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 준비 청년들이 홀로 서지 못한 걸 의지 부족으로 치부하지 않길”

이진구 기자

입력 2024-10-28 14:46 수정 2024-10-2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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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중 목사 인터뷰

유제중 목사는 “자립 준비 청년들은 경험이나 정서적인 면이 매우 취약한, 나이만 성인인 청년들”이라며 “물질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이들이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늘 이야기하고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회적 관심이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기자님이 보육원에서만 살다가 18살에 사회에 나왔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요?”

21일 서울 광진구 화평교회에서 만난 유제중 목사(46·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는 10여 년이 넘게 ‘자립 준비 청년’들을 돕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반문했다. 자립 준비 청년은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 청소년 쉼터 등에 있다가 보호가 종료되는 18세에 사회로 나오는 청소년들. 그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약간의 자립 지원금과 생활비, 숙소 등의 지원을 받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들이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가족 같은 공동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부목사로 10여 년간 사역하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사임한 뒤 2019년 화평교회를 개척했다.

유 목사는 “어릴 적부터 보육시설에 살았다고 하면 자립심, 독립심, 자기 의지 등이 강할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반 가정에서는 아이가 늦잠을 자거나 학교에 가기 싫어 투정을 부리면 부모가 달래고 야단도 쳐서 억지로라도 보내면서 ‘힘들어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의식이 형성되지만 보육시설에서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 10여 년 넘게 하기 싫고 힘든 것은 아예 시도하지 않거나 중도에 그만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시간을 살다 보니 의지를 갖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유 목사는 “그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가도 중간에 그만두거나 취업을 해도 한 달도 안 돼 나오기도 한다”며 “회사 면접에 보내기 위해 전날 함께 잔 적도 있다”고 말했다.

유제중 목사는 “자립 준비 청년들은 경험이나 정서적인 면이 매우 취약한, 나이만 성인인 청년들”이라며 “물질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이들이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늘 이야기하고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회적 관심이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워낙 오랜 세월을 의지력이 약하게 살다 보니 면접 날 아침에 ‘가기 싫어’란 생각이 들면 안 가는 거죠. ‘내가 되겠어’란 생각도 있고요. 몇 번을 그러기에 아예 전날 함께 자고 아침에 깨워서 보냈어요. 그 친구는 다행히 자립에 성공했는데, 한 번 성취감을 느껴보더니 지금은 다른 자립 준비 청년들을 돕는 게 꿈이 됐습니다.”

유 목사는 광진구 화평교회(반석 성전)를 포함해 서울, 경기 등에 12곳의 교회를 개척했고 2곳을 더 준비 중이다. 신자는 교회마다 약 40~50여 명인데, 이 중 자립 준비 청년은 7~10명 정도씩이라고 한다. 그는 “자립 준비 청년들뿐만 아니라 노숙자 등 소외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는 가족 같은 공동체”라며 “신자가 더 많으면 도움이 되는 면도 있겠지만 가족처럼 지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작은 교회를 늘리는 방향으로 사역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목사는 성인이 됐음에도 자립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의지 부족 탓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20kg 역기를 들라고 하면 주저앉겠지요. 일반 가정에서는 부모와 형제가 함께 들어주고 격려하며 드는 힘을 키워 가지만 이 아이들은 그런 기회가 거의 없어요. 주저앉은 기억만 갖고 사회에 나온 아이들에게 ‘성인이 왜 그렇게 의지력이 없냐’고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유 목사는 “홀로서기가 쉽지 않다 보니 이들 중에는 고시원 등에서 은둔하거나 나쁜 길로 빠지는 청년들이 많다”며 “물질적 지원 외에도 자립하면서 부닥치는 삶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회적 프로그램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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