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유리창 뿌옇게 변한 까닭은… ‘담배 광고 가리기’

이지운 기자

입력 2022-08-11 03:00 수정 2022-08-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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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이제는 OUT!]〈7〉
옥외 담배광고 금지 조항 논란되자… 내부 광고 외부서 안 보이게 처리
카운터엔 현란한 담배 광고 여전… 아동-청소년 보호 위한 취지 무색
해외 111개국은 소매점 광고 금지


10일 서울 영등포구 한 편의점의 출입문과 유리창에 반투명 시트지가 붙어있다. 시트지 너머로 담배 광고와 진열장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담배 판매 편의점 1곳엔 평균 33.9개의 담배 광고가 게시됐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집이나 직장 근처 자주 찾는 편의점의 출입문을 떠올려 보자. 묵직한 통유리로 된 문이 생각날 것이다. 출입문뿐만 아니라 외부와 맞닿은 벽 대부분이 통유리로 돼 있어 멀리서도 편의점 내부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심야 시간대에도 대부분 혼자 근무해 각종 범죄의 타깃이 되기 쉬운 편의점 점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들여다보면 맑고 투명한 유리가 아닌 경우가 많다. 통유리 너머로 본 편의점 내부는 ‘블러’ 처리가 된 영상처럼 뿌옇게 형체만 보인다. 시선이 닿는 높이에 반투명 시트지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전국 5만여 곳 편의점 대부분의 통유리엔 이런 시트지가 붙어 있다. 이유는 편의점을 점령한 ‘담배 광고’ 때문이다.
○ 매장 안에선 합법, 밖에선 불법?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4항에 따르면 담배를 판매하는 가게에서 담배 광고를 하는 건 합법이다. 그러나 담배 광고가 가게 밖에서 보이면 불법이다. 이 조항은 2011년 신설됐지만 당시엔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2019년 감사원이 “편의점 담배 광고가 건물 밖에서도 보이는데 별다른 조치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에 시중 편의점들은 자구책으로 지난해 1월부터 밖에서 가게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통유리에 반투명 시트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건물 밖 담배 광고 금지는 아동·청소년과 비흡연자들을 담배 광고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지만 실효성 없는 ‘눈 가리고 아웅’식 규제라는 지적이 많다. 편의점은 미성년자도 수시로 드나드는 공간인 만큼 밖에서만 광고가 보이지 않는 정도론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담배를 판매하는 편의점 1곳에는 광고판과 모형 담배, 포스터 등 다양한 담배 광고가 평균 33.9개(2018년 기준)씩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담배 광고 10개 중 7개(68.2%)는 껌, 사탕, 초콜릿 등 아동·청소년이 선호하는 제품 반경 50cm 이내에 게재됐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배모 씨(41)는 “아이가 하루에도 한두 번씩 편의점에 가는데, 계산대 앞에 설 때마다 아이는 알록달록한 담배 광고에 시선을 빼앗기기 일쑤”라고 했다.

○ 담배 광고, 타깃은 청소년
“오늘날의 10대는 미래의 잠재적 단골 고객이다(Today’s teenage is tomorrow’s potential regular customer).”

이 문장은 한 미국 기업이 1981년 작성한 내부 마케팅 전략 보고서의 일부다. 언뜻 보기에 당연한 소리다. 가치관을 형성하는 시기인 청소년에게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 두면 이들이 성인이 되어 구매력을 가지게 된 후 ‘충성 고객’이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정체가 담배 ‘말버러’를 만드는 필립모리스사라는 것을 알고 보면 이 문장은 섬뜩하다. 같은 보고서에서 이 회사는 “10대의 흡연 패턴과 태도를 최대한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담배 회사들의 마케팅 전략도 교묘하게 청소년을 노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최근 담배 광고는 청소년 사이에 유행하는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을 적극 활용해 기성세대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조차 어렵다”며 “담배 광고의 타깃이 여전히 청소년이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 86개국은 담배 진열조차 금지
호주를 포함해 전 세계 86개국에선 법적으로 소매점에서 담배를 진열할 수 없게 돼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제공
금연 정책의 주무 부처인 복지부 역시 옥외 광고만 금지하는 현재의 담배 광고 규제에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담배 광고의 외부 노출 금지에서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소매점에서의 담배 진열과 광고 자체를 금지하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소매점 내외 모두 담배 광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전 세계 111개국에서 소매점 내 담배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과반인 55.3%(38개국 중 21개국)가 소매점 담배 광고를 금지한 상태다.

광고 금지를 넘어 아예 소매점에서 담배를 진열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영국과 호주 프랑스 등 86개국의 소매점에선 담배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 둔다. 담배 종류와 가격만 구매를 원하는 손님에게 보여준다. 점원 등 뒤에 놓인 진열장에 담뱃갑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광고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광고를 없애더라도 담뱃갑이 버젓이 전시돼 있다면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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