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호경]‘청포자’의 나비효과… 주택정책 자금이 말라간다

김호경 산업2부 기자

입력 2024-10-28 23:12 수정 2024-11-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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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경 산업2부 기자

180만5039명. 최근 2년 3개월간 청약통장 가입자가 줄어든 숫자다. 전체 가입자 수는 2022년 6월 정점(2859만9279명) 이후 계속 줄어 지난달 2679만4240명까지 내려왔다. 청약통장을 해지하는 ‘청포자’(청약포기자)가 신규 가입자를 계속 웃돌고 있어서다.

청포자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건 약 5년 전이다. 집값이 오르면서 청약 시장이 달아오르던 무렵이었다. 당시 청포자 대다수는 납부 횟수와 납입액이 적어 청약가점이 낮은 20, 30대였다. 그런데 요즘엔 40, 50대 청포자도 적지 않다. 내 집 마련의 ‘지름길’이었던 청약통장의 쓸모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인식이 나이를 불문하고 확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주된 원인은 높아진 청약 문턱이다. 올해 1∼10월 분양한 서울 민영주택 일반공급 당첨 최저가점(커트라인)은 무려 62.3점. 4인 가족이 청약통장 가입 기간(15년 이상) 만점을 받고 12년 이상 무주택으로 버텨야 얻을 수 있는 점수다. 서울 강남권의 당첨 커트라인은 4인 가족 최고점(69점)보다 높은 72점이다. 부부가 5인 가족이 되려면 아이를 셋 낳거나, 아이 하나에 부모를 모시고 살거나, 아니면 위장전입으로 가족 수를 불리거나다.

치솟은 분양가도 청포자가 나오는 배경 중 하나다. 서울 민영주택 전용면적 84㎡ 평균 분양가는 지난달 기준 15억 원을 넘었다. 서민들로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도 감당하기 버거운 금액이다. 정부가 청년을 위한 특별공급 비중을 늘린 탓에 일반공급 기회가 줄면서 중장년층 청포자가 늘었다는 분석도 있다.

청약 포기는 개개인에게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선택을 하는 개인이 늘면 주택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데 있다. 공공임대와 공공분양 주택을 짓는 자금과 주택구입 자금(디딤돌), 임차보증금(버팀목) 등 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저리 대출은 모두 주택도시기금에서 나온다. 기금 재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청약통장 예치액이다.

청약 가입자 감소로 지난해 청약 저축액은 14조9607억 원, 2021년의 65% 수준으로 줄었다. 반면 신생아 특례 대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사업장 지원 등 기금을 쓸 곳은 크게 늘었다. 2021년 말 48조4511억 원이던 기금 여유자금은 올해 6월 말 기준 15조8073억 원으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기금 고갈을 우려할 정도로 가파른 감소 폭이다.

기금 감소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청약 이탈을 막기 위해 청약 금리와 월납입 인정액을 인상했는데, 그 이후로도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계속 줄고 있다. 디딤돌 대출 규제 카드는 축소했다 이를 유보하고, 또 며칠 만에 축소 방침을 재확인하는 오락가락 행보로 실수요자의 반발만 사고 있다.

곳간이 비어간다면 결국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지출은 과감히 줄이고 서민 지원도 형편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청약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에도 나서야 한다. 국민들에게 그 필요성을 설명하고, 고통 분담을 설득하는 건 정부의 몫이다.



김호경 산업2부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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