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족이라는 새로운 계층 등장”… 마이카 시대 활짝 연 포니

염희진 기자

입력 2019-12-12 03:00 수정 2019-12-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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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00년 맞이 기획/한국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3> 국민 일상을 바꾼 ‘혁신템’



“세상도 변해서 요즘은 시골길을 터덜대며 달리는 마차에 사람이 가득 타는 미풍(美風)을 볼 기회가 드물어졌다. 그 대신 차차 머리를 들기 시작한 것이 이른바 ‘마이-카’다. 자가용족이라고 하는 새로운 계층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동아일보 1977년 10월 6일자 ‘횡설수설’에서)

1976년 현대자동차가 선보인 최초의 독자개발 국산차 포니는 1970년대 말 한국의 거리 풍경을 바꿨다. 출고된 해에만 1만700대가 팔린 포니는 ‘마이카 시대’를 열었다. 포니 출시 전 1975년 1만8000대였던 국내 자동차 시장 규모는 1979년 8만9000대로 급성장했다. 교통체증과 주차난이 신문기사에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포니는 동아일보가 자문위원 30인과 함께 선정한 한국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중 ‘주요 혁신상품’ 부문 상위 10위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 일상을 바꾼 ‘혁신템’

동아일보와 자문위원단이 선정한 주요 혁신상품의 공통점은 국민의 일상을 바꿨다는 것이다. 포니처럼 이동수단을 비롯해 의식주 분야에 등장했던 혁신상품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상품 카테고리를 만들어냈고 소비자 일상에 파고들며 생활습관을 바꿨다.

1950년 이후 탄생한 혁신상품 대부분은 전쟁 후 식량난으로 굶주리던 한국사회의 아픔 속에서 탄생했다. 최초의 국산 조미료 ‘미원’(1956년·6위)은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가 광복 후에도 여전히 일본 조미료가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개발했다. 오사카의 한 조미료 공장에 취업한 그는 어깨너머로 제조법을 배운 후 미원을 개발했다. 이후 1956년 국내에서 판매된 미원은 ‘한 꼬집’만으로 감칠맛을 낼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주부들의 필수품이 됐다.

최초의 국산 라면인 ‘삼양라면’(1963년·4위)도 1960년대 초 미군이 먹다 남긴 음식을 한 데 모아 끓인 ‘꿀꿀이죽’이 발단이 됐다. 가난한 노동자가 꿀꿀이죽을 먹으려고 긴 줄을 선 것을 보고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주는 식량난의 해결책으로 라면을 떠올렸다. 일본 묘조식품에서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 삼양라면을 내놓았는데 초창기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밥이 주식이던 식습관이 밀가루로 바뀌는 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1965년 보릿고개를 극복하기 위해 ‘혼분식(混粉食) 장려책’을 추진하면서 삼양라면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식량난 해결의 역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최초의 즉석밥인 ‘햇반’(1996년·9위)은 치밀한 계획 아래 개발됐다. 1989년 CJ제일제당은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간편식 선호도가 높아졌고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대중화됐다. ‘밥은 직접 해먹는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쉽지 않을 거란 우려와 달리 7년간 개발한 끝에 출시된 햇반은 판매한 지 2주 만에 2억5000만 원어치가 팔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전자레인지에 2분만 데우면 완성되는 햇반은 밥을 소비하는 방식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 세계 최초의 혁신

하루에 한 잔씩 마시는 커피의 대중화 시대는 세계 최초로 출시된 커피믹스(1976년·8위)가 열었다. 동서식품이 커피, 크리머, 설탕을 배합해 만든 일회용 커피믹스는 커피를 마시는 시공간을 바꿨다. 휴대와 보관이 간편해진 커피믹스 덕분에 커피는 따뜻한 물과 종이컵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마실 수 있게 됐다.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최원식 맥킨지 한국사무소 대표는 “커피믹스는 세상에 없는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며 커피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며 “여기에 해외로 수출하는 효자 노릇까지 했다”고 평가했다.

LG전자의 의류관리기 스타일러(2011년)도 출시 당시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가전이었다. 세탁소에 주로 맡겼던 양복이나 니트 등을 집에서 새 옷처럼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누구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개념 가정용 의류관리기를 내세우면서 등장한 스타일러는 ‘집 안의 세탁소’로 불리며 실내 가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주차 확인 스탬프에서 영감을 받아 세계 최초로 개발된 아모레퍼시픽의 쿠션 팩트(2008년)는 자외선 차단제와 메이크업베이스, 파운데이션 등을 스펀지 재질에 흡수시킨 멀티 메이크업 제품으로 전 세계 여성들의 화장 시간을 단축시키는 데 기여했다.


○ 가상공간의 혁신

인터넷 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내놨던 ‘한메일 서비스’(1997년·10위)는 ‘인터넷 무주택자에게 주소를 거저 나눠 주는 사업’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획기적이었다. 무료로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전자우편 주소를 제공했고 인터넷만 접속하면 어디서나 메일을 열어 볼 수 있었다. 한메일의 수익은 전자우편물에 집어넣는 인터넷 유료 광고물에서 발생했다. 새로운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가상공간에 등장한 혁신상품의 공통점은 거창한 아이디어가 아닌 생활의 작은 불편을 해결하는 데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iN’ 서비스(2002년·7위)는 소비자의 사소한 궁금증을 해결해줄 방법을 찾다가 시작됐다.

모바일 메신저로 출시된 ‘카카오톡’(2010년·3위)도 무료로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출시 이후 1년 만에 1000만 명, 이듬해 4000만 명으로 이용자가 늘며 국민 메신저가 됐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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