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킹서비스만 디지털… 은행 업무환경 20년전 수준”

신지환 기자

입력 2021-06-15 03:00 수정 2021-06-1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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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융 빅뱅 '협쟁의 시대'로]〈5〉기업서 모셔온 은행 디지털 사령관들의 조언

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주요 은행의 디지털 부문을 책임지는 임원 3명이 모였다. 왼쪽부터 이상래 NH농협은행 디지털금융부문 부행장, 김혜주 신한은행 마이데이터유닛 상무, 박기은 KB국민은행 테크기술본부 전무. 대형 기술기업 출신인 이들은 “새로운 자극제가 돼 은행의 금융 플랫폼 도약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모바일뱅킹 같은 고객서비스는 디지털 전환이 눈에 띄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니까요. 하지만 디지털 역량의 기반이 되는 내부 조직이나 업무 환경은 여전히 20년 전 구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네이버, KT, 삼성SDS 등 국내 굴지의 기술 기업에서 최근 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디지털 전문가’ 3명이 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였다. 박기은 KB국민은행 테크기술본부 전무(51), 김혜주 신한은행 마이데이터유닛 상무(51), 이상래 NH농협은행 디지털금융부문 부행장(56)이다. 세 사람은 금융권이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하고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핀테크(금융 기술기업)들과 성공적으로 협쟁(Co-opetition·협력과 경쟁)하려면 “새로운 충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고객 접점만 ‘디지털’, 내부는 ‘구시대’

네이버클라우드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박기은 전무는 올 4월, 삼성전자와 KT를 거친 김혜주 상무는 지난해 12월, 삼성SDS 출신인 이상래 부행장은 지난해 7월부터 각 은행에서 디지털 전환을 이끌고 있다.

세 사람은 은행 조직의 관성과 부족한 인력을 디지털 전환의 걸림돌로 꼽았다. 은행권은 순혈주의와 보수적 색채가 강해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고 발 빠르게 변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고객과 맞닿은 뱅킹 서비스는 빠른 속도의 디지털 전환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은행 내부 전산망과 시스템의 효율성은 매우 떨어진다.

▽박=은행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바뀌지 못하다 보니 개발 환경도 자연스럽게 악화됐다. 얼마 전 금융권 전반에서 쓰고 있는 표준 인터페이스(API)를 받아봤는데 최신 수준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상태였다.

▽이=빅테크와 같은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화두지만 아직도 ‘온라인 판매 채널의 추가’ 정도로 생각하는 직원이 많다.

▽김=변화는 무언가 불편하다고 느낄 때 일어나는데 은행엔 외부를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내부 시스템이 낙후됐어도 그걸 불편하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박=은행이 다른 은행 외에는 비교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빅테크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 고객 머무는 ‘생활금융 플랫폼’ 돼야

세 사람은 “나와 같은 경계인이 더 많아져야 디지털 혁신도 빨라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신한은행에 올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경계인으로 살아 달라”는 것이었다. 나처럼 ‘싸가지 없는’ 역할을 맡아가며 새로운 충격과 자극을 줄 사람이 더 필요하다.

▽이=농협은행이 내게 요구한 것도 “우리랑 다른 생각을 하라”는 주문이었다.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은행에 충분하니 새롭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야 한다.

▽박=디지털 인재 중에서도 실제 서비스나 시스템을 개발하는 개발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대부분 외주를 줘 개발해 오던 환경을 바꾸려면 해당 인력부터 보강해야 한다.

이들은 은행권이 집중해야 할 디지털 사업으로 플랫폼을 꼽았다. 각 은행의 핵심 가치를 내세우면서도 많은 사람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생활금융 플랫폼’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금융은 디지털을 만나며 생활이 됐다. 특히 MZ세대는 금융 거래를 목적으로 은행을 찾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생활하는 플랫폼 속에 금융이 있길 바란다.

▽이=플랫폼을 만들 기술도 중요하지만 ‘우리 은행이 가진 것’은 무엇일까 항상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협은행은 농협이 가진 전국 거점과 유통, 물류 분야의 시너지를 통해 ‘생활금융 플랫폼’으로 도약해야 한다.

▽김=미래엔 ‘금융회사’라는 실체는 사라지고 ‘금융’이라는 서비스만 남을 거다. 은행이 서비스 제공자가 될지, 그 서비스를 담아내는 플랫폼 사업자가 될지 기로에 서 있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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