역 제품은 소비자가 믿고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하나 더 늘려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 “나만 손해 보는 게 아니다”

황 팀장은 2009년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아름다운가게에 입사했다. 아름다운가게는 2002년 설립된 사회적기업으로 다양한 중고물품을 입수해 재탄생시켜 판매한다. 황 팀장은 학부 시절 미국의 자선사업가 재클린 노보그라츠가 쓴 책 ‘블루 스웨터’를 읽고 공정무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책은 전 세계의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선 일회성 기부보다 저소득층이 자생력을 갖도록 경제적 능력을 높이게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타적인 선택을 하면 나만 손해 본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란 걸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공정’이란 키워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이 대표는 “열심히 노력하고 더 애쓴 사람이 더 나은 결과물을 얻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결과가 공평한 세상이 아닌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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