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보살펴 방사한 수리부엉이 안락사시키던 날

노트펫

입력 2020-09-28 16:11 수정 2020-09-2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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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때 구조해 3년2개월 만에 방사했는데..

1년만에 다리 잘린 채 발견.."야생동물과 공존 방법 찾지 못해 뼈아파"

[노트펫] '왜 하필 너에게 이런 일이..'

지난 25일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은 당진에서 덫에 걸려 센터로 온 수리부엉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다 큰 수리부엉이는 새나 노루를 잡을 때 쓰는 창애에 오른쪽 다리가 걸린 상태였다. 다리는 창애에 잘려 나간 채로 덜렁덜렁댔다.

다리 아래쪽에는 금속 가락지가 끼워져 있었다. 센터에서 치료를 마치고 방사하면서 끼워준 개체식별용 추적기였다. '16-595, 2016년 595번째 구조동물..' 가락지에 새겨진 개체식별 번호를 보고는 직원들은 한동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1년 만에 이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구조한 수리부엉이만 해도 500개체가 넘는다. 직원들은 당연히 자연으로 돌려보낸 수리부엉이 모두가 잘 살아남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덫에 걸리거나 해서 다시 센터로 오는 경우도 있다.

'16-595'. 그럼에도 이 번호는 이 녀석이 자연에서 잘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 각별한 개체였음을 의미했다. '16-595'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인연은 4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7월 아직 몸 구석구석 솜털이 남아있을 정도로 어린 수리부엉이가 센터에 들어왔다. 녀석은 어미를 잃은 것으로 판단한 누군가에 의해 구조됐다.

알에서 깨어난 지 약 3~4개월이 지난 어린 수리부엉이들은 어색한 날갯짓을 뽐내며 슬슬 활동 범위를 넓혀간다. 딱 그 시기의 녀석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상이 있거나 어미를 잃었다고 오해받기 십상이란다.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신체적으로도 문제가 없었고, 발견 당시 정황과 주변 환경 역시 구조를 필요로 한다고 확신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선의의 납치'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특히 발견 직후 센터에 왔으면 좋으련만 녀석은 그렇지 못했다. 이 녀석은 구조자가 넣어둔 비좁은 철제 케이지에서 날갯짓을 해대는 통에 단 며칠 만에 깃털이 망가져버렸다. 센터에 왔을 땐 날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주요 날개깃과 꽁지깃 전부가 마모됐고 일부는 꺾이고 부러진 상태였다.

당장 그 깃으로는 비행을 시도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깃갈이를 통해 다시 온전한 상태의 깃을 갖게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모든 새가 깃털 갈이를 하고, 덩치가 작은 참새들은 대부분 1년에 1회 이상 깃털 갈이를 한다. 깃털이 손상되더라도 보호를 받는다면 1년 안에 다시 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수리부엉이는 덩치가 크다보니 참새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다. 보통 1년에 몇 개씩 깃털을 갈아가면서 모든 깃을 교체하게 되는데 제대로 날게 되는 때까지 3년 이상이 걸린다는 의미였다.

센터에서는 그래서 깃털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교체 시간을 줄여보려 했다. 깃 이식을 받은 동물 중 드물게 이식된 깃에 대한 이질감을 심하게 느껴 스스로 뽑아내거나 손상시키는 경우가 발생한다. 바로 이 녀석이 그런 경우였다. 녀석은 깃털을 이식받은 다음날 대부분의 깃을 뜯어냈다.

결국 센터가 취할 수 방법은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깃을 갈아낼 때까지 잘 관리하며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길고 긴 센터 생활이 시작됐고, 2019년 9월 26일 방생 가능 판단이 내려져 황금 들녘 너머 자연으로 날아갔다. 3년 2개월 만이었다.

수명 10~20년의 수리부엉이에게 3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로서도 방생이 불가능한 영구장애 동물을 제외하고 3년이나 보호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였다.

자연으로 돌아가던 순간이 여전히 생생한 이 녀석이 다리가 잘린 채로 들어온 것을 보고 직원들은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녀석은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져 센터에 온 지난 25일 당일 안락사됐다. 3년2개월 간의 재활, 그리고 딱 1년 간의 자연 생활이었다.

"정말 미안했어! 너희가 겪었던 그 사고, 더 이상 겪지 않도록 우리가 더 노력할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곁에서 숨이 꺼져가는 야생동물을 바라보며 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이 나지막이 하는 이야기란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는 "녀석과 함께 보내던 시간과 수고로움이 부질없어지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과연 더 나은 환경과 상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우린 어떤 노력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야생동물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과 가능성이 요원한 지금 어떤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하는지 답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 너무 뼈아프다"고 침통해 했다.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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