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 ‘최고예우’… ‘인왕산’ 동영상 만들고, 전시名 살리고

손효주 기자

입력 2021-07-26 03:00 수정 2021-07-2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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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박 ‘세기의 전시’ 비하인드 스토리
겸재 그림 그릴 때 ‘장마상황’ 고려, 비 오는 날과 비 갠 직후 풍경 담아
‘인왕제색도’ 가장 효과적으로 소개… 삼성 문화기획전, 국민자긍심 고취
李회장 업적 기리며 전시명 반영… 다양한 유물 전시 위해 리모델링도


전시장 입구의 초대형 TV를 통해 재생되고 있는 ‘인왕산을 거닐다’ 영상.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옥 처마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마당은 빗물로 출렁인다. 기세 좋던 빗줄기가 점차 잦아들고, 인왕산은 흰 구름을 드리운 채 자태를 드러낸다. 치마바위, 코끼리바위 등 인왕산 구석구석은 물을 머금었다. 19일부터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국박) 서화실 입구의 초대형 TV에 흐르는 영상이다. 관람객들이 전시실에 들어서면 ‘인왕산을 거닐다’라는 제목의 이 영상부터 보게 된다. TV 앞 나무 의자에 앉아 해금 연주곡을 배경으로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를 그릴 무렵 겸재 정선(1676∼1759)과 같은 시선으로 조선시대 인왕산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국박 관계자들은 5분 10초 분량의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올 5월 말∼6월 초 나흘에 걸쳐 인왕산을 촬영했다. 겸재가 인왕제색도를 그린 ‘1751년 윤 5월 하순(음력)’에는 5일 넘게 장맛비가 이어졌다. 그는 비가 그친 직후 물기를 머금은 인왕산 풍경에 자신이 평생 지켜본 산의 느낌을 가미해 인왕제색도를 그렸다. 이에 따라 국박은 비 오는 날과 비가 갠 직후의 인왕산을 각각 카메라에 담았다. 이재호 국박 학예연구사는 “이건희 컬렉션 대표작인 인왕제색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람객에게 소개하는 방안을 고심한 결과물”이라며 “그림 속 인왕산이 우리 곁의 뒷산이라는 사실을 보여줘 작품에 빠져들도록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상이 재생되는 TV는 삼성이 대여해 줬다. 당초 국박은 75인치 TV를 구입하려 했지만 영상 제작 소식을 들은 삼성이 흔쾌히 이보다 큰 TV를 무상으로 빌려줬다고 한다.

23일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서 관람객들이 인왕제색도 등을 감상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전시 제목인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에는 기증자에 대한 예우를 담았다. 앞서 삼성문화재단은 호암미술관과 호암갤러리에서 ‘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시리즈 전시를 1995∼1998년 세 차례 열었다. 이 전시에서는 인왕제색도는 물론이고 고려불화 중 가장 큰 수월관음도를 일본에서 빌려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국박 관계자는 “당시 삼성 측 전시는 우리 문화유산의 위대함을 보여줘 국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불러일으킨 전시였다”며 “이건희 회장이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만큼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전시명을 거의 그대로 살렸다”고 말했다.

전무후무한 명품 컬렉션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전시공간을 바꾸는 작업도 관건이었다. 당초 해당 전시실은 서예나 그림 같은 평면 작품을 벽에 걸어 선보이던 공간이었다. 이를 그림은 물론 목가구, 불상까지 다양한 형태의 유물을 전시하는 데 적합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조명을 바꾸고 받침대를 설치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했다.

국박이 통상 전시기획 단계에서 타깃 연령대와 성별을 정하는 작업을 이번에는 진행하지 않은 것도 이례적이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전시인 만큼 이 같은 절차가 필요 없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서 예매는 하늘의 별따기다. 국박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예약만 가능한데 25일 현재 예약 가능한 26일∼다음 달 24일 한 달 치가 모두 매진됐다. 26일 0시가 되면 다음 달 25일 전시 예매가 가능하지만 보통 5초도 되지 않아 예약이 끝난다. 최근 전시실 입구에선 예매를 못한 채 멀리서 찾아와 “전시를 보게 해 달라”며 실랑이를 벌이는 관람객들이 자주 목격된다. 국박 관계자는 “방역지침에 따라야 해 현장에서 사정해도 어떻게 해드릴 방법이 없다. 간혹 예약 취소가 나오는데 이를 노려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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