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출범하면 한국 경제, 미국·중국 양쪽 다 활로 막혀

이슬아 주간동아 기자

입력 2024-11-03 09:04 수정 2024-11-0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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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보호무역주의’에 대미·대중 수출 이중고 우려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은 정말 나쁜 거래다. 우리는 단 10센트(의 보조금)도 들일 필요가 없었다. 미국이 수입하는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그들(한국·대만 반도체 기업)로 하여금 미국에 들어와 아무런 대가 없이 공장을 짓게 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최근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한 말이다.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대대적 관세 인상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예고해온 트럼프가 반도체 관련 관세 구상을 재확인해준 것이다. ‘보편 관세 20%, 중국 제품 관세 60%’를 골자로 하는 트럼프표 보호무역주의가 현실화할 경우 수출 비중이 큰 한국은 상당한 타격을 입는 나라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미 수출 관세 폭탄은 물론, 중국 경기침체에 따른 반사적 불이익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11월 대선에서 당선할 경우 ‘보편 관세 20%, 중국 제품 관세 60%’를 핵심으로 하는 고율 관세정책이 추진될 전망이다. [뉴시스]


반도체 칩스법·자동차 IRA ‘위태위태’


트럼프 고율 관세정책의 영향권에 있는 대표적인 산업 분야는 반도체다(표 참조). 그간 트럼프는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산업을 훔쳐 갔다”고 언급하며 반도체에 관세 적용 의지를 드러내왔다. 기존에 반도체는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무관세로 수출입됐으나, 이를 깰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또 트럼프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추진된 칩스법에 대해 축소 내지 폐지를 시사하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인디애나주 패키징 공장을 설립하며 칩스법에 의거해 64억 달러(약 8조8000억 원), 4억5000만 달러(약 6210억 원) 보조금을 받기로 했는데, 그 내용에 변동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 동맹국인 한국에 동참을 요구하면 대중 수출 또한 막히게 된다.

‌자동차, 이차전지,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진 상태다. 한국 완성차 수출국 순위에서 미국은 압도적 비중(지난해 기준 45.4%)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현대차 등 한국 자동차 기업의 경쟁력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이전 재임 기간에도 무역확장법 제232조를 발동해 ‘자동차 관세 25%’ 적용을 검토한 바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를 공언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에는 상당한 위협이다. 전기차, 이차전지, 태양광 등 산업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이 사라지면 이에 대응해 미국에 대거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전기차 현대차·기아, 이차전지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태양광 한화큐셀 등)이 피해를 볼 수 있어서다. 다만 한국 기업 공장들이 몰려 있는 조지아주는 공화당 우세 지역인 데다, 이미 의회에서 최종 책정한 IRA 예산을 전면 환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고 있는 화장품 산업도 타격을 받을 공산이 크다. 최근 화장품은 기존 최대 시장이던 중국 대신 미국에서 두드러진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K-뷰티’ 열풍을 타고 중소 화장품 브랜드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국내 화장품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관세 정책 변화를 리스크 중 하나로 설정하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아직 직접 대응에 나설 단계는 아니지만 추가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인력, 마케팅비 효율화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중국에 대한 미국의 통상 압박이 심화하면 중국 내수가 부진해지면서 화장품 등 소비재 수요가 줄어든다. 미국과 함께 중국을 주요 축으로 하는 화장품 산업이 이중 타격을 받는 구조인 것이다. 7월 트럼프 피습 사건 직후 증시에 ‘트럼프 트레이드’가 나타났을 때 화장품주 주가가 하락한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 60% 관세 한국에도 화살 될 것”

국내 전문가들은 “트럼프 관세 인상 정책이 미·중 수출을 주축으로 하는 한국 경제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산업연구원(KIET) 한 관계자는 “(트럼프의) 보편 관세로 대미 수출이 위협받는 것은 물론, 미국의 중국 때리기도 한국에 화살로 돌아올 것”이라면서 “중국 내수가 침체되면 중국을 주요 수출국으로 삼는 원자재, 부품 등 여러 산업이 불황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반도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근 턱밑까지 추격해온 중국 반도체 기업을 따돌리는 등 일부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면서도 “한국 교역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 그 결과가 상쇄돼 한국에는 결코 득이 아닌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63호에 실렸습니다》


이슬아 주간동아 기자 is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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