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계좌 급증…주식 열풍 타고 ‘소년 개미’ 몰려온다

박민우 기자

입력 2021-07-23 03:00 수정 2021-07-23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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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미성년 신규계좌 50만개


경기 안양의 평촌경영고 3학년 김범근 군(18)은 지난해 2월 모아둔 용돈 100만 원을 종잣돈 삼아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학교 주식 투자 동아리인 ‘골든크로스’에도 가입해 주식 용어와 투자 개념 등을 공부했다. 김 군은 매달 말이면 원금에 붙은 수익만큼 환매해 용돈으로 쓰고 있다. 그는 “세계적인 부자들이 주식으로 큰돈을 번 걸 보고 투자를 시작했다. 종목별 차트를 분석해 투자 전략을 짤 정도로 빠져들었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1∼6월) 국내 주요 증권사에 새로 개설된 19세 미만 미성년자 주식 계좌가 50만 개에 육박하며 지난해 한 해 동안 만들어진 신규 계좌를 넘어섰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주식 투자 열풍을 타고 김 군과 같은 이른바 ‘소년개미’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 소년개미 계좌 6개월 새 70% 급증
2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10개 증권사(미래에셋대우 NH투자 한국투자 삼성 KB 키움 대신 유안타증권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의 미성년자 주식 계좌는 총 116만2605개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68만2278개)보다 70.4% 급증한 규모다.

올 상반기에만 이 10개 증권사에서 미성년자 주식 계좌 48만327개가 새로 만들어졌다. 6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 금융사에서 신규 개설된 미성년자 주식 계좌 수(47만5399개·금융감독원 집계)를 넘어선 것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 한 해 신규 미성년자 계좌가 100만 개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식 투자에 뛰어든 소년개미들의 성적표는 기대 이상이었다. NH투자증권이 고객 계좌를 전수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 미성년자 주식 계좌의 수익률은 11.12%로 전 연령층 가운데 가장 높았다. 편득현 NH투자증권 자산관리전략부 부부장은 “다른 세대들이 단타 매매를 많이 하는 반면 미성년자들은 삼성전자, 카카오, 현대차 등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긴 호흡의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자발적 소년개미에 ‘아바타 개미’도 급증

소년개미가 급증한 것은 일찌감치 주식 투자에 눈뜬 10대가 늘어난 데다 어린 자녀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주식을 증여하거나 조기 재테크 교육에 나서는 부모들이 급증한 영향이 크다. 자발적인 소년개미에 더해 부모에 의한 ‘아바타 개미’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직장인 이모 씨(38)도 네 살배기 아들의 첫돌에 아들 이름의 주식 계좌를 만들어 생일과 명절 때마다 주식을 선물하고 있다. 그는 “부모가 자녀의 스펙을 쌓아주는 것처럼 계좌에 우량한 주식을 쌓아주는 것도 경쟁력”이라며 “적당한 시점이 되면 아들이 직접 투자하도록 조기 금융 교육을 할 것”이라고 했다.

증여 수단으로 주식을 택하는 부모도 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 및 금융자산 증여 신고액은 12조87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다만 이 같은 추세가 금융자산 양극화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모의 경제관이나 자산 규모 등에 따라 자녀 세대의 자산 격차도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미성년자 계좌의 대부분이 소액 투자”라면서도 “총자산이 70억 원인 계좌도 있다. 13세 명의의 한 계좌는 올 상반기 14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유동성 장세가 끝나면 상당수 주식 투자자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미성년자들이 투자 위험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금융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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