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행위 개선 약속하곤… 기업들 시늉뿐인 ‘자진 시정’

세종=남건우 기자

입력 2020-10-21 03:00 수정 2020-10-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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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이후 허용 9건 살펴보니

불공정 거래, 광고비 떠넘기기 등을 한 기업들이 경쟁당국의 제재를 받는 대신 ‘자진 시정 방안’을 마련해 부당 행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해 놓고서는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약속을 ‘반짝’ 지키다 말거나 시늉만 내는 사례가 많았다.

20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네이버, 이동통신 3사, 남양유업 등이 제출한 9건의 동의 의결안(자진 시정 방안)이 허용됐다.

동의 의결은 공정위 조사 대상 기업이 부당행위 개선, 피해 기업 구제 등을 담은 시정 방안을 제출해 타당하다고 인정받으면 제재를 받지 않고 사건이 종결되는 제도다. 최근 통신사에 광고비 등을 떠넘긴 혐의를 받는 애플코리아도 동의 의결안을 제출해 심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허용된 동의 의결안 9건 중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무제한 요금제를 허위, 과장 광고했던 SKT·KT·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는 2016년 동의 의결안을 내놨다.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했다가 음성·문자요금을 초과 지불한 고객에게 환불을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가입자 3561명에겐 3억3600만 원을 환불한 반면 이미 해지한 고객들은 별도 신청을 해야만 환불을 해줬다. 이 때문에 해지한 고객 2명만 따로 신청해 환불을 받았다.

2014년 거래상 지위 남용 혐의로 동의 의결안을 내놓은 소프트웨어업체 SAP코리아는 공익법인 ‘디코리아’를 세워 빅데이터 인재 양성 사업을 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디코리아의 빅데이터 교육사업 수혜 인원은 2015년부터 매년 500∼1000명을 유지하다 지난해 95명으로 급감했다. 공익법인 설립 초반에는 약속을 지키다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정 방안을 내놓은 기업이 직접 이행 사항을 점검하는 사례도 있었다.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공정위 조사를 받았던 네이버는 2014년 자사 유료 서비스와 경쟁 사업자 콘텐츠를 함께 노출하고, 부당 표시 광고 등을 모니터링하는 공익법인을 설립하겠다는 동의 의결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렇게 설립한 한국인터넷광고재단이 네이버의 동의 의결 이행 상황을 점검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공정위는 한국공정거래조정원과 한국소비자원에 동의 의결 이행 관리를 위탁할 수 있도록 최근 공정거래법을 개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내년 5월부터 기업들이 동의 의결안을 제대로 지키는지 두 기관이 꼼꼼하게 점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세종=남건우 기자 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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