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회식 재개에 하루 120분 ‘증발’… 시간 가계부 써 관리를

김소민 기자

입력 2022-05-17 03:00 수정 2022-05-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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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일상, 베터 노멀]〈2〉 ‘잃어버린 2시간’을 찾아서
재택근무 등 해제로 ‘시간부족’ 다시 늘어
성인남녀 92% “하루 2시간씩 사라질 것”
전문가 “시간 빈곤은 스트레스-우울증 유발”



#1. 직장인 김성우(가명·29) 씨는 경기 수원 집에서 서울 시청역 사무실까지 왕복 3시간을 지하철로 통근한다. 최근 2년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재택근무를 하며 저녁에 집 근처에서 풋살을 하고 영어 공부까지 했지만 이젠 모두 언감생심이 됐다. 출퇴근 지옥철을 서서 가다 보니 휴대전화 영상을 보며 시간을 대충 때운다. 그는 “이동시간이 길어지니 일이 쌓이고, 집에까지 일을 갖고 가서 한 뒤 다음 날 좀비처럼 출근한다”며 씁쓸해했다.

#2. 워킹맘 김모 씨(40)는 스스로를 ‘시간 거지’라 칭한다. 공과금이나 학원비 납부를 깜빡하기 일쑤고 아이들 준비물 챙길 시간이 없어 늘 허덕인다. 그는 “바쁘게 사는데도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기분”이라며 “그나마 일주일에 2차례 했던 재택근무가 사라지면 어떻게 감당할지 상상이 안 간다”고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시간 빈곤(time poverty)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무실 출퇴근은 물론이고 각종 회의와 모임 등이 재개되면서 한국인들의 만성적인 시간 부족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빠듯하다고 느낄수록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하는 등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시간낭비를 초래하는 습관이나 관계를 정리하면서 의도적으로 자유시간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 ‘시간 빈곤’으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
16일 동아일보와 SM C&C 설문 플랫폼 ‘틸리언 프로’가 20∼60대 남녀 156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92%(1448명)가 일상 회복으로 인해 시간이 부족해질 것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예상한 ‘잃어버린 시간’은 하루 평균 120.1분에 달했다. 이는 응답자들이 분 단위로 입력한 일일 증발 시간의 평균값을 낸 수치다. 출퇴근, 각종 회의 등 대면(對面) 활동이 본격 재개되면서 주당 10시간 이상은 족히 사라질 것으로 본 셈이다.

이들이 일상 회복 단계에서 가장 염려하는 것 역시 시간과 관련된 것이었다. 응답자들은 일상 회복으로 가장 걱정되는 부문에 대해 잦은 모임이나 회식으로 인한 피로감(36.1%)과 출퇴근 전쟁(19.0%), 자기계발이나 여유시간 감소(15.8%) 등을 들었다.

한국인의 시간 부족은 만성적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44%가 평소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 중 9%는 매우 부족하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했던 시간은 대면 활동 재개로 인해 하루 2시간 더 증발하게 됐다.

이 같은 시간 빈곤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유발한다. 미국 켄트주립대 수전 록스버러 교수가 2004년 7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시간 압박(time pressure)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가 높았다.
○시간 가계부로 시간 관리 현황 돌아보기

전문가들은 잃어버린 2시간을 찾기 위해서는 무작정 시간 부족에 조급증을 내기보다 먼저 시간 관리 현황을 돌아보라고 조언한다. ‘버려지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많은 이들은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 시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철저히 계획한다”는 응답은 7%에 불과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급증한 비대면·디지털 활동은 시간 빈곤을 촉진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평소 유튜브, 넷플릭스, TV 시청(38.7%),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터넷 검색(31.1%) 순으로 시간을 낭비한다고 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시간을 주제로 연구해온 애슐리 월런스 교수는 어떤 일에 주로 시간을 썼는지 ‘시간 가계부’를 기록해 보라고 권한다. 무심코 빠져든 쓸데없는 활동을 걸러내기만 해도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할 수 있다. 방해받지 않는 이른 아침에 자신만의 자유시간을 확보하는 ‘미러클 모닝’도 해볼 만하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됐던 황모 씨(38)는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마케팅 등을 시작하며 ‘제2의 길’을 찾았다. 그는 “육아로 내 시간(me-time)이 전혀 없다고 여겼는데 또 다른 나를 찾게 됐다”고 했다.
○ NFT 정하고 우선순위 집중하라



드라마 ‘카이스트’의 모델로 유명한 이광형 KAIST 총장(68)은 NFT에 집중하는 것을 시간관리 비법으로 꼽는다. 여기서 NFT는 ‘대체 불가능한 업무(Non-Fungible Task)’를 뜻한다. 이 총장은 “비전에 맞는 일을 최우선으로 선택하고 나머진 다 잊어버리라”고 말했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해두면 시간에 쫓기는 일이 결코 없다.

시간 관리 기법의 고전인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는 중요도와 시급함을 기준으로 일을 분류한 뒤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우선순위의 최상단에 두라고 조언한다. 가족과의 관계, 건강 등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기 때문에 전화나 e메일 회신, 밀려드는 회의 등 긴급한 일에 떠밀려 놓치기 쉽다.

가치 있는 일을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계속 미룰 경우 시간 부족 스트레스는 더 극심해진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매일 오후 6시 반을 가족과의 저녁식사 시간으로 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도 가족과 저녁을 위해 오후 5시 반 회사를 떠났다.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중요한 일을 택하는 게 시간 관리의 고수”라며 “바둑에서도 하수는 ‘급한 곳’을 막지만 고수는 ‘중요한 곳’에 둔다”고 말했다.
○자유시간 따로 계획하고 ‘NO’라고 외치기
전문가들은 일정이 빠듯할수록 오히려 자유시간을 철저히 계획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유시간을 따로 계획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 연구에 따르면 백만장자들은 하루 중 적극적인 여가 활동에 투입하는 시간이 보통 사람보다 30분 더 많았다. 텔레비전 시청, 아무것도 안 하기 등 수동적 여가 활동에 투입한 시간은 40분 적었다. 여가조차 계획해서 의미 있는 시간(quality time)을 보내며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불필요한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도 좋다. 각종 디지털 기기의 개입으로 시간이 파편화되면 집중력이 흐려지면서 더 많은 시간이 사라진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여러 푸시 알림 등으로 인해 모니터 화면을 하루 평균 566번 전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림을 확인한 후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는 데만 하루 평균 25분 26초가 들었다.

예상치 못한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선 거절하는 노하우를 기르는 것도 필요하다. 운동하기로 마음먹은 날이라면 다른 사람이 ‘밥 먹자’ 할 때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거절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쉬운 거절부터 연습해 거절해도 괜찮다는 걸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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