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층 돕고 노후안정… 기부연금 도입 절실”

박성민 기자

입력 2020-08-06 03:00 수정 2020-08-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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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단체에 현금-부동산 기부하면 금액 일부 연금처럼 지급받는 제도
자산 75% 부동산 집중 한국에 적합… 젊은층-이혼가구서 선호도 높아
2012년 정부 입법예고 했지만 폐기
자선단체협 “이번 국회선 통과 기대”


서울 송파구에 사는 박모 씨(69·여)는 죽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오래전 결심했다. 두 자녀의 결혼 자금을 마련하느라 남은 재산은 집 한 채와 소액의 예·적금이 전부. 박 씨의 고민은 집을 기부할 경우 노후가 불안할 수 있다는 것. 100만 원도 안 되는 연금 수입만으론 안정적인 노후 생활이 어렵다. 박 씨는 “평생 번 돈을 좋은 일에도 쓰고, 노후도 보장받고 싶은데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아쉬워했다.

박 씨 같은 이들에게 필요한 게 ‘기부연금’ 제도다. 현금이나 부동산 등을 사회복지단체 등에 기부하면 기부금액의 일부를 본인이나 유족이 연금처럼 정기적으로 지급받는 방식이다. 집을 담보로 국가가 노후 자금을 보장해 주는 주택연금과 비슷하다. 다만 재산을 기부자의 뜻에 따라 사회 취약계층 등에게 사용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기부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선 1843년 기부연금이 도입됐다. 기부연금 규모는 150억 달러(약 17조8500억 원)가 넘는다. 기부자가 연금으로 돌려받는 금액은 기부 금액의 최대 50%다. 연금액은 지급 시점, 수급자의 수와 나이 등에 따라 연금요율을 달리해 결정된다. 수급자가 적고 고령일수록 연금액이 커진다. 미국 기부연금 수급자는 평균 79세이고, 연금으로 받는 돈은 기부 금액의 20% 미만이다. 기부금은 전문 금융기관 등에서 수탁받아 운용하고, 손실이 나더라도 지급을 보장하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기부연금 도입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1년 정부와 여당이 기부연금 도입을 추진했고, 이듬해엔 정부안이 입법예고까지 됐다. 그러나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법안은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기부연금은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노인 빈곤율(2017년 기준 43.8%)이 높은 한국에 가장 필요한 제도 중 하나다. 정부가 각종 사회보험료나 세금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고령자를 위한 복지 재정을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홍창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부회장은 “1인 가구와 비혼 확산 등으로 향후 재산의 증여나 상속 대신 기부를 원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가계 자산의 약 75%가 부동산에 집중된 한국인에게 기부연금은 노후 자금 마련에 숨통을 터줄 수도 있다. 최근 정부가 부동산 보유세를 인상하면서 소득 없이 세금 부담이 늘어난 은퇴자들의 불만이 높다. 노후 버팀목이 돼야 할 연금 수급액은 생계비에 턱없이 부족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연금 수급자의 월평균 연금 수급액은 63만 원에 불과했다. 월 150만 원을 받는 고령자는 9.6%에 그쳤다. 기부연금이 있다면 주택을 기부하고, 주택 가격의 절반 가까이를 평생 연금으로 받아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

기부연금 도입을 원하는 국민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중 20.6%가 기부연금에 가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2016년 조사(16.4%)보다 4.2%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학생(28.3%), 30대(25.7%), 사별했거나 이혼한 경우(23.8%) 긍정 응답이 많았다.

기부연금을 일찍 도입한 나라에선 자산가보다는 중산층에게 더 인기가 높다. 뉴욕멜런은행에 따르면 2018년 신규 가입한 기부자 511명 중 기부 금액이 10만 달러(약 1억1900만 원) 미만인 경우가 74%였다.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기부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발표한 세계나눔지수(World Giving Index) 보고서에서 한국의 2009∼2018년 누적 기부지수는 126개국 중 38위였다. 이일하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이사장은 “기부연금이 도입되면 기부의 활성화로 취약계층의 사회 안전망 확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반드시 통과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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