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 받아서 빚더미에?… 학위에 연연하지 않는 美 젊은층

동아경제

입력 2020-01-22 16:36 수정 2020-08-1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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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변화를 앞두고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시대, 대학 학위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선이 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경제매체 ‘CNBC Make It’은 “대학 학위 소지자가 80% 더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나 대학을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은 단지 51%에 그쳤다(College grads earn 80% more—but only 51% of Americans see college as very important)”라는 제목으로 미국인들의 대학 학위에 대해 달라지고 있는 가치관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여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회 현실과 전문가의 의견을 제시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자.

최근 갤럽(Gallup)이 2000명 이상의 미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대략 절반 정도는 대학을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대학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묻는 질문에 “매우 중요하다” 51%, “중요하다” 36%,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13%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 2013년 각각 70%, 23%, 6%로 조사된 결과와 비교해 봤을 때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런 변화가 교육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18세~29세의 젊은 연령층에서 눈에 띄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2013년 조사 당시 해당 연령층의 74%가 “매우 중요하다”라고 답한 반면 2019년 조사 결과에서는 41%만이 그렇다고 응답한 것.

출처:갤럽/ CNBC Make It 자료 캡처.

갤럽의 교육 연구 담당 이사 스테파니 마켄(Stephanie Marken)은 “가장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하는 이 연령층에서 부정적인 견해가 부각된 적은 갤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교육의 질과 가치, 접근성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 따라 전반적인 교육의 중요성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 미국 사회가 대학에 거는 기대 ▼

미국은 경제 기회를 최적화하려는 바람으로 2020년까지 대학 학위나 자격증을 소지한 25~34세의 비율을 60%로 늘리겠다는 목표(2009년 오바마 행정부에서 정함)에 현재 상당히 뒤처져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최소 2056년 이후에나 그 문턱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경제학자와 국가 안보 전문가들은 컴퓨터 과학 및 인공 지능(AI)과 같은 분야에서 대학 교육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며, 2030년까지 AI가 세계 경제 생산에 16% 또는 13조 달러를 추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즉 4차 산업의 상징인 AI가 경제를 선도할 수 있는 핵심으로 인재 양성에 교육이 반드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AI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방의 문제임도 시사하고 있다.

전 뉴욕시 교육감 조엘 클레인과 전 국방부 장관 콘돌리자 라이스가 이끈 美 대외관계협의회 보고서는 “교육이 실패한다면 미국의 미래 경제 번영과 세계 패권 위치, 물리적 안전은 위험에 빠질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교육 문제점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세계적인 흐름에 보조를 맞출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여성과 소수집단 그리고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학 가치를 더 높게 인식 ▼

:: 여성

미국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대학 졸업장을 더 중요시한다. 같은 임금을 받기 위해 여성은 남성보다 한 개의 학위가 더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여성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2018년 조지타운 교육 인적자원센터(Georgetown Center on Education and the Workforce)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자. 자료에 따르면 4년제 학사 학위를 가진 여성은 평균 연 6만1000달러를 번다. 비슷한 임금을 버는 남성들의 경우 2년제 준학사 학위만으로도 가능했다. 또한 석사 학위를 소지한 여성은 학사 학위를 가진 남성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데, 이 차별적인 현실은 학업 성취 단계마다 동일하게 적용됐다. 쉽게 말해 같은 전공, 같은 정규직 고용 상태여도 여성은 학위가 한 단계 더 높아야 남성과 같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 소수민족과 민주당 지지자들

백인에 비해 흑인과 히스패닉 출신들이 대학의 가치를 높게 봤다. 조사 결과 백인의 44%가 “대학 학사 학위가 중요하다”라고 답한 반면 흑인은 65%, 히스패닉은 66%로 나타났다.

정당별로 보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학의 중요성을 높게 인식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41%만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답했는데, 무당파층은(independents) 50%, 민주당 지지층은 62%로 조사됐다.


▼ 대학교육에 미국인들이 점점 회의를 느끼는 이유 ▼

재정적 부담도 예전보다 더 크게 체감되는 현실이지만 다수의 전문가는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현명한 투자’라고 말한다.

이미 수많은 연구 결과에서 교육적 성취가 기대 수명 연장, 낮은 실업률, 높은 소득을 비롯해 광범위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2018년 대졸자는 고졸자보다 80% 높은 주급을 받았고, 노동통계국은 학사 학위를 가진 미국인들이 주당 평균 1173달러를 벌고 있는데 비해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진 사람들은 주당 712달러밖에 벌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이렇게 이점이 많은데도 과거에 비해 미국인들이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분명히 바뀌고 있다.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회의감이 늘고 있는데, 왜일까.


<1> 비용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부담에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인플레이션, 교육 재정 절감, 대학 건축 비용 증가 등으로 등록금이 꾸준히 올랐다. 최근 10년간만 놓고 보면 무려 25%가 증가했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1978년부터 1979년에는 사립 대학에 다니는데 연간 1만7680달러, 공립 대학에 다니는 데는 연간 8250달러가 들었다. 2008년에서 2009년에는 이 비용이 각각 3만8720달러, 1만6460달러로 증가했다. 현재는 사립 대학은 4만8510달러 공립 대학은 2만1370달러를 내야 한다. 등록금이 사립 대학의 경우 약 25%, 공립 대학의 경우 약 29%가 오른 것이다.

이러한 고가의 학비는 학생들에게 “대학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현실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재정적 부담이 가치관의 변화를 불러온 것이다.


<2> 부정 입학에 대한 사회적 질타

고등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감이 흔들린 데는 대학 입학 과정에서 드러난 스캔들도 한몫했다.

지난해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초대형 입시 비리 사건. ‘바시티 블루스’(Varsity Blues_바시티는 대학 운동부 대표팀을 일컫는 말. 가장 많은 비리가 ‘체육특기생 전형’에서 드러나 수사 작전명이 바시티 블루스임)라는 기획 수사로 부정 입학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이 사건은 부유층 부모들이 자녀들을 예일대나 스탠퍼드대 등에 입학시키기 위해 입시 브로커, 대학 체육 코치, 대입 시험 관리 직원 등에게 뇌물을 준 것인데, 거래된 뒷돈의 규모가 무려 2500만 달러(약 283억 원)에 달한다. ‘간판보다 실력’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사회에 입시 비리는 큰 충격을 주었다.

갤럽의 스테파니 마켄(Stephanie Marken)은 “대학을 졸업하면 학위와 연관된 결과물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하게 소통되어야 하는데, 최근 드러난 부정 입학으로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3> “이단아” 일반적이지 않은 예외성에 주목


당연한 코스라 여기는 과정을 밟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미국 젊은이들은 환호한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선 신화의 주인공들.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와 마이크로소프트(MS) 창시자 빌 게이츠(Bill Gates)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2006년 하버드대에 입학한 저커버그는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 사업을 시작하고자 대학 2학년 때 중퇴해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현재 페이스북은 20억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의 소셜 미디어가 됐다. 1973년 하버드대에 진학해 2년 뒤인 1975년 학교를 그만둔 빌 게이츠는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를 설립했다. 컴퓨터 사업으로 성공한 그는 현재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자선사업가, 정보기술(IT) 업계의 거물로 칭송받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의 하버드대 졸업사 홍보 동영상 중 빌 게이츠 MS 창업자와 대화하는 저커버그.
출처: 트위터

기존의 틀을 깨고 성공한 사람들이 미국 젊은이들에게 학위가 아닌 실력과 열정으로도 견고히 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대학 졸업장에 연연하지 않아도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 학자금 빚더미? 그럼에도 아직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

‘학자금 빚더미’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 가정에서조차도 자녀의 학자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는 뉴스도 잇따르고 있다. ‘대학교육 받은 죄’라는 ‘웃픈’ 말이 미국인들의 삶을 옥죄는 현실로 나타났고, 이는 2020 미 대선에서도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여론 조사 결과에서도 대학 학위에 대한 분명한 변화가 감지된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는 “그래도 대학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전문가들이 여전히 있다. 금융 분석가인 그레그 맥브라이드(Greg McBride)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교육을 성실히 받고 학위까지 받는다면, 이것은 여전히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투자일 것”이라며 “미국 대학 졸업생 평균 채무액이 3만 달러 정도인데, 졸업생들이 평생 벌어들이는 수입을 놓고 본다면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라고 언급했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예산정책센터 마이클 미첼(Michael Mitchell) 센터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안정적인 직장과 더 높은 소득을 추구하는 개인에게 대학 학위를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사회적 혜택이 크기 마련이다. 이런 지역에는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파워 고용주들이 들어오게 되고, 이것이 결국 지역 경제를 활성화해 모든 근로자의 임금을 상향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지도자들 1만1745명(법조인, 정치인, CEO, 억만장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바, 이들 중 94%가 대학에 다녔고 약 50%는 엘리트 교육 과정을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중퇴자인 빌 게이츠는 역설적으로 “대학을 그만두고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경력을 쌓는 행운을 얻었지만, 학위를 받는 것은 성공으로 가는 훨씬 확실한 길일 것”이라며 “학사 학위가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에 비해 더 보람 있는 직업과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고, 심지어 더 건강한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들은 배운 것을 토대로 높은 차원의 기술을 노동시장에 도입해 우리 경제 전체가 성장하고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돕는다”고 강조했다.

신효정 동아닷컴 기자 hj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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