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못구해 그냥 쉬는 청년 42만명… “평생 알바 할까 두려워요”

세종=구특교 기자 , 남건우 기자 , 신지환 기자

입력 2021-01-14 03:00:00 수정 2021-01-14 03: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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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 고용한파]청년들 ‘코로나 취업포기’ 늘어
대기업門 닫히고 中企도 300대 1… 알바 자리마저 50대 1 바늘구멍
수학교사 준비하다 앱 개발직 도전… 코로나 이후 겨냥 진로 바꾸기도


청년층도 실업급여 긴 줄 13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를 타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날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가 1년 전보다 약 22만 명 줄어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 감소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300 대 1.’ 부산에서 취업을 준비 중인 이모 씨(27)는 최근 지원한 한 중소기업의 경쟁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연봉도 적고 회사 인지도도 낮아 지원자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다가 눈높이를 낮췄다고 생각했던 이 씨는 극심한 취업난을 절감했다. 그는 “대기업 취업이 막히니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린 친구들이 많다”며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은 어디든 자리만 나면 조건을 따지기 전에 일단 들어가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취업 문턱을 더 높였다. 극심한 취업난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좌절하는 ‘코로나 취포(취업포기)세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난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남들은 주식이나 부동산에 ‘빚투(빚을 내 투자)’하기 바쁜데 당장 식비조차 벌기 버거운 청년들은 “20대는 취업난에, 노년에는 빈곤에 시달리는 게 아니냐”고 하소연한다.


○ “알바 취업도 하늘의 별따기”

20대 배우 지망생 천모 씨는 요즘 너도나도 뛰어드는 주식과 부동산 얘기를 들으면 ‘다른 세상 이야기’로 들린다. 당장 재산이라곤 현금 30만 원밖에 없고 생활비도 마련하기 어려워 신용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고 있다. 빨리 배우가 돼 돈을 벌고 싶지만 코로나19로 배우 선발 오디션이 줄줄이 취소돼 당분간 꿈을 접었다. 결국 아르바이트를 늘리며 어렵사리 생계를 잇고 있다. ‘평생 알바족’이 될까 두렵다.


천 씨처럼 코로나19에 따른 고용 한파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많다. 13일 통계청이 내놓은 ‘2020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376만3000명으로 전년보다 18만3000명 감소했다.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 이후 22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같은 해 청년층 실업률은 9.0%로 2018년(9.5%) 이후 2년 만에 9%대로 올랐다.


멀쩡하게 일하던 사람도 직장을 잃는 고용 한파 속에서 취업을 아예 포기한 취준생도 늘고 있다. 대구에 사는 대학교 2학년생 박모 씨(20)는 최근 아르바이트를 구하려다 포기했다. 방학 때 카페나 식당에서 알바를 하며 용돈을 벌 생각이었지만 끝내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박 씨는 “공고 자체가 별로 없는 데다 경쟁률도 50 대 1을 넘어 알바 자리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며 “주변에서도 알바를 구한 친구를 보질 못했다”고 했다. 지난해 20대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쉬었음’이라고 답한 인구(41만5000명)는 전년 대비 25.2%(8만4000명) 늘었다. 증가폭이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다.

일부 ‘코로나 취포자’들은 일을 해서 돈을 벌기보다 주식 등에 투자하는 쪽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을 졸업한 박모 씨(27)는 항공사 취업 준비를 포기하고 주식 투자에 몰두하고 있다. 항공업계 고용이 얼어붙으면서 구직이 힘들어져서다. 지난해 3월부터는 고향으로 내려가 빌린 돈 등으로 주식 투자를 하며 쭉 쉬고 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자리 정책도 바뀌어야

코로나19 사태는 업종별 고용시장에 차별적인 충격을 줬다. 일부 청년들은 그나마 사람을 뽑는 직종으로 진로를 선회하고 있다. 수학을 전공한 김모 씨(28)는 수학 교사의 꿈을 접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가 되려 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거래가 늘며 언택트 산업이 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수학교사도 안정적인 직업이지만 비대면 교육이 늘어나 교육산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예산으로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식의 단기 처방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김 씨는 “앱 개발자로 진로를 바꾸면서 공대 학사편입을 준비하고 있는데 학비를 마련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비대면 자영업 일자리 지원에는 700억 원대의 예산만 투입하는 점도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직접 일자리 사업에 약 3조2000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투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작년 하반기부터 대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대학교 4학년생 정모 씨(25·여)는 “정부가 돈을 엄청 집어넣은 계약직 공공 일자리보다 진짜 청년들이 필요한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반복되는 취업난 속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때 구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임금이 낮아지거나 질 낮은 일자리를 갖게 될 확률이 높다고 강조한다. 디지털 기술과 언택트 서비스가 보편화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변화까지 염두에 두고 정부가 청년들의 직업 훈련과 재교육 등에 투자하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경제 위기를 겪을 때 졸업하는 청년들은 일반적으로 취업도, 승진도 늦다”며 “청년을 위한 단기 공공 일자리를 늘리는 것보다 일자리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구특교 kootg@donga.com·남건우 / 신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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