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3+2… 출근 형태 바꾼 BBIG 기업, 일하는 방식도 다르다[인사이드&인사이트]

곽도영 산업1부 기자

입력 2020-07-15 03:00 수정 2020-07-1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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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IG發 산업 재편 바람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생산하는 SK이노베이션은 이른바 ‘BBIG‘ 기업으로 애자일 기업문화, 비대면 채용을 선도적으로 도입했다. SK이노베이션 직원들이 지정 좌석이 없는 사무실에서 자유롭게 앉아 일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곽도영 산업1부 기자
‘3+2’ ‘4+1’.

대형마트 묶음판매 행사 문구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넥슨과 SK, NHN 등 국내 대기업들의 새로운 출근 방식이다.

넥슨은 주 3회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고 2회는 재택근무하는 체제를 4월 도입했다. 코로나19 여파에 사내 출근 인원을 분산시키자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만족도와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며 호응을 얻고 있다.

SK㈜와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2월부터 국내 대기업 최초로 격주 주 4일 근무를 시작했다. 5월엔 NHN과 롯데지주가 주중 하루(NHN은 수요일) 재택근무할 수 있는 4+1 체제로 전환을 선언했다.

○ ‘BBIG’發 산업 재편, 출근 형태도 바뀐다

출근 형태를 바꾼 대다수 기업은 이른바 ‘BBIG(바이오, 배터리, 인터넷, 게임)’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곳들이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증시의 간판 기업을 갈아 치우고 있는 BBIG 기업들이 근무 형태에 있어서도 새로운 물결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1∼6월) 코스피시장에서 전통 산업 강자들의 시가총액은 낙엽처럼 떨어졌다. 삼성전자가 약 17조9000억 원, 포스코 5조4000억 원, 현대자동차 4조9000억 원의 시총이 날아갔다. 그 빈자리를 삼성바이오로직스(시총 22조6300억 원 증가), LG화학(12조2100억 원), 네이버(13조1200억 원), 엔씨소프트(7조6800억 원)가 채웠다. 상반기 시총 증가분 상위 1∼10위 기업 모두가 BBIG 기업이었다.

BBIG 기업들은 가볍고 민첩하다. 10만 명(삼성전자), 7만 명(현대차) 직원과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춘 기존 주력 기업과 달리 2000∼3000명 안팎의 직원으로 ‘중후장대’ 기반 없이도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야 하는 지식산업이다. 현장을 지키는 생산인력보다는 개발자와 연구원, 시시각각 트렌드를 읽는 기획자가 필요한 곳이다. 자연히 ‘어디에서, 얼마나 일하는가’보다는 ‘누가, 어떻게 일하는가’가 더욱 중요한 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코로나19는 변화의 촉진제가 됐다. 팬데믹(대유행) 조짐이 시작되던 2월 SK텔레콤이 국내 업계에선 가장 처음으로 전사 재택근무 방침을 밝혔다. 네이버와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판교와 분당을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그 뒤를 이었다.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면서 산업계가 정상출근 체제로 속속 전환하는 가운데서도 넥슨, 네이버 등 다수 기업이 4+1, 3+2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재택근무 외에도 BBIG 기업들의 출퇴근 실험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은 근무시간만 맞추면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완전 자율출퇴근제’를 상시 도입했다. SK텔레콤은 본사가 아닌 집에서 10∼20분 거리의 사무실로 출근할 수 있도록 한 ‘거점 오피스’ 지역을 현행 서울 서대문, 종로, 경기 판교, 분당에서 추가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수요일 재택근무 정책을 적용 중인 NHN의 이모 차장(37)은 “일주일 중에 가장 지칠 수 있는 수요일에 집이든 카페든 내가 원하는 곳에서 편한 복장으로 일할 수 있어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출퇴근으로 인한 육체 피로도 훨씬 줄어 그만큼 업무 집중도와 효율성이 높아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 그때그때 신속하게… 애자일에 주목

BBIG 기업의 출근 방식이 급속히 바뀌고 있는 만큼 일하는 방식에서도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애자일(agile)’이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최근 BBIG 분야 한 대기업의 임직원 대상 Q&A식 사내강연에서 “애자일이 대체 뭔가요”라는 질문이 가장 많이 나오기도 했다.

‘날렵한’ ‘민첩한’이란 뜻의 이 단어는 IT 업계 개발자들 사이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IT산업 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코딩한 프로그램을 완성 단계에서 선보이는 방식은 최근 급격한 트렌드 변화에 맞지도 않고 노동집약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처음 개발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바로바로 프로그램에 적용해보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반영하는 식으로 전체를 완성해 나가는 가볍고 빠른 방식이 주목을 받았다. 개발자들은 이를 두고 애자일 개발이라 불렀다.

애자일하게 일하는 방식을 회사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기존 방식처럼 한 사람, 또는 한 조직이 특정 이슈 한 가지를 붙잡고 기획부터 생산, 판매까지 책임지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업무 과정에서 필요한 이들이 신속하게 투입됐다가 해체하는 식으로 조직을 운용할 수 있다. BBIG 기업의 최대 자원인 ‘고부가가치 인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인 셈이다.

지난해부터 기존 팀 조직의 경계를 없애고 ‘팀장’ 직책도 없앤 SK이노베이션은 그 대표 사례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애자일 조직 전사 적용 방침을 발표한 이후 SK이노베이션은 각 임원 산하의 조직 간 경계를 없애 프로젝트별로 필요한 인력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했다. 고정된 팀과 팀장 직책이 사라진 대신 ‘프로페셔널 리더(PL)’가 프로젝트별로 이끈다.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 사옥도 칸막이와 팀 표지, 지정 좌석이 없어졌다. 그 대신 업무 관련 인력들이 그때그때 모여 일할 수 있도록 작은 테이블들이 놓였다. 직원들은 그날그날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 근무할 수 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시총 10위권에 진입한 카카오도 2017년 일찌감치 애자일 근무방식을 도입한 선두주자로 꼽힌다. 하드웨어 제품 관련 경험이 없는 카카오가 경쟁사보다 짧은 시간인 6개월 만에 인공지능(AI) 스피커를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사내에서 AI 스피커 개발 방향이 확정된 직후 AI 부문 아래로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기존 카카오톡, 콘텐츠, 포털 등 다른 부문에서 필요한 인력들이 속속 모여 협업한 결과였다. 네이버 또한 업무별로 모인 수많은 TF가 상시 운영되는 체제다.

강혜진 맥킨지 한국사무소 파트너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4, 5월 맥킨지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공동 수행한 리서치 결과를 보면 애자일 조직을 갖춘 기업들의 변화 대응 및 혁신 속도는 그렇지 않은 기업 대비 적어도 2배 이상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BBIG 기업들의 경우 기업 역사가 오래된 전통적 기업들 대비 조직의 평균 연령이 젊고 혁신적인 근로 형태에 대한 요구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 BBIG 기업이 사람 뽑는 법

출근 형태와 업무 방식이 다른 BBIG 기업. 그렇다면 BBIG 기업은 어떻게 사람을 뽑을까. 전통 산업 강자들이 대규모 공채, 이른바 ‘스펙’ 위주의 서류 심사, 정형화된 인적성 평가를 통해 신입사원을 뽑아왔다면, BBIG 기업들은 이러한 채용 공식을 통째로 바꾸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정기 공채의 폐지 물결이다. 코로나19 이전에 현대차가 정기 공채 폐지를 선언한 데 이어 최근 LG도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차례씩 대규모로 채용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수시 형태로 뽑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네이버와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국내 대표 IT 기업들은 이미 신입 수시 채용과 경력 공채를 통해 인재를 뽑아 왔다. 가볍고 민첩한 회사일수록 인재를 면밀히 추려내야 하는 동시에 잉여 인력이 없도록 적재적소에 필요한 만큼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BBIG 기업들의 채용 공고는 ‘상반기 일반 사무직 공채 ○○○명’이 아닌, ‘의약품 유통채널 관리실무 ○명’ ‘신규 퍼즐게임 기획 ○명’과 같이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기획이나 영업, 홍보 등 직군으로 분류해 뽑던 과거와 달리 각 기업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해줄 이를 찾는 것이다. 넥슨 채용 담당 강경중 파트장은 “채용 요건에 맞는 지원자를 찾아 지금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는 수시 채용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며 “지원자들은 공고별 업무 내용과 지원 자격을 꼼꼼히 파악해 본인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쪽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또 다른 채용방식의 변화는 비대면 면접이 광범하게 도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재택근무의 기반에는 비대면 소프트웨어의 활용과 AI 등을 통한 업무 고도화가 뒷받침되고 있다. 비대면 면접은 방역 이슈 때문만이 아니라 ‘예비 임직원’들이 이러한 툴(tool·도구)과 업무 방식을 잘 활용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차원에서도 확산되는 추세다. 이미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등 SK 계열사들이 상반기 채용에 화상면접을 도입했다. 기존 인적성 평가를 게임, AI 면접으로 대체하는 곳도 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인사담당자는 “언택트 채용을 통해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채용이 가능해져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역량 확보가 가능해졌다. 구직자들도 집에서 면접을 보면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높아지고 이동, 대기로 인한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곽도영 산업1부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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