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에 싸였던 인생…산 100km를 달리며 맑아졌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 기자
입력 2024-11-09 12:00 수정 2024-11-09 16:18
서울예대 연기과를 휴학하고 있던 2019년 1월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화이트트레일인제 12km에 출전했다. 그해 3월 열리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출전을 앞두고 훈련삼아 출전했다. 그런데 여자부에서 1시간 20분 37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트레일러닝 첫 도전에 우승까지 한 것이다. 2018년부터 다이어트를 위해 달리기 시작한 회사원 정현성 씨(31)는 지금은 트레일러닝계에서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고 있다.
딸이 열심히 달리자 아버지가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떻냐”고 했다. 2019년 3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처음 42.195km 풀코스에 도전했고, 3시간 26분 51초를 기록해 ‘330(3시간30분 이내 기록)’을 달성했다. 마스터스마라톤계에서 ‘330’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정 씨는 10월 20일 끝난 서울 100K(서울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100km 여자부에서 3위를 했다. 서울 광장을 출발해 인왕산∼북악산∼서울 둘레길(북한산, 도봉산, 불암산, 아차산)∼한강∼청계천을 거쳐 오는 코스에서 18시간 17분 52초를 기록했다.
“100km 첫 도전 때 한 30km 정도 남았는데 뛸 수가 없는 겁니다. 왼쪽 허벅지 장경인대 쪽에 문제가 생겨 걸어야 했죠. 밤이라 헤드 랜턴을 켜고 땅바닥을 보고 걷다 앞을 보니 큰 산이 하나 나오는 겁니다. 갑자기 구토가 시작됐죠. 다시 힘겨운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것에 몸이 더 이상 못 간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조용히 눈을 감고 한동안 쉬었죠. 그리고 다시 출발해 결국 걸어서 완주했습니다. 그 순간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분이 좋았죠.”
산을 달리는 재미에 빠졌다. 산에선 달리는 주로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바짝 긴장해야 한다.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긴장감이 좋았다. 오르막을 오를 땐 천천히 걸으면서 나무와 꽃, 개울, 바위 등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내리막길을 쏜살같이 달리는 재미가 좋았다. 이를 정 씨는 “다운힐을 칠 때 희열을 느낀다”고 표현했다. 산 100km를 달릴 땐 상승고도와 거리를 감안해 체력 안배도 잘해야 한다. 그 묘미도 쏠쏠했다.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올해 들어선 주요 대회에서 입상권에 들었다. 원주트레일러닝 WTR SALOMON GTNS 50km에서 3위(8시간 32분 28초), 제1회 대관령 트레일런 42km 3위(5시간 26분 11초), ROKA 트레일러닝 10.1마일(약 16.3km) 2위(2시간 8분 40초), 그리고 서울 100K 100km에서 3위를 한 것이다.
“올 서울 100K때 좀 아쉬웠어요. 1시간은 더 줄일 수 있었는데…. 근육 과사용으로 양쪽 햄스트링에 이상이 왔고 왼쪽 오금에도 통증이 왔어요. 미리 테이핑도 했는데 소용이 없었죠. 결국 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어렸을 때부터의 꿈인 연기자에 대한 목표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그는 “아직 연기자 관련 미래에 낀 안개가 자욱하지만 트레일러닝을 하면서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자신감을 쌓았다. 내 인생에서도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정 씨는 트레일러닝 대회가 있을 땐 매일 새벽 회복의 개념으로 가볍게 조깅으로 10에서 15km를 달린다. 대회가 없을 땐 20~30km 장거리를 주기적으로 달리며 400m 인터벌트레이닝 등 스피드 지구력을 키우는 훈련을 한다.
인터벌트레이닝(Interval Training)은 일정 강도의 운동과 그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주는 훈련 방법으로 주로 엘리트 선수들의 심폐지구력과 스피드를 강화할 때 쓰인다. 예를 들어 100m를 자기 최고 기록의 90%로 달린 뒤 조깅으로 돌아와 다시 100m를 같은 강도로 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이다. 인터벌트레이닝 그 자체로 에너지 소비가 높은데 장시간 하면 그 효과가 배가된다. 전문가들은 1시간 동안 10km를 달리는 것보다 100m 인터벌트레이닝을 10∼20회 하는 게 심폐지구력 향상과 에너지 소비엔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400m 인터벌 트레이닝도 400m를 90%로 달리고 천천히 조깅한 뒤 다시 400m를 반복적으로 달리는 훈련이다.
“로드는 심장이 터질 정도로 달립니다. 쭉 뻗은 도로를 아무 장애없이 질주할 수 있죠. 어떨 때는 1초를 더 단축하려고 침을 질질 흘리며 피니시라인을 향해 달립니다. 산 100km는 그렇게 달리면 힘들죠. 오르막 내리막 적절히 안배해야 합니다. 계속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달려야 하죠. 그 재미를 말로 형용할 수가 없어요. 마라톤은 스피드를 즐기는 재미가 있고, 트레일러닝 100km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가자’ ‘아니 저렇게 가자’ 시나리오를 쓰듯 계속 머릿속에서 썼다 지웠다를 하면서 달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정 씨는 ‘몸을 너무 혹사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내 삶의 활력소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달릴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정현성 씨가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달리고 있다. 2018년부터 달리기 시작한 그는 마라톤 풀코스 42.195km는 물론이고 트레일러닝 100km도 거뜬히 완주하는 철녀로 거듭났다. 정현성 씨 제공.
“제가 대학 다닐 때는 뭘 해도 안개 속에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대학에 들어가면 한 고비를 넘었으니 뭔가 보일 줄 알았어요. 근데 전혀 그게 아니더라고요. 노력해도 미래가 확실하지 않았어요. 계속 뭔가 보이지 않는 길을 혼자서 찾아가야 하는…. 그냥 앞이 깜깜하다는 느낌이었죠. 답답했어요. 그런데 달리기는 노력한 만큼 결실이 나오는 겁니다. 거리가 정해져 있고, 어떤 거리든 포기하지 않고 달리면 완주할 수 있죠.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달리면서 제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죠.”딸이 열심히 달리자 아버지가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떻냐”고 했다. 2019년 3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처음 42.195km 풀코스에 도전했고, 3시간 26분 51초를 기록해 ‘330(3시간30분 이내 기록)’을 달성했다. 마스터스마라톤계에서 ‘330’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정 씨는 10월 20일 끝난 서울 100K(서울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100km 여자부에서 3위를 했다. 서울 광장을 출발해 인왕산∼북악산∼서울 둘레길(북한산, 도봉산, 불암산, 아차산)∼한강∼청계천을 거쳐 오는 코스에서 18시간 17분 52초를 기록했다.
정현성 씨가 서울 100K(서울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100km 여자부에서 3위로 들어오고 있다. 서울 100K 사무국 제공.
정 씨는 2019년 5월 TNF100 코리아 트레일러닝대회에서 100km에 처음 도전해 24시간 만에 완주했다.“100km 첫 도전 때 한 30km 정도 남았는데 뛸 수가 없는 겁니다. 왼쪽 허벅지 장경인대 쪽에 문제가 생겨 걸어야 했죠. 밤이라 헤드 랜턴을 켜고 땅바닥을 보고 걷다 앞을 보니 큰 산이 하나 나오는 겁니다. 갑자기 구토가 시작됐죠. 다시 힘겨운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것에 몸이 더 이상 못 간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조용히 눈을 감고 한동안 쉬었죠. 그리고 다시 출발해 결국 걸어서 완주했습니다. 그 순간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분이 좋았죠.”
산을 달리는 재미에 빠졌다. 산에선 달리는 주로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바짝 긴장해야 한다.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긴장감이 좋았다. 오르막을 오를 땐 천천히 걸으면서 나무와 꽃, 개울, 바위 등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내리막길을 쏜살같이 달리는 재미가 좋았다. 이를 정 씨는 “다운힐을 칠 때 희열을 느낀다”고 표현했다. 산 100km를 달릴 땐 상승고도와 거리를 감안해 체력 안배도 잘해야 한다. 그 묘미도 쏠쏠했다.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현성 씨가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산길을 달리고 있다. 정현성 씨 제공.
2019년 10월 트랜스제주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다시 100km를 완주했다. 트레일러닝에 맛을 들일 때쯤인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하는 바람에 대회가 사라져 혼자 달려야 했다. 대회는 없어졌지만 산이나 도로를 달리는 것에는 제한은 없었다. 2022년 대회가 다시 열리기 시작해 출전하기 시작했다. 10~50km를 달리면서 트랜스 제주 100km를 지난해까지 2회 연속 완주했다. 트레일러닝 100km 최고 기록은 지난해 세운 16시간 24분 18초.올해 들어선 주요 대회에서 입상권에 들었다. 원주트레일러닝 WTR SALOMON GTNS 50km에서 3위(8시간 32분 28초), 제1회 대관령 트레일런 42km 3위(5시간 26분 11초), ROKA 트레일러닝 10.1마일(약 16.3km) 2위(2시간 8분 40초), 그리고 서울 100K 100km에서 3위를 한 것이다.
“올 서울 100K때 좀 아쉬웠어요. 1시간은 더 줄일 수 있었는데…. 근육 과사용으로 양쪽 햄스트링에 이상이 왔고 왼쪽 오금에도 통증이 왔어요. 미리 테이핑도 했는데 소용이 없었죠. 결국 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정현성 씨가 10월 20일 끝난 서울 100K(서울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100km에 출전했을 때 모습. 정현성 씨 제공.
정 씨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대회인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에 출전하는 것이다. UTMB는 유럽 알프스 산맥 170km를 달리는 트레일러닝 대회다. 참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전 세계 트레일러너들은 영광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참가 자격을 획득하기 어렵다. 11월 16일 말레이시아 울트라트레일 UTMB에 출전하는 이유다. UTMB 출전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러닝 스톤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트랜스 제주에 3회 출전한 이유도 UTMB 러닝 스톤을 주기 때문이다. 러닝 스톤을 모은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추첨에서 낙점을 받아야 한다. 많이 모으면 당첨 확률이 높다.어렸을 때부터의 꿈인 연기자에 대한 목표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그는 “아직 연기자 관련 미래에 낀 안개가 자욱하지만 트레일러닝을 하면서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자신감을 쌓았다. 내 인생에서도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정현성 씨가 산길을 달리고 있다. 정현성 씨 제공.
매일 새벽 달리는 정 씨는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체중을 이용하는 보디웨이트트레이닝을 수시로 한다. 스쾃과 런지, 푸시업, 플랭크 등 코어 근육을 키운다. 마라톤 풀코스 개인 최고 기록 단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개인 최고 기록이 올 3월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21분 18초인데 ‘싱글(3시간10분 이내)’ 달성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그는 “결국 산도 도로를 잘 뛰어야 잘 달린다. 도로에서 스피드를 키운다”고 했다. 마라톤 최종 목표는 ‘서브 스리(3시간 이내)’ 달성이다. 정 씨는 트레일러닝 대회가 있을 땐 매일 새벽 회복의 개념으로 가볍게 조깅으로 10에서 15km를 달린다. 대회가 없을 땐 20~30km 장거리를 주기적으로 달리며 400m 인터벌트레이닝 등 스피드 지구력을 키우는 훈련을 한다.
인터벌트레이닝(Interval Training)은 일정 강도의 운동과 그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주는 훈련 방법으로 주로 엘리트 선수들의 심폐지구력과 스피드를 강화할 때 쓰인다. 예를 들어 100m를 자기 최고 기록의 90%로 달린 뒤 조깅으로 돌아와 다시 100m를 같은 강도로 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이다. 인터벌트레이닝 그 자체로 에너지 소비가 높은데 장시간 하면 그 효과가 배가된다. 전문가들은 1시간 동안 10km를 달리는 것보다 100m 인터벌트레이닝을 10∼20회 하는 게 심폐지구력 향상과 에너지 소비엔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400m 인터벌 트레이닝도 400m를 90%로 달리고 천천히 조깅한 뒤 다시 400m를 반복적으로 달리는 훈련이다.
정현성 씨가 산을 달리고 있다. 정현성 씨 제공.
로드와 산, 어디가 더 좋을까?“로드는 심장이 터질 정도로 달립니다. 쭉 뻗은 도로를 아무 장애없이 질주할 수 있죠. 어떨 때는 1초를 더 단축하려고 침을 질질 흘리며 피니시라인을 향해 달립니다. 산 100km는 그렇게 달리면 힘들죠. 오르막 내리막 적절히 안배해야 합니다. 계속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달려야 하죠. 그 재미를 말로 형용할 수가 없어요. 마라톤은 스피드를 즐기는 재미가 있고, 트레일러닝 100km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가자’ ‘아니 저렇게 가자’ 시나리오를 쓰듯 계속 머릿속에서 썼다 지웠다를 하면서 달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정 씨는 ‘몸을 너무 혹사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내 삶의 활력소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달릴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정현성 씨가 헤드 랜턴을 쓰고 밤길을 달리고 있다. 정현성 씨 제공.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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